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미트리오스의 가면 열린책들 세계문학 248
에릭 앰블러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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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지 않고 읽었는데도 실망했다면 기대를 했단 거겠지. 스파이소설의 원조라는 에릭 앰블러의 작품을 처음 접했는데, 와 이렇게 루즈한 첩보물도 다 있나 싶더라니깐. 아무리 뻔한 게 싫다지만 독자들이 어느 정도 바라는 전개가 있잖아? 그런데 자꾸 불길한 길로만 빠지면 읽는 내내 불안해진단 말이지. 혹시 잘못 걸린 게 아닐까, 괜히 시간만 뺏긴 건 아닐까 하고. <디미트리오스의 가면>은 딱 불안한 독서의 표본이었다. 정성 들여 쓰고 싶지 않으니 후딱 쓰고 끝내련다.


경찰을 따라 한 시신을 참관하게 된 추리 소설가. 살해당한 시신은 악명 높은 범죄자, 디미트리오스였다. 이 범죄자에게 호기심이 생긴 주인공은, 비공식 탐정이 되어 몰래 뒷조사에 들어간다. 여기저기를 떠돌면서 얻어낸 정보만 해도 디미트리오스는 위험인물이 분명하지만 많은 베일에 싸여있어 영 파악이 불가했다. 결국 꼬리가 밟혔는지, 디미트리오스와 일했던 X맨이 주인공을 협박해온다. 손 떼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소설가는 이대로 죽고 말 것인가.


이 작품이 노잼인 이유가, 이미 죽어버린 범죄자의 발자취를 알아내서 어쩔 거냐는 말이지. 차기 작품을 구상한다는 핑계야 있지만, 이미 주인공 스스로도 이 짓을 왜 계속하고 있는지를 자문한다. 독자 입장에서는 미결 사건을 풀 것도 아닌데 뭐 하러 계속 파고드는지 이해가 안 된다. 어떤 확신이나 동기 같은 게 없이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휘젓고 다니는 주인공이 그저 맥빠져 보일 뿐이다. 또한 디미트리오스가 죽었다는 설정으로 흘러가나, 조만간 진짜가 등장하실 게 뻔해서 일말의 기대조차 생기질 않는다. 늦어진 등장만큼 비중 또한 낮으니 활약이랄 것도 없이 퇴장해버린다. 물론 기대도 안 했지만 중요 인물을 이렇게 막 다뤄도 되는 건가. 보통 스토리가 부실하면 캐릭터빨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이 책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X맨은 소설가와 1급 정보를 합쳐 디미트리오스의 재산을 뜯어낼 계획이다. 이 X맨과 엮인 뒤 끌려만 다니는 주인공의 수동적인 플레이는, 디미트리오스가 등장했음에도 분위기를 바꿔놓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스파이가 안 나오는데 스파이 소설이 웬 말인지. 디미트리오스처럼 제 욕망을 가면 쓴 채 살아가는 이들이 있고, 타인의 욕망을 이용하여 제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선하게 사는 사람들도 어떤 상황과 기회가 주어지면 얼마든지 돌변할 수 있다는 인간의 본성을 다루려던 작품이 아니었을지. 아무튼 별로였다. 회사 책 뽀개기 마지막인데 쪼까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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