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인 윈도 모중석 스릴러 클럽 47
A. J. 핀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19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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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이 많이도 죽었습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아니다 싶은 책들을 신랄하게 까댔는데요, 이제는 그럴 기력도 없고 시간도 아까워서 그냥 읽다가 중단해버려요. 그렇게 비평은 점점 줄어들고 만족스러운 책들만 리뷰하다 보니까 제 성격이 느긋하고 유해졌다지 뭡니까. 하지만 이런 변화도 제법 마음에 들거든요. 해서 앞으로는 궁합이 괜찮은 책만 읽고 리뷰할까 봐요. 그래도 나름 지성인이라고 교양 있게 늙고는 싶은가 봅니다.


‘모중석 스릴러클럽‘이라고, 비채 출판사에서 기획한 시리즈가 있는데요. 제가 장르소설을 좋아해 출판사별로 만든 기획물들을 쭉 살펴봤지만 비채만큼 타율이 높은 곳을 못 봤어요. RHK가 양대 산맥이었는데 그것도 옛말이고요, 근래 작품들은 영 신통치가 않습디다. 아무튼 모중석 스릴러클럽은 유독 제 취향이어서 몇 년째 시리즈 도장 깨기를 하고 있는데 어우, 쉽지 않네요. 이제 절반 좀 넘게 읽었나. 솔직히 이번 작품은 분량도 많고 제목도 별로여서 패스하려다 그냥 읽었듭니다.


별점은 짜게 줬지만 재미가 없지는 않아요. 벽돌책인데도 하루 이틀 만에 다 읽었고요. 다만 불필요한 장면이 꽤 많았어서 종이 낭비라는 생각도 좀 들어요. 나쁘진 않으나 뭔가 밍밍했으므로 리뷰 또한 밍밍하게 갑니다. 남편과 별거 중인 애나는 변태스런 악취미가 있습니다. 카메라를 이빠이 확대해서 공원 너머에 있는 집들을 훔쳐보곤 해요. 평소대로 염탐질을 하던 애나는, 맞은편 건물의 창가에서 칼에 찔려 쓰러지는 여성을 목격합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은 기절했다 깨어난 애나에게 상황을 말해줍니다.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요. 말도 안 돼, 반발해 보지만 그럴수록 애나만 이상한 사람이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애나는 술과 약에 의존하는 광장공포증 환자였기 때문이죠. 뭐 이 정도면 무난한 스토리인데, 서론이 꽤 기니까 스킵 해 가면서 읽으세요.


애나는 약 1년 동안을 집 밖에 못 나가고 있었습니다. 위 사건이 있기 전, 그 집의 아들이 애나를 방문하고 돌아갔고요, 얼마 뒤 애 엄마도 찾아와서 애나랑 놀다 갔어요. 그 애 엄마가 다쳐가지고 놀라 기절까지 했던 거에요. 경찰은 물고 늘어지는 애나의 집으로 그 가족들을 다 불러옵니다. 말도 안 돼, 생판 모르는 여자가 애 엄마라네요. 아들과 아빠도 그렇다고 합니다. 근데 잠깐, 소년의 쫄은 듯한 표정이 괜시리 수상쩍군요. 그럼 뭐 합니까. 모두가 정신이상자의 해프닝으로 취급하는데요. 쩝.


저였으면 그냥 다 잊고 넘어갔을 거에요. 애초에 염탐질도 안 했겠지만요. 하지만 애나는 이번 사건에 답답하리만큼 집착해댑니다. 본인한테 이득이 없는데 왜 그리 매달리는 건지 이해가 안 가더라고요. 하도 그러니까 애 아빠도 몇 번을 찾아와서 버럭 하거든요?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개인주의가 팽배한 미국 사회에서 이런 오지랖도 다 있나 싶네요. 좀 적당히 하라는 생각이 들던 차에, 애나가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를 알겠더군요. 이렇게 병들고 욕먹는 자신을 친구해 준 유일한 사람이 그 집 소년이었으니까요. 역시 소설은 이렇게 번뜩이는 맛으로 읽어주는 겝니다.


되는 게 없는 애나는 집에서 술 먹고 영화보다 뻗기를 반복합니다. 그러다 휴대폰의 비밀번호가 바뀌어있고, 애나의 자는 사진이 메일로 오는 등 기묘한 일들이 발생해요. 오, 제법 분위기가 훅 달아올라 좋습니다. 이쯤부터 이야기의 템포가 오르고 리듬을 타기 시작합니다. 중계는 여기까지만 하겠고요, 속 터지는 주인공에 관한 주의사항이나 좀 적겠습니다. 일단 집 밖이 무섭다는 설정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어서요, 광장공포증을 극복한다는 기대는 하지 마세요. 그리고 음, 거짓말도 잘 하고 제멋대로라서 짜증이 폭발할 수가 있거든요? 읽다 보면 자꾸 잊어버리는데, 애나는 환자입니다. 그러니 잘 참으시길 바라요. 애나의 트라우마가 생긴 이유는 뒤에 가서 나오는데요, 혹시나 당분이 부족하면 욕 나올지도 몰라요. 쪼꼬렛이라도 드시면서 읽으시길 추천합니다. 장르소설 좀 읽는다는 분들은 대강 눈치챌만한 반전과 결말입니다. 하여 실망했다는 말도 이해되지만, 좋다고 난리부르스인 것도 이해는 돼걸랑요. 이래서 모중석 스릴러클럽이 좋아요. 아무리 못해도 평타는 치니까요. 그나저나 왜 경어체를 썼을까 깊이 후회하고 있습니다. 다 쓰고 보니 밍밍하지도 않네요. 그래도 교양은 있었다. 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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