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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레타 ㅣ 페이지터너스
이사벨 아옌데 지음, 조영실 옮김 / 빛소굴 / 2023년 11월
평점 :
우째 연말보다 연초에 약속이 더 많이 잡혀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독서에 집중을 못 하다 보니까 앞의 내용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머리가 점점 녹슬어가는 걸로 보아 이제는 한 작품을 너무 길게 붙들지 말아야겠다. 어느덧 페이지터너스의 도장 깨기도 다 끝나간다. 전체적으로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 재미나게 읽은 반면, 하나같이 결핍 가득한 작품들이어서 이젠 좀 지치려고 한다. <비올레타>는 칠레와 중남미의 현대사와 여러 인물의 서사를 다루는 거대한 역사서이다. 또한 사회의 억압을 뚫고 자기 발현을 해나가는 여성주의의 내용까지 담겨있다. 여러 가지 볼거리와 주제를 다룬 의미 있는 작품이지만 큼직큼직한 내용 위주로 흘러가서 전체적으로 투박한 느낌이었다. 숲을 논하다 보면 디테일이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뭐.
아들부잣집의 막내딸인 비올레타는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던 팬데믹 시대에 태어났다. 미국 대공황과 함께 집안 사업이 망하자 가족들은 남부 지방으로 유배 아닌 유배를 가야 했다. 팍팍한 삶이었지만 어려운 이웃들끼리 오손도손 하며 잘 견뎌냈다. 비올레타는 영국인 가정교사와 이웃 교사 부부를 통해 기초교육과 인생 경험과 체험학습을 배워나간다. 그리고 목격한 여러 가정들의 폭력으로 순수를 잃어버리게 된다. 분명히 무지와 빈곤에서 악이 발생한다고 배웠는데, 그녀가 보기에는 어느 곳에서든지 선악이 존재했다. 하여 교양인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삶에 접근하기로 방향을 튼다. 가볍게 지나간 이 장면이 훗날 그녀에게 얼마나 많은 혼돈을 낳았는지에 주목해 보자.
성인이 된 비올레타는 큰오빠의 건축 사업을 도우면서 재능을 발견한다. 덕분에 형편도 나아지고 삶의 재미도 보던 와중에 2차대전이 발생했다. 다행히도 그녀가 사는 곳은 전쟁의 피해가 닿지 않았고, 얼마 뒤에는 괜찮은 집안의 남자와 결혼식까지 올리게 된다. 이만하면 아주 탄탄대로의 인생일 텐데도 그녀의 마음은 어쩐지 공허하다. 이 원인 모를 비올레타의 갈증은 결국 외도로 해소가 되었다. 남편과 정반대의 육식남인 비행기 조종사와의 쾌락과 유희를 즐기며 살림을 차려버린 그녀. 하지만 조종사는 저밖에 모르는 카사노바였고, 비행기 타고 세계 곳곳을 놀러만 다녔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당연한 여성들의 삶이라 생각하며 혼자 감내하는 비올레타의 속앓이가 앞으로도 계속된다. 전에는 이런 걸 인과응보의 일부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원래 인간의 본성이 배움과 노력의 고생길보다도 폭력과 충동의 지름길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비올레타>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과 아슬아슬하게 타협하는 장면으로 도배된 작품이다. 세계사, 가정사, 여성주의 등 독자마다 포커스가 다를 텐데, 나의 관심사는 화자인 주인공의 심리상태였다. 비올레타의 복잡한 인간성은 단순히 좋고 나쁨과 옳고 그름으로 나눌 수 없는, 아주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었다.
비올레타는 아들과 딸을 낳았다. 조종사는 여성스러운 아들과 달리 자신을 쏙 빼닮은 딸을 예뻐하고 애지중지했다. 아들은 크면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딸은 아빠와 함께 쾌락주의자로 살아간다. 그러다 딸이 마약중독으로 개차반이 되고 나서야 엄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는 주인공. 거기에다 민간 비행기 사업으로 갱단의 불법거래를 담당하는 조종사 남편까지, 비올레타의 고통과 근심은 마를 날이 없었다. 결국 그녀는 정신과 상담을 받고야 마는데, ‘왜 비극적인 삶을 원하느냐‘는 의사의 질문이 작품을 관통하는 대사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50대가 돼서야 비올레타는 자신의 외로움을 인지했다. 가족, 인맥, 재산, 능력까지 다 갖췄으니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런 외로움의 유형은 아닐 터. 그렇다면 그녀의 결핍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나님은 이 질문의 해답을, 그녀의 가정교사였던 조세핀의 삶과 대조하여 알아냈다. 조세핀은 이혼이 금지되었던 그 시대에도 당당히 동성애자로 살아가며, 파트너와 함께 여성 투표권, 가부장제 반대, 여성 사회 진출 등 여성주의에 힘을 쏟는 중이었다. 어렵지만 의미를 찾아가는 조세핀과 상반된 비올레타의 공허한 삶에는 ‘쟁취‘가 없었던 것. 둘 다 진취적이었지만 비올레타는 자기 충동에 따라 저항했고, 조세핀은 자유의지에 따라 저항하며 살아갔다. 그 결과 비올레타의 부실한 독립성은 맥없이 무너지고, 조세핀의 견고한 조화성은 자신과 주변을 지켜주었더랬다.
조종사를 따라 비올레타의 거처도 자주 바뀌었다. 어쨌거나 그녀 또한 사업가였고, 그렇다 보니 나이가 들어서도 왕성한 활동을 유지하며 젊은 인생을 살았다. 딸의 죽음, 남편의 바람, 대 지진, 독재 정권, 블랙리스트가 된 아들 등 많은 아픔과 난관을 겪었음에도 할 일이 많아서 어렵지 않게 이겨내지 않았나 싶다. 전개가 휙휙 널뛰는 데다 화자의 담백한 말투 때문에 생략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닐 테지. 비올레타의 응어리가 또 한풀 꺾이는 시기가 언제였냐면, 조종사의 n번째 애인이 주인공을 찾아왔을 때였다. 오래전에 그녀와 한바탕했던 이 어린 친구는 이제 와서 조종사를 엿 먹이고 싶어 했다. 조종사의 비행 사업 행정을 맡았던 애인은 불법 장부를 증거로 제출하여 조종사를 소송하고 그의 사업까지 무너뜨렸다. 불행의 원흉이었던 조종사는 비올레타가 자처한, 그것도 떳떳하지 못한 방식으로 선택한 것이었기에 마지못해 끼고 살아왔으나, 기회를 얻어 한방 먹여주고 나니 쟁취한 삶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 것도 같았다. 그것은 죽은 딸의 이름으로 설립한 여성재단에 더욱 열과 성을 다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오래전에 버렸던 교양인의 모습을 다시 찾아간 비올레타의 인생 3막이 그렇게 열렸다.
이 작품은 비올레타의 죽기 직전까지도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다 기억도 안 나지만 일일이 나열할 수도 없는 대 서사라서 이 정도로 줄여야겠다. 어떻게 보면 무지몽매한 인간의 성장소설 같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개과천선이나 사필귀정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녀는 닥쳐오는 파도를 넘는다기보다 온몸으로 부딪혀 경험하는 타입이었으니. 마침내 오르막길을 걷게 된 것은 칭찬할 일이지만 비올레타는 어떤 위인이나 성인군자가 되려 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지나간 과오들을 후회하지도 않았고, 지금의 업적들에 막 자부심을 갖지도 않았다. 돌아보면 비올레타는 항상 그랬다. 되는대로 사는 듯하면서도 열정을 쏟았고, 무심한듯하면서도 친절하려 했고, 수없이 좌절하면서도 삶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것들은 어떤 원대한 목표나 책임감도 아니고 개인의 강인한 기질 때문도 아니었다. 비올레타에게 인생이란 불을 무서워하지 않는 요리사처럼, 파도를 겁내지 않는 서퍼처럼 일단 부딪히고 볼 일이었으니까. 하여 그녀의 무수한 혼돈을 보면서도 안쓰럽다는 인상을 받지 못했다. 이처럼 우리는 혼돈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오르막길을 걷고 파도에 맞서가며 쟁취하는 삶을 이어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도 어째서 비극적인 삶을 원하느냐는 질문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