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Q - 탐정 아이제아 퀸타베의 사건노트
조 이데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3월
평점 :
절판


무면허 해결사인 흑인 탐정의 탄생이라고 하여 냉큼 서평 이벤트를 신청했다. 흑인으로써 그 많은 제약과 걸림돌을 어떻게 극복하면서 사건을 풀어나갈지가 궁금했는데 과연 기존 경찰/탐정 소설들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맛이 있었다. 미국에서 이런저런 상들을 수상하고 드라마까지 확정된 시리즈라 하니 기대들 하셔도 좋겠다. 출판사는 더욱 열일해주시길!


유명 래퍼의 크루한테 사건 의뢰를 받은 두 친구. 래퍼의 대 저택으로 초대형 핏불 개가 들어와 그를 공격하였고, 그 후로 래퍼는 정신이 나가버려 음반 작업은커녕 일상생활도 불가해졌다. 주인공들은 쉽게 핏불의 주인을 찾아내지만 그를 범인으로 지명하기엔 확증이 부족했다. 갈수록 상태가 악화돼가는 래퍼를 위해서라도 빨리 끝내야 하는데 어째 범인이 두 친구의 계획을 파악하는듯한 기분이다. 게다가 래퍼에게 불만을 품고 있는 크루 멤버들에게서 구린 냄새가 난다. 이들 중 킬러를 고용한 내부자는 누구일까.


주인공도 등장인물들도 흑인인 참신한 시리즈의 탄생이다. 주인공 아이제아는 탐정이나 경찰 같은 직업도 수사권도 없는 평범한 청년이다. 가족을 다 잃고 일찍이 빈민가에서 방탕한 삶을 살아온 터라, 이제껏 봐온 시리즈물의 주인공 이미지와 다르므로 다소 실망할지도 모른다. 타 주인공들은 힘, 계급, 권력, 영향력 등을 갖춘 상태로 나오는 반면 아이제아는 밑바닥 말단 사원으로 시작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인맥이라고는 사고만 치는 무개념 친구 하나뿐이라 대체 시리즈를 어떻게 이어나갈지조차 걱정이 든다. 여튼 1편만으로 시리즈의 색깔을 논하자면 굉장히 자유분방하면서도 와일드하다는 점이다. LA 슬럼가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작품이며, 흑인만의 문화생활과 가치관 그리고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까지 잘 녹아있어 작가가 꽤나 심혈을 기울였다는 게 느껴진다.


콤비로 활동하는 시리즈들이 그러하듯이 이 책도 정반대의 캐릭터들이 만나 삐거덕댄다. 주인공 아이제아와 무개념 친구 도슨은 단순히 성격만 다른게 아니라 흑인의 대표적인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아이제아는 소중했던 형을 사고로 보내고 절망과 괴로움으로 살아온 슬픔의 아이콘이며, 도슨은 대마초 팔고 갱단 활동에 감방을 들락날락하는 화려한 무법자이다. 애증의 관계인 두 친구는 끊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데 본인들은 심각하지만 보는 사람에겐 구경거리인 케미를 보여준다. 이번 편의 내용은 두 가지로 압축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주인공을 입체화 시키는 것인데, 타 작품처럼 신체적 결함이 아닌 트라우마를 핸디캡으로 준 것이 특히 좋았다. 여러 번 말했듯 나는 질병이나 장애로 골골대며 수사하는 주인공들이 지긋지긋하다. 그런데 아이제아는 내가 질색해하던 설정을 따르지 않아서 마음에 든다. 작가가 이 핸디캡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가 아주 기대된다. 두 번째는 힘없고 빽 없는 주인공들의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사회성 제로인 아이제아를 대신해 파트너 도슨이 건수를 잡고서 함께 의뢰를 맡는다. 필요에 따라 물건도 훔치고 불법 침입도 하는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경찰/탐정소설의 수사와는 딴판이라 생소하게만 느껴진다. 근데 맨땅에 헤딩하듯 날것으로 승부하니까 확실히 신선한 맛은 있다. 이제는 탐정형 캐릭터가 너무 많아서 더는 새로운 캐릭터가 나오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레드오션을 뚫다니, 작가의 센스가 참 대단하다.


메인 사건은 보기보다 간단하다. 사건 의뢰를 받자마자 핏불의 주인인 암살자의 정체가 금방 드러난다. 하지만 그에게 살해 동기를 발견치 못하자 여기에 조력자가 있다고 확신하나 의뢰인들은 하나같이 비협조적이다. 근데 이들보다도 파트너 도슨의 비협조가 아이제아를 뒤집어놓는다. 도슨은 아이제아가 싫어하는 짓만 골라서 했고, 갱들과의 총 난투극으로 시민들까지 죽게 만들었다. 이렇게나 상극인 두 사람이지만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이유가 분명했다. 아이제아는 트라우마를 지워버리고 싶어서 일을 원했고, 돈이 필요한 도슨은 돈 되는 건수를 아이제아에게 물어다 줘야 했다. 지주였던 형의 부재가 남긴 고통과 방황으로 삶의 의욕을 상실한 채 살아온 아이제아의 모습은, 앞으로 그가 헤쳐나갈 파도의 높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게 한다. 여튼 시리즈 첫 편이다 보니 어수선한 감은 있지만 와일드한 감성이 디폴트라서 딱히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여차여차해서 사건이 끝난 뒤 방탕한 생활을 접은 주인공은 좋은 곳에 재능기부하며 살기로 마음먹는다. 아마 2편부터는 인물도 사건도 스타일이 크게 바뀔듯한데 이 역시도 기대가 된다. 작가에게서 투 머치 토커의 기운이 느껴지지만 1편이니 너그럽게 봐주도록 하자. 끝.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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