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비늘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20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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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문학을 좋아한다. 그래서 판타지 소설은 거의 읽지 않았다. 이런 장르는 비주얼이 중요해서 영상으로 보는 걸 더 선호하기 때문인데, 이렇게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저 그랬던 소설들이 영화로 보면 꽤 좋았다고 느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단 말이다. 그렇게 시각 효과가 주는 만족감에 판타지는 책보다 영상이 낫다고 생각해왔었는데 이 책은 그동안의 내 선입견을 완전히 박살 내주었다. 이 작품이라면 나같이 독서 입맛 까다롭고 환상문학을 멀리하는 분들도 얼마든지 좋아할 듯하다. 별이 다섯 개!


백어에게 소금 비늘을 받은 자는 평생에 운이 따르고, 반대로 훔친 자는 불운을 당한다. 별어마을에서 떠돌던 인어의 전설은 이내 현실이 되었다. 살해된 백어의 비늘을 훔친 자들이 시체로 발견된다. 다들 쉬쉬하느라 아무것도 모른 채 모친의 장례를 치른 순하는 마을을 떠나 기로 한다. 한편 도시에는 백어인 마리의 가족이 살고 있다. 비늘에 손대기 시작한 남편의 불상사를 면하려 아이와 집을 떠나는 마리. 남편은 도시로 올라온 순하의 도움으로 아내를 찾아가지만 그곳은 위험한 바다 한복판이었다.


내가 아는 인어의 이미지는 디즈니 만화에 나오는 에리얼 공주의 모습이 전부다. 그에 비하면 이 책의 인어는 흑백의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백어‘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물고기이다. 오래전에 쑥 마늘 챌린지로 인간이 되었던 웅녀 언니처럼, 뭍으로 나온 백어들은 남자와 혼인하여 인간으로 살아간다. 백어들은 남자들에게 단 하나의 조건만을 건다. 백어의 소금 비늘을 절대 탐내지 말 것. 그러나 이 선악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남자들은 약속을 어겨서 처참한 운명을 맞게 된다. 이 내용을 전제로 이야기가 쭉 진행되는데 그 중심에서 조금도 벗어나는 일이 없다. 그것은 처음부터 작가의 목적이나 목표가 확고했음을 증명한다. 한때 인터넷에 이런 말이 떠돌았었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이 책을 읽으면 그 말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그래서 이 작품의 원동력은 ‘욕심‘이다. 여러 인물들이 제 욕심을 따라 불운을 겪게 된다. 크게는 세 명을 꼽을 수 있는데, 첫째는 백어인 아내를 살해한 순하의 아버지이다. 시작부터 그는 아내를 죽이고 정신이 나간 채로 교도소에 갇힌 모습을 하고 있다. 백어의 비늘을 탐하였고 백어에게 죽기 전에 먼저 선수쳤지만 보다시피 결과는 참혹하다. 둘째는 백어인 마리의 남편인 용보이다. 등장인물 중 가장 밉상이지만 작가가 매우 공들인 캐릭터이다. 친구가 소개해준 마리와 결혼 후 잘 먹고 잘 살던 그는 아내의 비늘을 훔치고부터 불운이 달라붙는다. 그의 탐심은 제 발로 불운을 찾아다니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셋째는 용보에게 마리를 소개해준 대학 친구 준희이다. 대대로 소금 사업가 집안인 준희는 진실을 보여준다는 염린등을 완성하기 위해 비늘 수집에 집착한다. 직접 나서지 않고 남이 훔친 걸 구매하여 완성한 염린등이 보여준 진실은 바로 자신의 파멸이었다. 이렇게 허황된 욕심을 쫓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은 여러 인간 군상을 볼 수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행운과 불운을 향한 선택‘을 언급하였고, 나는 ‘감당치 못할 대가‘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졌다.


조선희 작가는 이 책으로 처음 만났는데 내공이 상당하시더라. 가장 눈에 띈 점은 작품의 분위기 조성이다. 분위기로 독자를 압도하는 기교는 정유정 작가의 전매특허라고 생각했었는데 조선희 작가에게서도 그 기교를 보게 되다니, 이것만으로도 위대한 작가를 발견한 기분이다. 대부분의 이름난 작가들이 필력으로 인정받곤 하는데, 사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보다 이야기를 잘 쓰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천상 이야기꾼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필력보다 흡인력으로 승부한다. 그래서 정유정 작가를 좋아했고, 같은 이유로 조선희 작가도 좋아질 예정이다. 이야기꾼들의 특징 두 번째는 풍부한 상상과 묘사인데, 이 분야에서는 장용민 작가를 빼놓을 수 없다. 장용민 작가도 문장보다는 이야기로 승부하는 타입이지만, 자신의 무한한 상상력을 탄탄한 스토리로 옮기는 내공이 단점들을 커버하고도 남는다. 그 인상을 조선희 작가에게도 받았다. 이 책은 작가가 창조한 가상의 세계관과, 그 무대를 지탱하는 인물들의 생명력과, 뚜렷한 메시지 전달력이 한데 모여 균형 잡힌 완성도를 보여준다. 아무튼 꽤 내 스타일이라 딱히 단점은 보지 못했는데, 다들 읽어보시면 장점만 눈에 들어올 거라 생각한다.


‘욕심‘을 주제로 한 작품이라 그런지 남 얘기 같지가 않았다. 사실 욕심 앞에서는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후회가 남는다. 후회가 많은 사람일수록 삶에 미련이 없다고 느끼게 된다. 나도 그랬기에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안다. 걱정이 걱정을 낳는 것처럼, 후회도 후회를 계속 낳는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것부터 멈춰야 한다. 준희를 죽도록 시기하는 용보를 보면, 열등감이 얼마나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드는지 알 수 있다. 내가 너보다 못한 게 뭐냐는 감정보다, 너는 너고 나는 나라는 쿨한 마음가짐이 우선이다. 물론 당장 눈앞에 보이는 타인의 인기와 성공을 무시하긴 힘들지. 그래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후회하지 않으려면 연습해서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더 나아진 나를 바라면서.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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