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멘타 하인학교 (무선) - 야콥 폰 군텐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
로베르트 발저 지음, 홍길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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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 1위는 유튜버라는 뉴스를 언젠가 본 적이 있다. 돈도 잘 벌고 인기도 얻고 힘든 직장생활 안 해도 되니 과연 그럴 만도 하겠다. 그런데 이제 유튜브는 레드오션이 돼버린 지 오래고,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매일같이 자극적인 영상을 업로드한다. 별 내용 없이 어그로끄는 영상도 넘쳐나지만, 어려운 지식을 쉽고 재밌게 설명하려고 자극적으로 만든 영상도 많다. 이처럼 틀을 깨버리는 방식은 관점에 따라 센스 있고 썩 괜찮은 마케팅이 된다. 이것은 문학에도 동일하게 적용이 된다. 순문학 문체로 쓰인 스릴러소설, 일기장 형식의 미스터리 소설, 살인죄를 다루는 성장 소설, 심리학에 가까운 고전소설 등등. 장르 자체를 새롭게 해석한 경우도 있지만, 이야기 속의 캐릭터를 색다르게 다룬 경우도 더러 있는데, 이 책은 후자에 해당된다. 그리고 제 점수는요, F 주려다 C- 드립니다.


귀족 아들이 집 떠나와 벤야멘타 학교에 입학한다. 이곳의 학생들은 학문이 아니라 하인이 되기 위한 양성교육을 받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과 달라 실망한 소년은 점점 나사 풀린 행동들을 개시한다. 그리고 지금껏 본 적 없는 캐릭터에 뿅이 간 선생들에게 무한 애정을 받게 된다. 이후 친구들은 취업해서 하나둘 학교를 떠나고 소년은 최후의 취업 준비생이 된다.


보시다시피 줄거리는 정말 별거 없다. 이 책은 어떤 서사의 기록이 아닌 소년의 독백 일기에 가깝다. 근데 그 많은 독백을 읽고도 주인공의 세계관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사실 성장소설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그렇긴 한데 이 책의 소년은 유독 별난 놈이었다. 소년은 인간이 규정을 위반할 때 기쁨과 활력을 얻곤 했다. 그래서 남들을 자극해대고 그들이 돌변할 때에 나오는 이중적인 모습 보기를 즐거워하였다. 그러면서도 아둔하고 무지한 이들을 사랑했고, 그런 친구들의 성공을 바라는 사차원 캐릭터였다. 암튼 속사포로 쏟아내는 그의 횡설수설 독백들 가운데 이런 내용이 나온다. 자신은 모든 것을 얻고 싶고 모든 걸 경험하고 싶다는 말. 이 부분에서 소년의 뇌구조를 얼추 알 것도 같았다. 규정대로 산다는 것은 반쪽짜리 경험이다. 그래서 규정을 위반하는 행위는 그 사람의 존재를 더 밝히 드러낸다. 금지된 욕망들은 얼마나 아름답고 매혹적이던가. 그런 것들을 경험해봄으로써 스스로 더 빛나게 된다면 소년이 왜 청개구리 행동을 했는지 알 것도 같고. 


벤야멘타 학교에서는 오직 강요, 규칙, 명령만이 전부였으며 개개인은 볼품없고 미미한 존재임을 각인시켰다. 그렇게 학생들은 세상에 나가기 전, 장차 만날 주인에게 수종들고 존경하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런 걸 배우지 않고도 윗사람을 섬기고 받드는 척을 할 줄 알았다. 반대로 동급생들 앞에서는 모자라고 덜떨어진 놈처럼 행세했다. 그래서 더 이상해 보였다. 보통은 윗사람에게 반항을 하고, 친구들한테는 잘난 척을 하는 게 정상 아닌가? 아무튼 규정을 위반하는 행위는 그렇게 계속되었다.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을 사랑하는 소년의 자아는 친구인 크라우스를 대하는 모습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크라우스는 매뉴얼대로만 움직이는 인간 교과서로, 소년과는 정반대 성향의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소년은 틈날 때마다 그의 신경을 긁어댔고, 매번 흥분한 친구는 소년에게 화내고 잔소리한다. 이같이 인간의 격양된 감정과 태도에서 사랑을 느낀 소년은 크라우스가 학교를 떠날 때까지도 그 짓을 반복한다. 이 반사회적 행동들이 그저 심술쟁이 철부지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꽉 막힌 사회와 세상을 향한 외침과 도약처럼 느껴진달까. 해설을 읽고 작가의 생애를 알고서야 왜 소년이 ‘반 영웅‘이라 불리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미래를 구현하고 싶어서 하인 학교를 들어갔다는 말도 납득이 됐다. 영웅은 정말 힘든 직업이야.


많은 독자들이 고전을 읽지 않는 이유가 솔직히 뭐겠나. 가장 먼저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딱딱한 대화체, 지루한 분위기, 난해한 전개 방식과 흐름 등등. 이것들을 어떻게든 이겨내면서 내용과 주제를 파악해야 하는 게 정말 쉽지가 않다. 물론 고전문학이 재미로 읽는 책은 아니지. 누구 말대로 인생의 진리를 발견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한 목적이 더 크지. 맞는 말이고 다 좋은데 소설인 만큼 최소한의 재미는 갖춰야 하지 않을까? 재미와 메시지 둘 다 갖춘 엑설런트한 고전 작도 얼마든지 있는데요. 현대문학이 이 정도로 노잼이라면 이미 출판사에서 컷 당했을 것을, 그나마 고전이라는 타이틀 덕분에 출간도 되고 독자들이 읽어준다는 생각이 든다. 여튼 어떤 책이라도 죽어라 연구하고 분석하다 보면 뭐라도 알게 되고 깨닫는 게 있었는데, 이번 작품은 그런 게 없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아 됐고, 오늘 밤은 치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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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20-09-27 2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적극 공감되는 네 글자, 횡.설.수.설!!!ㅎㅎ

<글자 감상평>
1글자: 헐!
2글자: 노잼ㅠ
3글자: 도대체!
4글자: 이게 뭥미?
5글자: 읽긴 읽었어.
6글자: 무슨 말을 할까~
7글자: 그래서 어쩌라고!
8글자: 어디서부터 어떻게
9글자: 이렇게 고개만 떨군 나.
10글자: 고전이고 나발이고 된장!

고전 극기 훈련 코스를 지나온 한 달이었습니다~ 그래도 저 혼자 재미없었으면 심히 억울할 뻔했는데 물감님 덕분에 위로받고 갑니다~ㅋㅋ

물감 2020-09-28 10:39   좋아요 2 | URL
오랜만이네요, 나비종님! 너무 오래 기다렸어요 ㅎㅎㅎ
책은 얇은데 의외로 골치아프게 하더라고요.
나비종님의 댓글을 보니 이제껏 고른 책 중에 최악이었음을 실감하는 바입니다 ㅎㅎㅎ
일반 소설이었다면 이미 책 덮고 다른 걸 읽었을 거에요 ^^

이 고전 시리즈는 해설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리 연구해도 뭔 말인지 모르겠을때 지푸라기라도 잡도록 해주니까요 ㅎㅎ
전에 읽었던 ‘말라 온다‘의 주인공도 반 영웅 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야콥에게는 반 영웅의 타이틀이 영 공감 안되네요.
아무튼 무지 별로였던 작품이었습니다 ㅋㅋㅋㅋ

9월도 고생하셨어요, 앞으로 어떤 산을 넘어야 할지 두근두근하네요!
추석 연휴 잘보내시고 건강 또 건강하시길 바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