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와 맥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4
서머싯 몸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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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아온 소설가들은 크게 세 가지의 유형이 있다. 먼저는 사회에 불만이 많은 자. 그래서 이슈의 공론화를 위해 책을 쓰고 갈등을 만든다. 다음으로 변태 같은 감성의 소유자. 인간의 추악한 내면을 증명해야만 속이 풀리는 유형이다. 마지막으로 비상한 관점의 현자. 이들은 독자의 허점을 찌르고 편견을 깨는 것이 목적이다. 서머싯 몸은 세 번째 유형에 해당된다. 그는 작품 속에서 공감도 원치 않고 설득도 하려 않는다. 그저 내 생각은 이렇다 할 뿐인데 그게 꼭 남들과 달라서 신경 쓰이는 것이다.


<케이크와 맥주>는 작가들에게 관점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물론 독자들도 배워두면 유익할 테니 잘 봐두면 좋겠지만 솔직히 재미는 없다. 잘나가는 소설가 A는 타계한 거장의 전기문 집필을 위해 화자를 찾아온다. 세계적인 작가, 드리필드와의 추억을 말해달라는데 영 내키지가 않는다. 작품의 명성과는 별개로, 드리필드는 인간적으로 추앙할 만한 인물이 못되었기 때문에. 화자만의 기억은 남들하고 어떻게 달랐을까.


이야기는 ‘나‘의 과거 15살로 돌아간다. 소년은 평판이 나빴던 드리필드 부부와 친해진다. 소문과 다르게 좋은 사람들이었고, 특히 부인의 매력과 인간미가 퍽 훌륭했다. 이토록 순수하고 쿵짝도 잘 맞는 부인의 어디가 음탕하다는 걸까. 의심은 이내 현실이 되었지만 부인은 오늘도 내일도 천진난만할 뿐이었다. 결국 소문이 맞았고 배신감마저 느껴졌으나 그것이 부인을 싫어해야 할 이유는 되지 않았다. 심지어 남편과 야반도주까지 했는데도 말이다. 소년이 어려서 뭘 모른다고 생각했다면 축하한다. 당신도 꼰대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모두에게 욕먹는 드리필드 부인에 대한 ‘나‘의 애정이 유별나다고만은 볼 수 없다. 소년은 시샘하는 이들과 잘만 지내는 부인의 매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자기만의 평판을 쌓아갔다. 과연, 체면을 벗어두었더니 그녀의 장점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가. 다 생각하기 나름이란 뜻이겠지. 어렸을 때만 해도 사람을 겉으로 판단해선 안된다고 배웠다. 지금은 처신을 잘해야 하는 시대인 만큼 겉으로도 판단이 가능하다는 추세다. 이 문제를 자신에게 적용시켜보자. 타인이 나에 대해 어디까지 정의할 수 있을까. 그 정의가 들어맞을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 나는 No인데 다수가 Yes라고 한다면 그게 정답이라도 된단 말인가. 그렇다면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은 왜 있는가. 사람이란 이렇게나 복잡하게 만들어진 존재이다.


부인의 비중이 더 큰데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성공에 눈이 먼 작가들을 풍자한다는 내용이다. 화자를 찾아온 A는 재능과 실력까지 겸비한 처세술의 달인이었다. 그렇게 야무지고 눈치 빠른 양반이 거장의 일면만을 보고서 극찬한 것도 그렇고, 거장의 비판을 모르쇠 하는 것도 그렇고 참. 화자에게는 A나 거장이나 한 통속이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드리필드는 기나긴 무명시절에도 개성과 여유를 간직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다 알게 된 후원자를 통해 사교계를 접수하고부터 명성을 쌓게 된다. 그렇게 해서 훗날 거장이 되었다지만 화자는 그것이 누군가의 꼭두각시놀음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성공과 맞바꾼 작가의 영혼.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기엔 변질돼버린 그의 오리지널이 자꾸 생각나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드리필드 부부에 대한 대중과 ‘나‘의 인식은 정반대로 흘러간다. 비난의 아이콘이던 부인한테는 남들이 보지 못한 매력이 넘쳤고, 공경의 아이콘이 된 거장에게는 남들이 맡지 못한 구린내가 풍겨났다. 어째서 ‘나‘는 부인의 불미한 행실에도 취향을 존중하고, 줄타기에 성공한 거장을 위선자로 보았는가. 두 사람 다 고통을 앗아가는 쾌락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각자의 말 못 할 아픔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선택이었고, 그 결과 부인은 비난받고 남편은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실상은 사랑으로 가득한 부인의 삶이었고, 비난받아도 할 말 없는 남편의 삶이었음을 알게 된 화자였다.


물론 너도나도 ‘역행자‘가 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잘못했다간 사회 부적응자란 소리나 듣게 될 것이다. 온갖 상황과 변수로 가득한 인간 사회에서 흔들리지 않는 비결은, 유연한 사고와 발상을 길러주는 ‘관점‘에 달려있다. 유독 한국인들은 판단하고 분류하고 정의하기를 좋아하는데, 수학 문제가 아니고서야 꼭 정답일 필요가 있을까. 답이 없는 문제일수록 차라리 중용을 택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더 이롭다. 근데 한편으로는 내 앞가림도 잘 못하면서 정신건강이 웬 말이냐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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