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고 말해 스토리콜렉터 52
마이클 로보텀 지음, 최필원 옮김 / 북로드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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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텀 소설도 꽤 오랜만에 읽는다. 나는 독서 슬럼프에 빠졌거나, 앞서 읽은 책들이 연달아 꽝일때 기분전환을 위해 찾는 작가가 몇몇 있다. 이 작가도 그중 하나인데, 내놓는 작품마다 평타 이상의 수준으로 빅재미를 보장하는 프로페셔널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처방전 용도로만 찾기 때문에 맘대로 읽지 못하고 아껴두게 된다는 리스크도 있다. 여하튼 이젠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져 소개가 필요 없는 이 시리즈의 주인공을 간략히 말하자면 파킨슨병 1기가 진행 중인 심리학자로써, 매사건마다 경찰과 얽혀 가정을 챙기지 못하는 데다 여러 가지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아내와 별거 중이다. 지금은 제 일만 하면서 인생 제3막 독거생활을 보내는 중인데, 이번에도 사건은 제발로 찾아와 그를 괴롭혀댄다. 그의 은퇴 희망은 정녕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려나.


런던 어느 마을의 축제날, 두 여학생이 실종되어 마을은 발칵 뒤집어지고 나라 곳곳에 무성한 소문이 돌았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겨울날, 호수 안에서 실종자 한 명이 익사체로 발견된다. 부검 결과 최근까지 생존했었다는 진단하에 남은 한 명도 살아있을 가능성을 두고 경찰은 주인공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경찰이 확신해하는 용의자는 주인공 눈에 영 시원치 않았고, 납치범 프로파일과 묘하게 어긋나있었다. 그러던 중 익명의 제보자가 건넨 실종자들의 사진을 입수하면서부터 용의자들이 대거 쏟아지기 시작한다. 갈수록 판이 커져가는 이 사건을 어떻게 축소할 수 있을까.


보통 머리 좋은 주인공들은 대개 똥고집에 외골수에 한 성깔 하시는데, 유일하게 그렇지 않은 캐릭터가 조 올로클린이다. 그의 처지와 주변 상황은 언제 멘탈이 무너지더라도 이상할 게 없건만, 그 많은 폭풍 속에서 떠내려가지 않게 중심을 잘 잡는 모습을 보여준다. 실없는 유머도 가끔씩 날려주시는데 그 소재가 자기 연민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웃음 포인트이다. TV에서 아무리 깐족거려도 선은 절대 넘지 않는 프로 예능인들 본적 있지? 이 책의 주인공도 딱 그런 캐릭터이다. 먼저 심리학으로 상대를 파악한 다음 그에 맞춰주는 대화를 한다. 까칠한 타입은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 정도로, 잘난척하는 타입은 계속 우월감을 느낄 수 있도록, 상대가 불쾌해하지 않을 수준으로 말을 주고받는다. 늘 환자들을 상담하다 보니 당연한 일이겠다. 전 세계의 사랑을 받는 작품 속 주인공들은 이렇게 매력 발산하느라 오늘도 열일중이다.


이번 사건은 정말 여러 번 주인공의 심정을 무너지게 하였다. 몇 년 전 자신의 딸이 납치되었던 그때의 공포가 계속 떠오른 그는 어쩐지 남 일 같지가 않았다. 제발 찾아달라고 울부짖는 실종자 가족과, 계속 헛다리만 짚어 비난받는 경찰과, 예산 부족으로 점점 줄어드는 수사인력. 이 모든 것들이 수사의 사기를 꺾고 있다. 경찰의 막다른 수사를 이어나갈 방법은 실종자들을 프로파일링 하는 것뿐이었다. 조는 소녀들의 성향과 행동 패턴을 분석하고, 주변인 중에서 납치범을 물색하는 역수사 방식으로 진행한다. 문제는 소녀들의 어두운 가정사를 통해 알게 된 용의자가 넘쳐난다는 것이었다. 지난 작품들이 큰 산을 두세 번 넘어야 했다면, 이번 작품은 작은 산들을 열 번 넘는 듯한 기분이랄까. 사건만으로도 바쁜 그는 가정에도 신경 써야 했다. 아내가 곧 있을 크리스마스에 그를 초대했으나 이번 약속도 펑크가 난다. 아내는 조가 싫은 게 아니라 조가 경찰과 자꾸 엮이는 게 싫은 것이고, 그 사실을 조도 잘 안다. 이미 레드카드를 받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그는 더 이상 실망 주고 싶지 않지만 세상이 자신을 가만히 놔두질 않는 게 문제였다. 여전히 일과 가족 사이에서 외줄 타기 하는 그가 참 안쓰럽다.


음. 솔직하게 이번 편은 스토리 면에서 볼거리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캐릭터에게 재미를 찾아야 한다. 인물들의 다양한 심리상태를 볼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 주인공의 심경 변화가 가장 볼만하다. 위에서 말한 딸의 납치 사건과 오버랩되어 과몰입하기도 하고, 어쩌다가 수사반장 아내와 밀회를 가져서 괜히 멜랑꼴리해졌다가, 자신의 판단 부족으로 동료가 희생당해 자책하는 등 내면의 롤러코스터는 지루할 틈이 없었다. 두 번째로는 심리학자에 대한 이모저모를 구경할 수가 있는데, 주인공의 심리학 강연이나 용의자와의 대화씬을 통해서 심리학자라는 직업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사건 수사시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경찰과 전혀 다른데, 경찰이 증거와 결과만을 주목한다면 심리학자는 원인과 동기를 더 주목한다. 인간을 이해하려 하다 보면 환자도, 범죄자도, 정신이상자도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대강 알게 되고, 그러면 남들이 놓쳤던 것들도 보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나 유용한 지식들이 오히려 자신을 갉아먹는 독이 되고 가정을 파괴하는 저주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끝없이 재능기부를 해야 하는 그만의 고뇌는 작품의 색깔을 뚜렷하게 나타내줄 베이스가 되므로 그의 앞날에 따스한 햇살 따윈 기대하지 않는 게 좋겠다.


세 권쯤 읽어보니 이 시리즈만이 가지는 장점과 차별점을 알겠더군. 상대의 내면을 통해 인과관계를 설명하고 범인에게 접근하는 독특한 전개 방식. 단점은 액션이 필요 없는 직업이라 그런지 진도가 매우 더디다는 것. 여기서 작가는 상황 설명과 인물의 독백씬을 번갈아 씀으로써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분위기를 멋지게 상쇄시킨다. 전개도 전개지만 주인공이 무슨 생각을 할 건지 궁금하게 만드는 기교가 엄청난 작가이다. 근데 지금까지는 무난하게 시리즈가 이어져왔다만, 이대로 계속 간다면 작품이 한계에 부딪힐 것만 같은 불길함이 든다. 어쩐지 스토리의 힘보다는 심리 묘사 쪽으로만 승부를 보려는 느낌을 받았거덩. 아직은 그게 먹어준다지만 앞으로도 쭉 먹혀들지는 미지수이다. 로보텀 슨생님도 이제 슬슬 새로운 도약이 필요해 보입니다. 똑같은 반찬만 먹으면 금방 질리니깐요. 독자들의 심리도 파악해주십사 이렇게 한 말씀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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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3 14: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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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5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