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활동
이시우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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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시작과 함께 추석 연휴를 맞이하였다. 이럴 때에 진도 잘 안 나가는 두꺼운 책들을 읽어주면 참 좋을 텐데, 반대로 나는 평소에 어려운 책을 읽고 휴일에 가벼운 책을 읽는 편이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으나 돌아보니 그러고 있었더라는 소소한 삶의 발견으로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 괜히 특별해지는 느낌이 든다. 여하튼 요즘같이 날씨 좋을 때 읽기 딱 좋은 신간이 나와 연휴 동안 느긋하게 읽어야지 했는데 펴자마자 금세 다 읽어서 당황했다. 이 작품, 속도감이 장난 아니다. 내가 아는 페이지 터너 소설 중에서 가히 원탑이다. 애석하게도 쉬는 타이밍을 못 잡아서 결국 끝까지 읽어버렸다. 그렇다고 내용이 가볍거나 작품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다소 식상할 수도 있는 문제아의 성장 드라마인데, 재미와 메시지와 남성들의 판타지까지 꽉꽉 눌러 담은 고농축 로열젤리 같은 작품이다. 그니까 믿고 함 잡숴봐.


인적 드문 길목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시체 하나. 그것을 최초 목격한 전교 꼴찌 남학생과, 전교 1등의 같은 반 여학생. 친구의 도움으로 경찰에 신고하여 잘 마무리했지만, 자신이 살인범이라는 인터넷 기사들과 CCTV 사진이 돌고 있었다. 아무도 믿지 않는 자신의 결백을 위해 한 번 더 전교 1등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주인공. 현장의 CCTV 서버를 해킹한 소녀는 이 일에 정체불명의 조직이 있음을 알게 되고, 정보가 노출된 적들은 주인공을 죽이려고 달려든다. 대체 이들은 누구 관대 일면식도 없는 소년에게 범죄를 뒤집어 씌우는가.


문제아 소년과 천재 소녀의 콤비네이션? 육체파와 두뇌파가 만나 공동의 적을 무찌르는 일반 학원물인 줄 알았다. 근데 우째 가면 갈수록 생각처럼 가볍지만은 않은 것이어라. 도시의 CCTV를 장악하는 의문의 조직, 일명 ‘동호회‘는 공무원, 병원, 학교, 기업 등등 사회 각 계층의 종사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각자의 신분과 지위를 이용하여 살인을 취미 삼는 범죄 집단이었다. 그런데 겨우 고딩 두 명에게 아지트도 들키고 보안망도 뚫리는 등 이례 없는 봉변을 겪는다. 이리하여 소년은 도망자 신세가 되고, 해커 소녀의 지원사격에 의지하며 외로운 생존게임을 이어나간다. 알고 보니 부패한 권력자들에게 대항하는 취약계층의 쟁투를 다루는 제법 진지한 작품이었다. 근데 아무리 쌈 좀 한다지만 일개 고등학생일 뿐인데 캡틴 아메리카 같은 신체능력을 부여한 건 쪼까 거시기 했으요.


중간중간에 소년의 과거가 간간이 소개된다. 어렸을 적 화재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삼촌과 살아온 주인공. 부모를 죽인 자식이라는 누명을 쓰고 세상에게 학대받아왔고, 일진들과의 쌈박질로 둘도 없는 문제아가 되었으며, 그렇게 앞집 똥개도 무시하는 왕따로 살아가는 외톨이. 종합해볼 때 현실을 극복해내는 성장물이 분명한데, 연속되는 액션신 속에서 뭘 어떻게 성장을 한다는 건지 궁금할 것이다. 먼저 삶에 미련이 없던 소년이 살기 위해 도망 다니는 아이러니함에서부터 성장판이 열린다. 그 이면에는 삼촌의 목숨이 걸린 것도 있지만, 자신을 돕다 위험해진 친구를 생각해서라도 죽음에 굴복해서는 안되는 이유에서였다. 그 결과, 자신을 벌레보듯 하던 삼촌에게도 인정받게 되고, 끝까지 한패가 되어준 여학생에게도 호감을 산다. 아, 참고로 소녀는 아이돌 저리 가라 할 절세 미녀라는 설정을 갖고 있다. 그래서 모태솔로 주인공이 소녀와 말을 섞을 때마다 몸속에서 활화산이 폭발해대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풋풋하던지, 이성에 눈 뜨기 시작하던 나의 학창시절이 생각나더라. 모든 게 서툴렀지만 가장 순수했던 그때가.


여하간 성장소설치고는 참 혈기왕성한 작품이다. 수퍼 액션이 과다 첨가돼있지만 메시지는 분명한 청소년 문학이다. 사실 이 장르도 범죄소설처럼 인물이나 환경이 비슷하다 보니 작품의 분위기 또한 고만고만한 편이다. 게다가 잘 보면 클리셰도 되게 많다. 그럼에도 늘 꾸준히 대중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뭘까. 아마도 다들 그 시절을 겪어봐서가 아닐까 한다. 한때 우리는 모두 똑같은 고민을 하고 방황하던 청소년이었다. 그렇기에 주인공들의 고충을 내 문제처럼 여기게 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성장소설의 진짜 매력은 그 누구라도 엇나간 일진을 이해하고, 왕따 학생을 이해하고, 소년소녀 가장을 이해한다는 데에 있다. 본래 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의 심정을 아는 법인데, 경험해보지 않고도 타인을 공감할 수 있다는 건 일종의 마법 같은 일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도 단순히 재미로만 읽고 끝나지 말았으면 한다.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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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6 16: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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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7 14: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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