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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혼란 - 지성 세계를 향한 열망, 제어되지 않는 사랑의 감정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서정일 옮김 / 녹색광선 / 2019년 6월
평점 :
감정의 혼란이라면 내가 또 할 얘기가 많이 있지. 이건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인데, 길에서 누가 내 이름을 하이톤으로 부르길래 봤더니 중3~고1때 좋아했던 몇 살 위의 누나였다. 못 본 지 10년도 넘은 나를 바로 알아본 것도 신기했지만, 여전히 나와 편하게 웃고 장난치는 이 순간이 더 신기했다. 누나의 변함없는 모습은 내 오래전 날들의 감정을 끄집어내었고, 그 잠깐 동안을 나는 고등학생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실컷 반가움을 나누던 중에 중학생 하나가 우리한테 다가왔고, 누나는 자기 딸이라고 소개해 주었다. 아 그렇구나. 격정의 기쁨은 이내 곧 당황이 되었고, 이 형용 못할 감정을 최대한 누르면서 급히 작별 인사를 건넸다. 나는 무엇이 그리도 두려웠을까. 은연중에 다시 가까워지기를 바랐던 것일까. 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상대에게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되자 크게 혼란스러워졌다. 흩날리던 벚꽃 잎은 어느새 눈송이로 변해 있었다.
츠바이크가 쓴 <감정의 혼란>도 내가 느꼈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방탕에 빠져있던 롤란트는 한 문학 교수의 강의를 듣고 수제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교수의 집 위층에 세를 얻어 교수 부부와 급속도로 친해진다. 이제 문학으로 하나 된 두 사람은 길 잃은 어린 양과 목자의 관계로 발전한다. 그런데 꼭 한 번씩 교수가 제자의 동경심에 스크래치를 내는 게 아닌가. 모진 말을 내뱉기도 하고, 갑자기 잠수타버리는 등 교수의 돌발행동에 아주 그냥 멘탈이 바사사삭. 점점 시들어가는 롤란트를 보다 못한 교수 부인은, 그에게 절대 의존해선 안된다고 경고한다. 이유를 물었더니 알면 다친다는 뉘앙스만 풍기는데, 대체 그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제자가 달궈질 때마다 교수는 얼음 물을 들이붓는다. 제동장치 차원에서 그러는 걸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일편단심이 그렇게나 잘못인가. 병 주고 약 주고가 반복되다 보니 스승에 대한 사랑은 이내 방탕과 원망으로 이어졌다. 떼쓰는 어린아이가 되어 자신을 돌보지 않은 부모를 일방적으로 탓하게 된 것이다. 그의 투정을 받아준 건 교수의 부인이었고, 자신의 만행을 후회한 롤란트는 그길로 떠나갈 채비를 한다. 이때 사라졌던 교수가 돌아와 제자의 푸념을 듣고, 이제까지의 자초지종을 설명해 준다. 서로 간에 오해를 풀긴 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돼버린 두 사람. 감정의 터닝 포인트가 이들에게 몇 번이나 찾아온 건지. 예나 지금이나 인생은 타이밍이다.
일인칭시점의 이 작품은 주인공의 심경 변화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의 가슴속에서 맴돌던 사랑의 언어들은 끝내 호소력을 잃었지만 그 마음을 교수가 몰라준 것은 아니었다. 제자의 앞날을 내다본 스승이 나름의 결단을 내렸던 건데, 그 역시 혼란했던 이유로 표현이 서툴렀을 뿐이다. 나는 적나라했던 롤란트의 감정보다도, 설명이 없다시피 했던 교수의 심정에 더 마음이 동하였다. 감정이라는 건 움직여야 할 때보다 멈춰세워야 할 때에 더 많은 힘을 쏟게 되어있다. 그런 이유로 떠나는 사람보다 남겨진 사람이 더 아픈 법이다. 하여 감정을 통제하기 힘들 때마다 차라리 누가 대신 밀고 당겨줬으면 싶어진다. 교수와 제자도 그래 보였다. 서로가 원하고 있는데도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의 잔인함. 사랑에는 분명 용기가 필요하지만 때론 그것이 상대를 찔러 죽이는 비수가 되기도 한다.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고는 하나 어쩐지 알 것 같아서 자꾸 망설여지는 것이다. 나처럼 멘탈 바사삭이 지긋지긋한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