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식범 케이스릴러
노효두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이 살면서 한 번쯤은 터닝포인트를 가지기 마련인데 어떤 이는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가는 반면, 누군가는 실패와 몰락의 길에 들어서기도 한다. 뭔가를 후회할 때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고, 돌아간다면 이전 같은 선택은 절대 하지 않을 텐데 이미 엎질러진 물은 증발해서 구름이 되어버린 지금 이 무슨 쓸데없는 원맨쇼란 말인가. 해도 후회고 안 해도 후회라면 차라리 하고 후회하는게 낫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지나고보니 안 하고 하는 후회가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자신의 판단과 선택이 타인의 삶을 무너뜨렸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나 역시도 남에게 씻기 힘든 피해를 주거나 받아본 입장으로써 후회와 탄식 속에 빠져사는 기분을 아주 잘 안다. 아마 과거에 갇혀사는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을 텐데, 바로잡을 수 있으면 이제라도 노력해서 후회를 벗어나야 하고, 돌이킬 수 없다면 과거를 거울삼아서 현재의 후회를 줄여가야만 한다. 이번 소설은 후회를 이기지 못하고 굴복당한 상처투성이의 두 남자 이야기이다. 사람이 절망에 삼켜지고 복수에 눈이 멀면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따끈따끈한 케이스릴러 신작이외다.


범죄심리학자 도경수는 부친 산소에 갔다가 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이후 감금되었던 산중 건물에서 탈출한 그는 지나가던 차를 얻어 타지만 또다시 붙잡히고 만다. 놀랍게도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운전자. 자신의 얼굴을 훔친 이 엑스맨은 도경수의 가족들에게 접근하기 시작한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문득 여러 명의 후보자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고, 그를 향한 저마다의 원한이 불현듯 떠오른다. 그리고... 설마가 맞았다.


일단 스릴 면에서는 합격. 이 작품은 범인을 초반부터 공개하는 대결구도의 방식이다. 스릴러의 거장인 제프리 디버가 자주 쓰는 이 플롯은 범인 찾기보다 범행 동기에 포커스가 더 맞춰져있어서, 보다 입체적인 캐릭터가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대결 구도가 보여주는 액션 스릴감이 작품의 템포를 끌어올려 준다. 몇 년 전, 지적장애를 가진 도경수의 아들이 아파트 지하에서 여자아이를 살해했다. 그의 가족은 다른 범죄자에게 범행을 뒤집어씌우고 사건을 묻은 채로 살아왔다. 피해자 부모인 성형외과의 부부는 긴긴 수사 끝에 도경수를 의심하고 행적을 추적하여 복수를 실행하게 된 것. 면식범은 도경수의 얼굴로 성형까지 감행하고 그의 가족에게서 진실의 조각들을 긁어모으기 시작한다. 이미 피해자 부모는 업계에서도 밀려났고 가정도 파괴되어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었다. 도경수에게 복수하려는 면식범도 이해가 되고, 가족들을 지키려는 주인공도 이해가 되지만 정녕 이렇게 진흙탕 싸움으로 가야만 하나 싶어서 안타깝더라.


도경수의 얼굴을 하고 있는 면식범을 만난 주인공의 아내와 큰딸은 무방비로 당해버린다. 면식범에게 납치와 감금을 당하고 약물 주사를 맞게 되고, 딸의 남친도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그러나 도경수만이 목적이었던 면식범은 그의 가족들까지 죽일 마음은 없었다. 단지 진실을 알기 위해서 이렇게 가족까지 건들어야 하는 스스로가 불쾌하기만 했다. 반대로 도경수는 면식범을 쫓아다니는 내내 아들의 사건을 은폐해왔던 지난날들을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범죄심리학자면서 범죄자들의 말과 행동을 하고 있었고, 그러면서 여태껏 태연하게 방송이나 강연을 나가는 등 이 파렴치한 인생에 드디어 벌을 받나 보다 싶었다. 자신의 가족과 피해자 가족 모두에게 고통을 안겨준 것만 같아서, 면식범에게 당하는데도 그를 미워할 수가 없어했다. 자신이 얼마나 싫었으면 이렇게까지 큰 계획을 세워서 복수를 해오겠나 싶은 게지.


복수를 마치면 피해자 부모는 한국을 떠날 생각이고, 가족을 구하고 나면 주인공은 경찰에 실토할 생각이다. 나중에 가서 진짜 진실을 마주한 면식범은 도경수 가족에게 몹쓸 짓을 했음을 깨닫고 크게 절규한다. 알고 보니 도경수 가족도 자신처럼 봉변을 당한 거였고, 자신은 그들에게 의미 없는 공포를 심어준 꼴이었다. 한편 도경수는 사태를 이지경으로 만든 게 자신의 책임이라 여겨 진범을 찾아가 결판을 지으며 비참한 엔딩을 맞는다. 거참 되게 찝찝하고 뒤숭숭한 감정을 남겨준 작품이었다. 피해자였던 면식범은 돌연 가해자가 되었고, 가해자였던 주인공은 졸지에 피해자가 된 이 막장 인생들을 어쩌면 좋으랴. 이렇게 출구 없는 미로의 작품은 참 오랜만이다. 처음 본 작가인데 꽤 재미있게 읽었고, 국내의 스릴러 문학 수준이 많이 올라간 게 느껴진다. 더더욱 흥하여라. 흥.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