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귀 - 개정판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9
이종호 지음 / 황금가지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다들 학창시절에 학교괴담 한두 개쯤은 들어봤을 것으로 안다. 자살한 전교 1등, 폐쇄된 교실, 눈에서 피가 흐르는 동상 같은 이야기들. 나도 괴담의 진실을 확인하러 친구들과 자정 시간에 학교를 찾아갔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면 학교란 곳은 참 온갖 소문과 괴담으로 가득한 곳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괴담은 무서울수록 전달하는 화자에게 묘한 자부심을 갖게 한다. 그래서 세대를 거듭할수록 이야기는 와전되고 완성도를 갖추어서 하나의 실화가 된다. 실화인 듯 실화 아닌 실화 같은 <모녀귀>는 떠도는 괴담들을 모아다 각색한듯한 느낌이라 처음 읽어도 낯설지가 않다. 이 책은 <분신사바>라는 영화의 원작 소설인데 영화보다 더 재미있고 흡인력이 있다. 다만 이제는 워낙 익숙한 내용이라서 별로 무섭지가 않다는 게 단점이다.


왕따를 당한 전학생은 볼펜 점으로 귀신을 불러내어 가해자들을 저주한다. 가해학생들이 의문사를 당하자 학교와 마을은 뒤집어진다. 한편 전근 온 여교사에게 들러붙는 남자들은 30년 전의 불미스러운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외지에서 들어온 모녀가 마을 주민들에게 살해되었고, 사건을 은폐한 채 살아왔던 것이다. 죽은 모녀를 불러온 전학생과 여교사를 마을에서 추방하려 하나 커져만 가는 귀신의 원한을 어찌할 수가 없다. Y읍의 비극은 모두가 죽어야만 끝나는 것일까.


단순하면서도 완성도가 있다. 30년 전 사건과 관련된 Y읍의 사람들은 마을을 벗어날 수 없다는 설정이다. 알 수 없는 암묵적인 약속이 마을을 지배 중이었고, 과거를 쉬쉬하며 살아가는 주민 하나하나가 전부 비밀투성이였다. 독자는 외지인의 입장으로써 주민들이 무엇에 두려워하는지를 몰라 긴장하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폐쇄 지역인 Y읍은 외지인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과거에는 모녀를 따돌렸고, 현재는 전학생 가족과 여교사를 밀어내려 한다. 외지인들이 마을에 귀신을 불러와서 물을 흐려놨다고 생각하지만, 이 사태의 근원은 주민들에게 있었고 모두가 그걸 알면서도 사실을 부인하는 중이다. 모든 이야기들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향해 가듯 이 작품 또한 그렇다. 주민들이 모녀귀의 한을 풀어줄 생각은 안 하고 신경만 긁어대서 죽음을 자초한다. 지난 잘못에 대해 뉘우침 없이 남탓만 해대는 어리석은 자들은 역시 몽둥이가 약이다.


괴담 이야기는 클리셰를 완벽히 비껴가는 게 불가능한가? 뻔한 전개이지만 나쁘지 않았는데 죽은 모녀의 환생이나 영혼의 빙의 소재는 역시나 진부하다. 아니면 클리셰를 멋지게 뒤집을 장치라도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나름대로 인과응보 이야기인데 그 끝에는 정의도 없고 승자도 없다. 배드 엔딩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든 게 끝났으니 해피엔딩이 되는 걸까. 여튼 마무리되면서 또 다른 괴담으로 남는 결말이 은은한 여운을 준다. 사실 호러물에는 교훈이나 주제가 없어도 된다고 보는데 이 작품으로 인식이 조금 바뀌었다. 괴담물은 성격상 작품 속 구멍들을 일일이 메꾸지 않아도 된다. 듣는 사람이 알아서 해석해줄 것이고 더욱 미스터리한 이야기로 누군가에게 전해질 것이다. 오늘의 결론, 착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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