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11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1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은퇴 후 사설탐정이 되었다가 경찰국의 권유로 다시 복귀한 해리 보슈. 역시 능력만 있으면 굶어죽을 일은 없다는 거로군. 기존에 액션과 스릴이 가득하던 것과 다르게 매우 잔잔한 작품이다. 그러나 아무리 건조해도 코넬리 글에는 흡인력이 있어 말없이 빨려 든다. 그래서 재미없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이번 작품이 낮은 텐션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경찰국에서 제발 와달라고 사정사정한 게 아니라 전 파트너의 입김으로 겨우 복직한 것이고, 그래서 과거 고참의 파워와 영향력은 행사할 수도 없는 데다, 강력계에서 미제 사건 부서로 발령받기까지 하여 보슈의 말로는 가장 나이 많은 신참이 되어버린 셈. 그러나 그런 조건들은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고, 그저 형사 신분으로 돌아와 할 일이 생겼다는 것만으로 모든 게 반가운 인생 제3라운드의 늦깎이 주인공. 한마디로 나댈 수 없으니까 얌전히 지내는 중이다. 그렇다고 쫄아있을 보슈가 아니다. 다 늙어도 맹수는 맹수다.


이제 보슈와 파트너는 새 부서에서 잔뜩 쌓인 미제 사건들을 해결해 가야 한다. 이미 오래 지난 일인에다 사라진 자료들과 행방불명의 관계자들 등등 온통 맥빠지는 상황뿐인데, 그럼에도 뜨끈뜨끈하게 재수사를 해나가는 주인공들을 보며 작가의 역량에 또 한 번 감탄했다. 공백기가 있었지만 베테랑 형사의 감각이 빠르게 돌아오는 보슈를 보며 파트너는 안심하고, 독자 또한 기대를 부풀게 만든다. 이번 편에서는 사라진 소녀가 총살당한 시체로 발견된 미제 사건을 다룬다. 범인도 용의자도 없어 그대로 묻혀버렸던 옛 사건인데, 범인의 DNA가 묻은 총기가 발견되어 용의자를 찾아가는 내용이다. 솔직히 플롯은 너무 평범해서 리뷰하고 싶지 않다. 귀찮아서 생략하는 게 아님을 믿어달라.


소녀가 죽은 뒤로 부모의 삶은 엉망이 되어있었다. 아빠는 집 떠나 노숙생활을 하였고, 엄마 혼자 딸의 방을 보존하며 살아왔다. 두 사람을 인터뷰하면서 보슈 또한 딸 가진 아빠로써 마음이 찢어진다. 확실히 나이 먹고 자식 생기고 하니까 보슈도 많이 유순해지긴 했다. 이런 변화를 겪는 소설 속 형사들을 볼 때마다 이게 과연 좋은지 나쁜지를 잘 모르겠다. 여튼 그때와 달리 이젠 지문이나 피 검사 같은 과학기술 덕에 범인을 찾아낼 수 있다는 희망으로 그럴듯한 계획을 세우는 보슈와 일행들. 먼저 총기에 묻은 피의 주인을 찾아 접촉을 시도한다. 그 용의자를 미끼 삼아 진범을 끄집어낸다는 이 계획은, 중도에 용의자가 살해를 당하면서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그리고 이 수사를 주도한 보슈는 그의 죽음이 제 탓임을 알고 경찰국과 사회에 완전 찍혀버린다. 복직하자마자 잘릴 판이라니. 역시 주인공들은 굴려야 제맛이로다.


수사자료와 관계자들 사이에서 놓치고 있는 무언가를 내내 추리만 하고 있다. 보다시피 사건도 수사도 평범해서 별 스릴감은 없다. 그래서 이번 편의 관전 포인트는 단 하나이다. 보슈의 클라스는 여전하다는 사실. 그것 말고는 뭐가 없는 작품이라 썩 리뷰할 게 없네 그래. 분량이나 채울 겸 해리 보슈라는 캐릭터가 이토록 롱런하는 비결을 분석해 보자. 지금껏 지켜본 바로는 보슈가 늘 옳고 멋진 모습만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막 정의로운 사람도 아니고, 항상 약자의 편에 서는 타입도 아니었다. 한결같이 어둡기만 한 그의 인생은 어찌 보면 독자들을 지치게 만들법한 요인이다. 보고 있으면 주인공 스스로 평생을 패배자처럼 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를 포함한 전 세계 독자들은 이 떠돌이 코요테에게 감정을 이입한다. 그 이유는 바로 ‘찌질함‘에 있다. 어느 작품이건 사랑받는 인물들은 전부 찌질한 면을 지니고 있다. 거기에서 오는 친밀감과 유대감 때문에 온갖 미운 정 고운 정이 드는 거다. 코넬리의 페이소스를 다루는 기교는 가히 넘사벽이다. 이제는 주인공의 사건 수사나 활약보다도, 그의 찌질함이 어디까지 내려갈지가 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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