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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합본 특별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20년 6월
평점 :
품절
먼저 연락 주신 출판사에 감사드린다. 하루키의 대단한 필력은 인정하지만 작가만의 멜랑꼴리한 정서가 나랑 맞지 않아 더 이상은 그의 작품을 읽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그렇지만 다른 리뷰에서도 밝힌 바, 출판사의 서평 요청이라면 언제든지 대환영인 나님은 제공 도서가 하루키라고 해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자본주의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니깐요. 이 책은 내가 읽었던 벽돌 책 중에 베스트 파이브에 들 정도로 두껍지만 워낙 가독성이 좋아 파바박 휘리릭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렇지만 생각하느라 브레이크 걸리는 구간이 많으므로 천천히 장면들을 곱씹으며 읽길 바란다. 암튼 하루키 작품 리뷰는 온통 찬양하는 글들 뿐이라 나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출판사의 정성도 있고 하니 당근과 채찍질을 돌아가며 정성을 담아보도록 하겠다.
내 앞에 무수한 리뷰들이 즐비하므로 줄거리 요약은 생략한다. 주인공의 의식과 무의식 세계의 내용이 교차하며 진행된다. 보통은 A와 B의 시점이 후반에 합쳐지는데, 이 책은 A의 두 시점인데다가 그것이 몸 밖과 몸 안에서 일어나는 상황이므로 하나인 듯 하나 아닌 하나같은 독특한 플롯이다. 참 아이디어도 좋고 표현력이나 상상력도 풍부한 작가다. 나는 하루키의 장점 중에 관찰력을 가장 손꼽는데, 관찰력 좋은 여러 작가들 중 유독 하루키가 돋보이는 건 섬세한 강약 조절로 투머치한 느낌을 주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워낙 디테일을 중요시해서 가끔은 분량 조절에 실패하지만 술술 읽히는 걸 보면 역시 능력자 답다고나 할까. 액션이나 스릴러 장르가 아닌데도 속도감을 갖출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 이러한 하루키의 묘사와 표현방식은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기도 하다. 화자의 느낌이나 생각 같은 인물의 감정이 배제된 채 철저하게 눈앞에 보이는 장면만 설명할 때가 많아서, 이게 캐릭터의 시점인지 작가의 시점인지 분간이 잘 안된다. 근데 ‘1Q84‘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사실주의에 초현실주의를 입힌 거라 그 불분명한 시점들이 작가의 의도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어떤 평을 듣든 간에 하루키는 본인만의 철학이 확고하고, 낭만을 즐길 줄 알고,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거침없이 분출한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를 외치는 건 그만한 신념이 있어서겠지만, ‘다 필요 없고 마이웨이 하겠다‘는 식의 절대 신념이 내게는 그리 멋져 보이진 않는다.
현실 속 주인공은 특수작업을 처리하기 위한 조직의 인체실험 대상자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그는 스스로 의식 속에 들어가 무질서한 기억의 혼돈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강한 성향으로 운 좋게 목숨을 보호받은 셈이었다. 그리고 현재 조직은 주인공을 기초 샘플로 삼아 제2세대를 만들 계획이다. 왜 자신에게 유별난 계산능력이 생긴 건지, 조직과 기호사에게 왜 쫓기는 신세가 되었는지, 왜 그가 열쇠인 건지 알게 된 주인공은 한탄을 하면서도 제 팔자를 묵묵히 받아들였다. 박사의 손녀가 그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잘해준 덕분이다. 한편 그의 자아 세계인 ‘세계의 끝‘에서는 모두가 마음과 감정을 잃고 살아간다. 거기서 주인공도 자신의 그림자와 분리되어 마음을 잃어버린 채 조금씩 현실에 안주하려고 한다. 그런 주인공을 야단치고 함께 탈출 계획을 세우는 그림자 덕분에 의식이 끊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주인공처럼 삶이 엉망이고 심신이 지쳐버리면 상황을 이겨낼 생각보다 전부 내려놓고 자포자기 심정이 되기 쉽다. 그 와중에 눈앞에 유토피아가 준비돼있다면 누가 그걸 마다할까. 고통의 감정들과 가혹한 현실은 그만 잊고 낙원으로 뛰어들고 싶지 않을까. 나 같으면 자아를 잃든 말든 원하는 세상 속에 머물고 싶을 것 같다. 작가에겐 미안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아무리 봐도 디스토피아라서요.
1Q84 작품과 여러모로 분위기나 코드가 비슷하다. 현실과 또 다른 세계의 평행 우주, 예정된 종말과 파국, 뒷세계의 기밀과 음모론, 위기에 놓인 두 남녀 등등. 거기에다 하루키 전매특허인 저 텐션과 양반걸음 템포마저. 나쁘진 않지만 매 작품마다 주인공 성격이 다 고만고만한 게 영 불만스럽다. 섹스 라이프를 즐기는 수수한 초식남? 아마 작가 본인의 성격이 그대로 반영된 듯한데 그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매번 이런 식이니 인물 설정에 별로 성의를 두지 않는 건가 싶다. 게다가 이 책의 모든 인물들은 이름도 없다. 박사, 노인, 그녀, 문지기 같은 식으로 불린다. 캐릭터보다는 세계관으로 승부수를 던질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이 책은 인물들의 비중이 커서 매력 발산을 다 못한듯하다. 그래도 작가가 창조한 세계관과 고유의 환상적인 분위기 연출은 감탄의 연속이었다. 개인적으로 1Q84의 세계관보다 훨씬 균형 있었고, 다른 차원 세계로의 연결과 접근도 그렇고, 풀어나가는 전개 방식도 매끄러웠다고 생각한다. 특히 완급조절에 신경 썼다는 걸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주인공을 노리는 무리들의 정체, 주인공의 존재와 선택받은 이유,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위기 등등 각종 이슈들이 적절한 타이밍에 잘 치고 들어온다. 1Q84는 길이 막혀서 헤매는 구간이 꽤 많았는데, 이 작품은 막힘없이 자연스러운 게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난다.
매듭짓지 않고 흐지부지 끝난 내용이 많았다. 조직과 기호사에게 찍혔다면서 초반의 이 인조 외에는 아무도 위협해오질 않았다. 끝날 때까지 별 탈 없는 걸 보면 두 단체는 그냥 맥거핀이었나 싶다. 노 박사의 두개골 컬렉션과 일각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엄청나게 중요한 물건인 양 다루더니 나중 가선 방콕 신세가 된다. 지하세계의 ‘야미쿠로‘라는 끔찍한 존재들도 언급만 있을 뿐 딱히 등장하지는 않더라. 무엇보다 엔딩이 가장 아쉬웠다. 무의식의 세계에 영영히 갇히게 된 그는 현실로 다시 돌아올 가능성을 찾아냈다. 그리고 박사의 손녀딸에게 곧 돌아올 거라는 암시를 준다. 근데 세계의 끝에서는 그림자와 탈출 직전까지 가서 왜 그 가능성을 버렸을까. 그쯤에는 무의식 세계의 주인공도 탈출하면 현실에서 깨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여하튼 그의 최종 선택이 스토리 면에서는 나쁘진 않았다만, 메시지 측면에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작가는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곳의 평화는 정상이 아니라고 하였다. 처음부터 줄곧 마음을 잃게 되면 그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며, 비록 불완전하더라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하였다. 그런데 제멋대로 만들어낸 무의식의 세계를 책임질 필요가 있다며 그곳에 남겠다는 건 글쎄요. 자아를 찾아낸들 사유세계에서 평생 지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작가의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이 그저 당황스럽다. 어찌 되었건 내용물만 좋으면 포장은 상관없단 말입니까. 그래요, 그럴 수도 있지 뭐. 이래저래 잘 읽었고, 읽었던 장편 중에는 가장 괜찮았던 작품이었다. 언제나처럼 하루키 문학은 생각할 것도 많고 분석할 것도 많아서 리뷰가 길어졌다. 어째 이번에는 리뷰 쓰는 것보다 완독하는 게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난 이제 지쳤어요, 땡벌.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