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빨간 표지의 작품에 무슨 트라우마 같은 게 생겼나 보다. 이제껏 만났던 빨간 책들은 다 나랑 맞지 않거나 소화가 힘들었거든. 아, 살인자의 기억법은 나쁘지 않았네. 암튼, 힘겹게 읽은 이 책도 얼마 남지 않은 내 영혼을 끌어모아 사명 다해 리뷰를 남기노라. 컨디션 난조로 인트로는 짧게 짧게.


랜들가의 대농장에서 노예로 살아가는 흑인 소녀 코라. 1800년 대의 미국은 아프리카인들을 강제로 들여와 노예로 부려먹었고, 흑인들을 물건처럼 값을 매겨 팔곤 했다. 그 당시 백인들의 농장마다 많은 노예가 있었는데 주인 마음에 안 들면 채찍질 당하거나, 옆 마을 노예와 맞교환 당하기 일쑤였다. 그런 공포의 나날을 보내던 주인공에게 한 소년이 탈출 계획을 말해주고 두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달아난다. 이들은 지하터널의 열차를 알게 되고, 조지아를 떠나 사우스캐롤라이나로 넘어가서 새 이름을 얻고 새 삶을 살아간다. 다인종이 섞여사는 그곳에서 백인처럼 일상생활을 하고 글도 배우고 교육도 받는 코라. 그러나 코라는 현상금이 걸렸고, 노예사냥꾼들이 따라붙기 시작한다. 그들은 코라와 관계된 자들을 차례차례 죽였고, 그녀는 또다시 지하 열차를 타고 노스캐롤라이나로 도망친다. 그러나 어딜 가더라도 미국은 흑인에게 자유롭지 못한 흑암의 땅이었다. 정녕 코라는 이 뫼비우스의 띠에서 빠져나올 수 있긴 한 걸까.


미국의 흑인 노예제를 다룬, 유명하다면 유명한 작품이다. 내러티브는 참 좋은데 말야 글맛은 영 느낄 수 없어서 점수는 높게 못 주겠더라. 주제가 무거울수록 글 또한 무거운 건 이해하나 구멍이 너무 많아서 문맥이나 문단의 연결이 심하게 부자연스럽다. 특히 주인공의 노예생활과 탈출까지의 내용을 다루는 초중반 장면들! 작품의 틀을 잡는 이 중요한 구간들이 너무하다 싶을 만큼 이빨이 잔뜩 빠져있다. 번역 수준도 심각하고, 가독성도 꽝이고, 불친절한 문체에 장면 스킵과 설명 부족까지. 진짜 억지로 간신히 읽었네. 그 뭐랄까, 몸에 타이어 주렁주렁 매달고 늪지대를 100미터 달리기하는 기분?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는 말일세. 좋은 재료를 쓴다고 다 훌륭한 요리가 되는 건 아니쥬?


​여하튼 주제가 주제인 만큼 생각할 문제도 많고 할 말도 많은데, 먼저 미국이란 나라를 다시 생각해본다. 본문에서도 나오듯이 미국의 독립선언문에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났다‘라고 쓰여있다. 그러나 이 말은 백인에게만 해당되고 흑인은 포함되지 않았다. 백인들은 인디언의 땅을 빼앗고 흑인들의 미래를 모조리 짓밟았다. 노예들은 가축 취급을 받았고, 자신의 처지를 불평하거나 한탄하기 보다, 의식주 제공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했다. 그들에겐 자신이 왜 사람대접을 못 받는가를 생각하는 것조차 사치였다. 발목이 묶인 새끼 코끼리가 커서도 도망칠 생각을 못하는 것처럼, 흑인들은 평생을 공포에 묶여 살아가는데 어떻게 미국은 스스로를 자유와 평등의 국가라고 외치는가. 그래서 오류와 모순투성이인 아프리카의 역사를 전시하는 박물관에서 일했던 코라의 눈에는 세상천지가 모두 오류였을 것이다.


조지아가 육체적인 고통받는 지옥이었다면, 사우스캐롤라이나는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지옥이었다. 이곳은 흑인도 인간 대접해주기는 했으나, 일상과 문화와 사람들의 인식 곳곳에서 흑인에 대한 멸시와 경멸이 배어 나온다. 심지어 병원들은 흑인 여성들의 피임 수술까지 해주면서 흑인의 싹을 잘라내고 있었다. 어느덧 흑인의 인구수가 백인을 앞질러버린 탓이었다. 그래서 미국은 교묘하게 흑인을 사육하고 거세하였고, 고통받던 시절에서 벗어난 노예들은 이 참극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과거에는 강제로 끌려와 노예가 되었었다면, 이제는 흑인들 스스로 현대판 노예제도에 참가한 꼴이었다. 더욱 아이러니한 건 흑인뿐만 아니라 노예를 숨겨준 백인들도 공포에 떨게 만든 국가의 제도이다. 노예 순찰대에게 발각되면 인종 불문하고 죽음을 면치 못했다. 판사들은 뇌물을 받고 노예사냥꾼들에게 정보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숨겨준 흑인에게 부모의 관심을 뺏겼다고 느낀 백인 자녀들은 부모를 고발하기까지 했다. 백인들끼리도 서로 감시하고 의심하는 사회라니. 모든 인종이 자유롭지 못한 세상이라니. 정녕 미국은 자유국가가 맞는가. 이 주제는 오늘날에 와서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주인공의 다양한 심경 변화가 눈길을 끈다. 코라의 엄마는 딸을 두고 농장을 탈출한 전설의 노예였다. 그녀도 탈출할 입장이 되고 보니 엄마 심정도 이러했을지 돌아본다. 이때는 자신을 버린 엄마를 원망하기보다 이해하려는 코라의 태도가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웠다. 그러나 탈출한 후로는 엄마가 미워져서 일부러 지워버린 코라. 같이 도망칠 수 있었는데 혼자 떠났고, 자유의 몸이 되어서도 딸을 구하러 올 생각이 없는 엄마에게 증오만 쌓여간다. 점점 코라는 자신을 괴롭힌 추노꾼들이나 농장 주인보다도 엄마를 더 경멸했다. 추노꾼들이 내 주변인을 죽일 때마다 엄마만 날 버린 게 아니라 세상 모두가 날 버렸으며, 악마의 손가락은 늘 자신을 향해 뻗어있다고 믿는다. 노예 출신이 풍요를 누리려 했다는 게 한심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끝까지 백인과 미국을 향해 욕 한번 하지 못하고 엄마에게 화풀이할 만큼 노예제에 길들여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온몸에 채찍질 당하는 장면보다도 이게 더 마음이 아프더라. 간혹 이렇게 엉뚱한 것을 원망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걸 번지수 틀렸다고 말해주기가 참 어렵다. 여하튼 우리도 흑인들이 주장하는 자유와 평등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라고 인종차별 안 받나? 서양인들이 동양인 비하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우리도 그들과 같이 되기보다 코라를 도왔던 백인들처럼 차별하지 않는 시민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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