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였을 때
민카 켄트 지음, 공보경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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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이라는 게 참 그렇다. 어떤 대상에 대한 좋고 싫음에 따라 아군과 적군이 생긴다. 음식으로 예를 들면, 같은 걸 먹었어도 누구는 맛없다 하고 누구는 맛있다 한다. 이것은 음식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취향 차이이다. 그런데 열 명 중에 아홉 명이 맛있다고 하면 맛없다는 한 명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된다. 다음은 거리에서 빨게 벗고 행위예술 중인 사람이 있다 치자. 구경꾼마다 미쳤다며 소리 지르는데, 혼자서 박수 치며 감탄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도 똑같은 취급을 받는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인식한다. 그냥 취향을 존중해주면 그만인데, 소수자들을 혐오하다 못해 정신 이상자로 몰아간다. 이 현상은 문학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대다수가 극찬하는 작품이 나한테는 영 시시할 수가 있고, 저평가 받아온 작품에서 반전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같은 책을 읽어도 누구는 만점을 주고 누구는 점수조차 매기지 않는다. 심지어 읽은 책마다 습관적으로 만점 주는 사람도 있다. 이 모두가 취향이 다른 것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을 좋게 못 봐주는 나 같은 소수자의 취향도 존중해주길 바란다. 이 말을 하려고 열심히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출판사의 책 소개 글은 대강 이렇다. 강도 당해 기억을 잃은 여주에게 본인의 이름으로 임대한 계약서가 날라오고, 자신을 흉내 내며 살고 있는 여자를 발견하여 절망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맞는 내용이긴 한데 어쩐지 또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읽어보면 그 여자와의 갈등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기 때문. 내 버전으로 소개 글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임차인 유부남을 흠모하는 집주인 여주가 알고 보니 그의 아내라고 한다. 묻지 마 폭행을 당하고 정신불안 증세로 살아가는 그녀와의 이혼을 준비 중이던 남편은 사실 여주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한 사기꾼이었다. 그의 계략에 빠져 신분도 잃고, 정신병원에 감금돼버린 그녀는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을 것인가.


이 책은 여주보다도 남편을 사칭한 남자가 더 주인공에 가깝고, 스토리도 잘 이끌고 간다. 남자가 부자인 여주를 목표물로 정한 것은, 가난했던 과거에 대한 열등감으로부터 비롯된 줄 알았다. 작품 내내 남자는 똑같이 가난했던 그의 연인에게 돈 걱정 없는 미래를 선물해주고 싶어 안달 나 있었다. 자신을 대신해서 교도소까지 다녀온 그녀였기에 지난날들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던 그였으니까. 다만 그 방식이 사탄도 혀를 내두를만한 범죄라서 그렇지, 남자의 순애보는 그만큼 진심이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해 못 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이유를 알고 나니 뭐 하러 힘들게 생각했나 싶다. 폭력적인 부친과 가난 속에서 거짓말과 임기응변으로 살아온 남자는 그것들을 본인의 재능으로 여겼으나, 그게 오히려 독이 되어 덫에 걸리고 만다. 그리하여 끝내는 연인을 버리고 혼자 사는 길을 택하는 의리의리한 남자. 아무튼 거시기한 사정을 지닌 이 남자의 캐릭터는 꽤나 입체적이다. 여주보다 남자의 사정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내용을 지켜볼수록 여주의 위치는 더더욱 애매하게만 보인다. 내 관점과 해석이 특이한 거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앞서 말했듯이 취향을 존중해달라.


솔직히 심리 스릴러라 부르기도 민망하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혀 재산도 탈탈 털리고, 신분도 도용당했다는 사실에 공황 상태가 된 그녀는 남자가 달아날까 봐 신고조차 못하는 상태이다. 이렇게 남자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다가, 후에는 겁먹어서 그의 연기에 맞춰주고만 있는데 심리는 무슨 심리? 이럴 거면 차라리 심신 미약 스릴러라고 부르자. 빼앗긴 신분은 그 여자가 직접 찾아옴으로써 해결되었고, 남자는 도주하다가 경찰에 붙잡혀 허무하게 끝난다. 보시다시피 남자에게 죗값을 치르게 하기 위해 주인공이 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딱히 반전이라 할 만한 상황도 없고, 모든 조각들이 우연처럼 딱딱 맞아떨어져 없던 긴장감도 마구마구 떨어뜨린다. 작가 나름대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게 느껴졌지만, 미안하게도 내 심장은 흔들림 하나 없는 시몬스 침대 그 자체였다. 며칠 전에 읽은 심리 스릴러인 ‘익명의 소녀‘와 비교해보면 수준이 매우 낮은 편이다. 내 기준에 그렇다는 말이지, 남들의 감상평을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원래 ‘스릴러‘라는 장르 자체가 인간의 심리에 기반을 두고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굳이 ‘심리 스릴러‘라는 장르를 구분했다는 건 그쪽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건데, 타 스릴러 장르와 차별성이 없다면 그게 다 무슨 의미인가 싶다. 그건 그렇고 한글날을 기념하여 최대한 한글로만 서평을 써봤는데 생각만큼 어색하거나 불편한 건 없었다. 앞으로는 나의 색깔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방식의 글쓰기를 이것저것 시도해볼 계획이다. 맛있는 음식도 계속 먹으면 물려버리는데, 글쓰기라고 다를까? 글쟁이라면 한 번쯤 고민해볼 문제이나 딱히 정답은 없다. 이것 또한 취향의 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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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당 2020-12-25 09: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별 두개 주는게 너무 너무 미안한가요? 전혀 그러실 것 없습니다,저는 책을 고를 때 가장 혹독한 평가의 평에 주목한답니다, 알라딘에 별 다섯개씩 주는-그게 내 보기에 님 말씀처럼 진짜 취향이라면 백프로 존중하는데-알바생들 이거 어찌보면 범죄수준 아니냐 따지기도 했습니다.

물감 2023-03-10 16:12   좋아요 0 | URL
댓글 감사합니다. 저도 물건을 사거나 책을 고르거나 할때 비평을 위주로 살피는 편이에요. 특히 책에는 너무 많이 낚여봐서 진짜 좋은 작품도 삐딱하게 보는 버릇이 생겼어요. 그리고 알바생들은 딱 봐도 티가 나니 그런가보다 하겠는데, 진지한 리뷰어들도 알바글과 똑같은 평을 쓸 때도 많더군요. 참 볼 때마다 속이 다 터집니다. 그래도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의 댓글을 받으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