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지마 저택 살인사건
아마노 세츠코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살인사건, 실종사건, 납치 사건 등등. 제목에 ‘사건‘이 들어간 작품만큼 올드한 것도 없을걸. 본격 추리물이 사랑받던 영광의 시대는 지나간지 오래이다. 그래서 이제는 장르소설계의 고전작을 읽는다는 마음으로 보게 된다. 뜬금없는 고백인데 나는 셜록 홈스, 괴도 뤼팽 시리즈도 읽지 않았고, 애거사 크리스티나 엘러리 퀸 같은 스탠다드 추리작가들의 작품도 읽어본 적이 없다. 솔직히 정통 추리물은 썩 재미있지도 않고, 딱히 두뇌 훈련도 되지 않는다. 트릭의 방식만 다를 뿐, 작품의 기승전결은 항상 비슷하여 이만큼 클리셰가 많은 장르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투덜댈 거면서 왜 읽었냐 하신다면, 이 작가의 데뷔작 ‘얼음꽃‘에서 받은 감동이 가히 허리케인급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느꼈던 내공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었고 절대 올드함이 전부일리 없는 작가라고 강하게 믿었으나 슬픈 예감은 역시 틀리는 법이 없다. 도대체 왜 어쩌다 이 정도로 수준이 낮아졌나 싶을 정도로 망작이었다. 실망이 너무 커서 줄거리 요약은 생략하련다. 절대 귀찮아서가 아님.


이 작품에서 나는 크게 두 번 실망했는데 먼저는 이 최첨단 시대에 낡고 식상한 소재를 썼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뻔하지 않게 다루다가 오히려 역효과를 내었다는 점이다. 과거 수많은 작가들이 너도나도 탐을 냈던 만큼 밀실 살인은 꽤나 매력적인 소재였던 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요즘 시대에 수십 번 우려먹은 이 한물간 장르를 두근대는 심정으로 읽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데 현대 작가들이 그런 독자의 취향이나 반응을 모를까? 유행이나 트렌드에 민감한 작가들이 절대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이제는 옛날처럼 정통 추리보다는 사회소설에 추리물을 접목시키는 방향으로 가고들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사회파에 발 담그지 않았다. 그렇다고 본격 추리로 가지도 않았다. 그렇게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함 속에서 방황하다가 낭패본 케이스였다. 보통 사건이 발생하면 용의자들을 붙잡아두고 수사를 해나간다. 근데 이 책은 첫 번째 피해자가 자살로 판명이 나면서 용의자들은 다 풀려나고 수사는 싱겁게 종결된다. 그대로 며칠이나 지나버려 시간,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 특수한 전개로 흘러간다. 기존 작들과 차별화된 플롯을 보여주려는 건 알겠다만 그냥 정형화된 플롯대로 쓰시고 욕이나 먹지 말지. 이런 게 바로 문학의 새로운 시도이며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믿는 독자는 제발 없길 바랄 뿐.


무엇보다 추리소설인데 추리하는 맛이 없어서 낭패다. 먼저 용의자 간에 원한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작품 내내 모두가 진득한 가족애를 보여주어 경찰뿐 아니라 독자까지 애를 먹는다.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피해자가 등장하나 범행을 자백하고 자살한 용의자가 밝혀지면서 또 한 번 김이 팍 샌다. 당연히 범인은 따로 있겠지만 아무도 범행 동기가 없는데 굳이 진범을 찾아낼 필요 있나 싶더라. 게다가 등장인물이 전부 선한 사람들뿐이라 분위기는 지겨울 정도로 루즈하다. 악인이 없어서 몰입감은 떨어지고 뒤 내용도 그닥 궁금하지 않은 이 책은 장르문학으로서 대 실패작이라 하겠다. 여하튼 망해버린 분위기 속에서 범인을 어떻게 수면 위로 꺼내고 마무리할까 궁금하긴 했는데 아 맙소사, 여기에도 김전일께서 등장하시어 혼자 북 치고 장구치는 추리 원맨쇼로 사건을 끝내버렸다. 아니 이럴 거면 열심히 수사해오던 경찰 삼인방은 뭣하러 등장시켰대? 이거는 독자에 대한 배려 없음 뿐만 아니라, 자기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도 없는 것으로밖에 안 보였다. 이렇게 트릭이나 수사가 볼품이 없다면 범행 동기라도 그럴싸해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쏘쏘해서 읽은 시간이 다 아까울 지경이다. 마무리 짓기도 힘든 걸 보면 이번 리뷰는 그냥 망친듯싶다. 아 몰라 이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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