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통하는 마음 - 제7회 스토리공모전 대상 수상작
전우진 지음 / 마카롱 / 2020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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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은 나와 맞지 않아서 거의 손대지 않았으나 이제는 편식하지 않기로 했다. 요즘 젊은 작가들에게는 한국 고유의 고리타분함을 찾아보기가 힘들던데, 과연 문학계도 세대교체가 되긴 했나 보다. 암튼 내년에는 국내 문학을 많이 읽는 것이 목표이다. 이번 리뷰의 책은 있는 줄도 몰랐던 교보문고 문학 시상제의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그리고 내가 식상해 하는 타임슬립 드라마였다. 개인적으로 먼 과거로 가는 설정보다 짧은 시간을 돌리는 편을 선호한다. 능력 발동시 곧바로 리스크가 생기는 후자의 경우가 전자보다 몰입이 잘 되기 때문. 단점은 능력을 쓰는 횟수가 잦다 보니 같은 장면 반복해서 틀어주는 예능 프로처럼 느껴진다는 거. 그래도 대상작이면 이름값할 거라고 믿었는데 내 생각이 틀렸다. 스토리는 좋았는데 주인공이 밥맛이다. 읽겠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나는 추천하지 않겠다.


주인공 정숙은 손바닥을 찔러 관통하면 15분 전으로 시간을 돌리는 능력자이다. 약간의 과거로 돌아가도 손의 통증은 그대로 남기에 어지간해서는 능력 없이 살아왔다. 남편의 퇴직금으로 편의점을 차린 그녀는 초 잘생긴 신입 알바생하고 바람난다. 난생처음 겪는 사랑 감정에 정신 못 차리는 정숙은 알바생 때문에 여러 번 손을 뚫고 시간을 돌린다. 그렇게 사랑에 눈먼 정숙은 알바생의 먹구름을 보지 못했고, 소나기에 온몸이 젖었을 때쯤 정신이 든다. 그러나 더 큰 먹구름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숙은 주책의 아이콘이다. 그리고 감정 컨트롤이 전혀 안되는 사람이다. 이기적이다가 급 인간적으로 변하고, 화났다가 금방 시들어버리는 참 피곤한 유형이다. 그 때문에 온갖 해프닝을 겪는 그녀가 큐피드 화살까지 맞았으니 책 제목을 ‘정숙은 못 말려‘로 수정해야 할 판이다. 알바생과의 만남으로부터 가족보다는 자신을 위한, 아니 알바생을 위한 삶으로 전환한 정숙. 그녀의 늦바람을 보면서도 그러려니 한 것은 나름의 소녀감성 때문이었다. 순수함과 순진함 사이에서 나온 그녀의 행동들이 그나마 내 이해 범위 안에 있었다. 그러나 풋풋한 감정들이 끈적끈적한 더티 러브로 바뀌면서 이해 범위를 넘어섰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이 작품의 모티브인 듯? 심지어 남편의 외도로 가정이 무너진 미용실 언니를 매일같이 보고서도 외도를 한다는 게 문화충격이었다. 그러면서도 괜히 찔려가지고 남편에게 짜증과 면박 주기를 반복하는 정숙. 그래도 중반까진 인간미가 있었는데 어쩌다 인성 파탄 비호감이 되었을까.


늦깎이 사랑꾼으로 거듭난 정숙은 알바생 때문에 수차례 손을 찌른다. 문제는 본인과 링크되어있는 딸에게도 고통이 간다는 사실. 엄마가 손을 찌를 때마다 딸은 갑자기 찾아든 고통을 참아야 했다. 그러지 말라는 딸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정숙은 시간을 돌리며 제 갈 길을 간다. 그러다가 미용실 언니에게 외도를 들키고, 유부남과 연애하는 언니의 딸을 알게 되고, 갑자기 임신 고백을 하는 정숙의 딸과, 편의점에서 터진 대형사고까지. 잇따라 발생한 사건들에 정신줄을 놓다가 마침내 콩깍지가 벗겨진 정숙. 이제 알바생은 퇴장하고, 정숙의 가족은 비정상회담을 시작한다. 아내의 바람을 알고도 모른척해왔던 남편은 정숙이 반성하길 바라는 심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나 반성하기는커녕 끝까지 당당한 그녀를 보면서, 이건 정숙보다 작가가 욕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인데 성깔을 고쳐주던가, 아님 참교육을 해주던가 뭐라도 했어야지. 아니면 반전을 기대한 내가 바보였나. 더 허무했던 건 내쫓자마자 바로 떠난 알바생이었다. 왜 작가는 그렇게나 비중 있는 인물을 단칼에 잘라버린 걸까. 배드 엔딩이면 캐릭터를 막 다뤄도 되는 건가.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작가의 의도가 궁금하다. 혹시나 제 글을 읽고 계신다면 댓글 좀 달아주시길.


이 작품이 왜 스토리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는지 알겠다. 정말 어디로 튈지 몰라 지루할 새가 없는 플롯이다. 개인적으로 작가 본인을 완급조절 담당 캐릭터로 만든 설정이 신선했다. 작품 속 우진은 실제 작가의 프로필과 성격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 칠칠맞은 정숙을 잡아주기도 하고, 알바생의 묘한 냄새를 감지해내는 등 분위기가 고조될 때면 한 번씩 등장해 교통정리를 해준다. 그런 역할이구나 하고 넘길 수 있지만, 우진의 개인사를 통해 작가가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떤 심정으로 버텨왔는지를 알게 한다. 이 분도 고생을 많이 하셨더만. 여튼 늦게나마 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차기작은 제발 멀쩡한 캐릭터로 커밍해주세요. 플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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