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인, 재욱, 재훈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5
정세랑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살면서 ‘소설 같다‘는 표현을 쓰거나 본 적 있으신가요? 영화 같다, 드라마 같다, 시트콤 같다는 표현은 자주 하지만 소설 같다는 말은 거의 안 쓰죠. 영화나 드라마도 그렇지만 소설의 장르가 얼마나 다양한데 그 많은 걸 하나로 퉁쳐서 소설 같다고 하다니, 어딘가 이상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그런 표현을 쓰는 건 각자 생각하는 ‘소설‘의 정의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일 겁니다. 제게 영화는 아름답고 화려하고 감동적인 느낌이 연상되고요, 드라마는 아련하고 로맨틱하고 유쾌한 이미지가 연상됩니다. 근데 소설은 허무맹랑, 허구적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릅니다. 소설 읽는 게 취미인 저조차도 소설의 이미지가 이러한데 소설과 친하지 않은 분들은 오죽할까요.


소설의 리뷰를 전문적으로 쓰는 분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작품의 이야기, 즉 스토리텔링을 중요시한다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재미가 있어야 하는 거죠. 작품의 시대 반영, 주제의식, 필력, 철학... 이런 것들은 다 옵션이고요, 소설은 일단 재미가 먼저입니다. 작품성이나 예술성으로 소설을 찾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재밌겠다,는 판단으로 책을 고를 테니까요. 독서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참 소설답다고 느껴지는 작품을 만날 때가 있어요. 오로지 스토리만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작가의 파이팅이 담긴 경우입니다. 그런 책들은 내용이 복잡하지도 않고요, 기승전결도 굉장히 깔끔합니다. 웬만한 책들은 시간이 지나면 내용이 가물가물해지거든요? 근데 할머니가 손주에게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들은 안 그래요. 한번 듣고도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이런 게 스토리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재인, 재욱, 재훈>은 제가 얘기하는 ‘소설 다운‘ 소설입니다. 딱 스토리텔링만으로 승부하고 그 외에는 별다른 장치가 없어요. 마치 누가 나에게 재미난 ‘썰‘을 들려주는 기분입니다. 재미를 더하려고 살을 덧붙이지도 않아요. 그저 사건을 일어난 순서대로 말했을 뿐인데 재미있게 들리거든요. 이 책이 그랬습니다. 구조가 단순하고 적당히 재미있어서 한번 읽으면 안 잊어버릴 내용입니다. 삼 남매가 칼국숫집에서 식사한 뒤로부터 이상한 능력이 생겨요. 능력이라기보단 기이한 현상에 가까워서 별일 아닌 듯 잊어버립니다. 이제 세 사람은 서울 집을 떠나 뿔뿔이 흩어집니다. 재인은 대전 연구소로, 재욱은 아랍 사막에 파견 근무로, 재훈은 미국 조지아에 교환학생으로 가면서 타지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남매에게 출처불명의 소포가 와요. 의미를 알 수 없는 내용물과 ‘save‘가 적힌 쪽지가 들어있습니다. 딱 견적이 나오죠. 각자의 능력과 소포 속 물건으로 누군가를 구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입담 좋은 친구가 즉흥적으로 지어낸 듯 단순하면서도 흡인력이 대단해요. 저한테는 이런 게 소설답다고 느낍니다. 최소한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뽑아내는 작품이죠. 이렇게 가성비가 좋으면 작가도 독자도 윈윈 아닐까요.


앞에서 언급했던 ‘옵션‘이 이 책에도 있습니다. 스토리가 볼거리라면 옵션은 생각거리가 되겠네요. 다행히도 삼 남매는 타지에 가서 마음 맞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재인에겐 룸메가, 재욱에겐 계약직 인도인이, 재훈에겐 또래 학생들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홀로서기를 합니다. 그리고 삐걱대던 가족들과의 관계를 조금씩 회복하고요, 누군가를 구하게 되면서 이타적으로 변합니다. 저밖에 모르던 세 사람이 남을 생각할 줄 알게 되었다는 건 큰 변화입니다만 본인들은 잘 모릅니다. 어쩌면 독자들도 못 느끼고 그냥 넘어갔을 거예요. 겨울이 봄으로 넘어가듯 아주 천천히 바뀌거든요. 소설에는 이런 옵션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어요. 물론 옵션만 좋으면 안 됩니다. 물건을 살 때 디자인을 먼저 본 다음에 기능성이나 실용성을 따지는 것처럼요.


요즘 정세랑 작가의 인기가 장난이 아니죠. 작품마다 히트를 치고 <보건교사 안은영>이 드라마화되면서 팬층도 커졌습니다. 왜 그렇게 열광하는지 알 것도 같아요. 한국인들이 딱 좋아할 만한 스토리텔러입니다. 작품 레벨이 높지 않아서 독서가 어려운 분들도 입문하기 쉽겠어요. 개인적으로 휴가지에서 읽을만한 국내 소설이 많았으면 했는데 그런 감성 코드를 가진 작가가 드물어서 아쉬웠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한 명 찾아서 반갑네요. 이런 작가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전 이제 고양이들 밥 주러 가볼게요. 리뷰 쓰느라 무시했더니 옆에서 울고불고 난리네요. 이만 리뷰를 마칩니다.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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