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이들의 가든파티
한차현 지음 / 강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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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게 나이들 자신이 없다면 적어도 추하게 늙지는 말자고 다짐해왔다. 한국은 예로부터 나잇값을 해야 인간 대접을 받곤 하는데 그럼 나잇값을 한다 못한다의 기준이 뭘까. 나는 그것을, 알고도 하는 행동과 모르고 하는 행동의 차이에서 판별된다고 본다. 지하철에서 큰소리로 통화를 한다던지, 흡연하면서 횡단보도를 건넌다던지, 음주운전하다 사고를 낸다던지 하는 이런 행동들이 잘못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근데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은 남들이 외면하고 눈감아주고 하니까 제 잘못된 행동들이 별문제 아니라고 여긴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지적을 받으면 오히려 적반하장이 되어 불같이 열을 내는 거다. 제 삼자에겐 훤히 보이는 문제점이 당사자들만 모른다. 왜 욕을 먹는지도 모를만큼 눈과 귀와 양심이 멀어버렸으니 그렇게 갑질을 하고 뉴스에 출연하는 게지. 왜 똑같은 뉴스를 보면서 자기성찰은 못하는 걸까.


먼저 연락 주신 출판사에 감사드린다. 참 오랜만에 한차현 작가의 책을 읽는데, 개인적으로 이 분의 작품은 장르물보다는 병맛물이 더 좋다는 결론이다. 이번 작품은 노인의 뇌를 청년에 몸에 이식시켜 수명을 연장하고 새 삶을 얻는다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교통사고를 당한 주인공 차연은 타인의 몸에 뇌 이식 수술을 받고 극적으로 살아난다. 이제 얼굴도 이름도 신분도 새로 생긴 차연은 수술 관계자들에게 보호를 가장한 감시를 받으면서 지내게 된다. 어느 날 국내 유명 기업들의 높으신 분들이 모인 자리로 불려간 차연은 자길 보며 입맛 다시는 그들에게 이상함을 느낀다. 이후 의문의 집단에게 납치당하고서 자신이 위험한 처지임을 듣게 되는데.


서사는 좋았지만 구조에 탄력이 없어서 아쉽다. 먼저 죽다 살아난 주인공의 캐릭터부터가 모호하다. 멋진 얼굴과 피지컬을 얻어서 기쁜 것도 아니고, 원치 않는 연명으로 절망스러운 것도 아니고, 정체성을 찾아 맞서싸우는 것도 아니다. 그냥 어? 어? 하면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끝나버리는 참 매력 없는 모습이었다. 사실 한차현 작가가 창조한 ‘모든 차연‘들은 다 매력이 없다. 근데 그 매력 없음이 곧 매력이었던 반면에 이번 주인공은 정말 매력이 없었다. 장르소설에서는 아무리 스토리가 좋아도 캐릭터가 부실하면 이처럼 말짱 꽝이 된다.


두 번째 아쉬운 점은 생각보다 좁았던 무대 크기이다. 노인들은 차연처럼 너도나도 젊은 육체를 얻어 목숨을 연장하고 싶어 했다. 하여 노인들이 각자의 탐심으로 차연을 노려오고, 차연은 여러 위기를 극복하고 간신히 살아남는 그런 내용이길 바랐다. 그런데 기대했던 액션도 없었거니와 그 많은 노인들 중 겨우 한 명만이 차연을 노렸고, 허무하리만치 계획이 무산된다. 다른 노인들은 전혀 등장하질 않는데, 그러면서 무슨 늙은이들의 가든파티란 건지 이해가 안 된다. 만약 여러 노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였다면, 그렇게 빅 스케일의 음모론 이야기로 확장했다면 더더욱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소문난 잔치였다. 이 외에도 자잘 자잘 한 아쉬움들이 많았지만 이쯤 하련다.


옷을 잘 입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대다수가 꺼려 하는 패션을 피하는 데에 있다. 이것만 지켜도 반은 먹고 간다. 그럼 글을 잘 쓴다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리 중요치 않은 장면에 디테일을 쏟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읽었던 최소한의 흡인력 있는 글들은 이런 원칙이 잘 지켜져 있었다. 스킵할 건 적당히 스킵하고 보여줄 건 화끈하게 보여주는, 말 그대로 치고 빠지는 게 약했던 이번 작품은 작가의 매력 발산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그래도 추하게 늙는다는 게 어떤 건지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다음에는 똥꼬발랄한 작품으로 돌아와 주시길. 두둥탁.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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