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6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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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문학 모임 두 번째 선정도서는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이다. 대중소설은 제목만 봐도 얼추 삘이 오는데, 고전은 도저히 감도 안오는 제목이 많은듯. 읽어보면 알겠지 하고 펼쳐보지만 역시나 난해하고 갈피를 잡기 힘든 게 고전 문학 답다고 할까. 그래서 봐도 봐도 분위기 파악이 안될 때면 남들이 적어놓은 리뷰를 읽는 게 더 빠르다. 원래 선입견 생기는 게 싫어서 완독 전에는 리뷰를 절대 읽지 않는데 고전 문학은 그냥 리뷰를 먼저 보는 게 더 도움이 될 듯하다. 다행히 이 책은 그렇게 예열시간이 길지 않았다. 딱 절반쯤? 게다가 전반전과 후반전의 온도 차이가 엄청 큰 것이 애거서 크리스티 스타일하고 비슷하다. 크게는 1세대 히스클리프의 이야기와, 2세대 자식들의 이야기로 나눌 수 있는데, 1부에 비하면 2부는 진짜 진짜 재미있고 이해도 잘 된다. 그만큼 1부는 엉망진창이라 할 만큼 읽기 힘들었음. 아무튼 이걸 어떻게 별점 테러해버릴까 고민하다가 후반부가 전반부의 따분함을 잊어버리게 할 만큼 볼 만해서 별 네 개 준다. 고전문학의 평점이 높은 이유는 진짜 끝까지 읽어봐야만 납득이 감.


이 책은 록우드가 하녀장 엘렌 딘에게 언쇼 가문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폭풍의 언덕은 히스클리프의 집 이름이다. 그는 ‘티티새 지나는 농원‘의 주인으로, 아주 거칠고 인색하기로 유명하다. 그는 어릴 적 고아였을 때 언쇼에게 거두어졌다. 그에겐 아들과 딸이 있었는데, 딸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는 금방 썸 타기 시작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입장과 처지와 신분을 직시하게 되어 캐서린을 밀어내기 시작하는 히스클리프. 훗날 캐서린이 다른 남자를 택하자, 사랑보다 깊은 상처를 입은 히스클리프는 집을 나가고 3년 만에 다시 캐서린 앞에 근사한 신사가 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질투심에 좋아하지도 않는 캐서린의 남편인 에드거의 여동생과 결혼해버린다. 신경질적이고 이기적인 캐서린은 이 눈꼴 시린 상황에 못 견디고 그만 운명한다. 이런 걸 바란 게 아니었던 그는 악마로 각성한다. 더불어 캐서린의 오빠 힌들리도 죽으면서 폭풍의 언덕 주인이 된 히스클리프의 만행은 이제 아무도 막을 자가 없어진다.


사건을 타인에게 건네듣는 형식이라 전부 팩트는 아니라서 의심스러운 내용도 있고 추측이 필요한 장면도 있다. 그리고 이 책에는 전부 이해가 안 가는 사람들 투성이이다. 그중 대표로 캐서린에 대해 할 말이 너무 많다. 대체 얼마나 오냐오냐하면서 자라야 싸갈국에 밥 말아 먹은 성격 파탄자로 크는 것일까. 떠받들어주는 것에만 익숙했던 그녀는 약혼자의 뺨을 때리고 하녀를 폭행하는 등 히스클리프가 떠난 뒤로 정신병이 날로 심각해지고 날카로워진다. 에드거는 정말로 캐서린을 사랑해서 결혼했을까? 자신에게 손찌검하고 발작하는 캐서린의 상태를 보고도 결혼할 결심을 했다는 게 참 현자도 이런 현자가 없어요.


시누이가 히스클리프를 좋아하자 그녀를 말리는 대목에서 캐서린의 이중인격이 또다시 나온다. 남편에게는 예전의 히스클리프가 아니라고 대변했으면서, 시누이 이사벨라에게는 천하고 교양 없는 남자라서 너와 안 맞는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원래 이기적인 건 알았지만 남한테 주기 싫다는 이유로 히스클리프를 폄하해대는 캐서린에게 없는 정까지 다 떨어진다. 그와 결혼하면 똑같이 천박해질 본인의 신분 때문에 에드거를 택했으면서 말이다. 그녀는 히스클리프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보다 새장에 가둬놓고 관상용으로 즐기려는 기색이 다분했다. 그랬으면서 낮아진 신분으로 히스클리프에게 못해줄 바에는, 에드거와 결혼해서 히스클리프를 챙겨주고 서포트할 계획이었다는 것도 믿기지 않는다. 이 무슨 개뼉다귀 논리란 말인가.


서로가 좋아하는데 이루어질 수 없어 택한 길이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숭고하고 로맨틱한 게 아니라 더럽고 추악한 복수심을 낳았다. 히스클리프는 에드거를 자극하기 위해 사랑하지도 않는 에드거의 여동생과 결혼을 하고 아내를 정신 나가게 만들었다. 캐서린에게 받은 상처가 마침내 그를 지독한 독사로 탄생시킨 것이다. 캐서린의 정신세계를 온전히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히스클리프 자신뿐이란 걸 그도 알았을 텐데 꼭 그녀를 떠나야만 했나. 그렇게 떠났으면 차라리 나타나질 말지. 정녕 그는 모든 결과가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을 몰랐을까? 분명 알고 있었지만 끝내 참지 못하고 그녀 앞에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캐서린도 이기적이지만 히스클리프도 이기적이다. 결국 두 사람만의 이야기에 너무도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모두에게 피해와 상처를 주었다. 이 정도면 거의 대한민국 아침드라마 막장스토리에 버금갈 수준이다. 


이 두 집안의 비극은 2세들까지 이어졌다. 죽은 힌들리의 아들 헤어턴을 히스클리프가 종처럼 키웠는데, 캐서린의 딸이 그와 사촌지간이란 말에 질겁을 하고 벽을 친다. 게다가 히스클리프를 떠나 도망친 아내 이사벨라가 낳은 아이를 오빠 에드거가 데려왔으나, 히스클리프는 당당히 자신의 아들을 데려가서 헤어턴 못지않은 노예로 키운다. 히스클리프가 얼마나 악질이냐면 헤어턴과 캐서린의 딸을 붙여놓고 연애 감정을 부추김으로써 헤어턴이 안달복달하게 만들었다. 그는 헤어턴이 감히 넘볼 수 없는 나무를 바라보면서 열등감과 자격지심과 괴로움을 느끼는 것을 즐겼다. 헤어턴의 감정들이 과거 본인이 느꼈던 감정과 똑같다면서 말이다. 그렇게 과거에 힌들리가 자신을 괴롭힌 것을 자식에게 앙갚음하듯이. 이제 그의 목적은 단 하나, 에드거의 소유인 티티새 지나는 농원이 자신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경멸하던 린턴가의 딸과 자신의 아들을 결혼시키려는 사이코패스 같은 히스클리프. 몸이 아픈 아들이 병으로 죽기 전에 결혼하라고 닦달해대는 진정 인간의 탈을 쓴 악마였다.


그러나 칼에 찔려도 피 흘리지 않을 것만 같던 그도 끝내는 양심에 패한 건지 와르르 무너져버린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와 닮은 헤어턴을 볼 때마다 괴로웠던 히스클리프. 그래서 헤어턴을 미친 듯이 괴롭히고 부려먹으면서도 항상 곁에 붙여둔 거였다. 사랑에 실패했다고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만큼 억지스럽지만, 요즘 대한민국 보면 애인이 만나 주지 않는다고 염산테러를 하질 않나, 길거리 폭행을 하질 않나. 나사 빠진 정도가 아니라 지능 없는 좀비 같은 인간들이 넘쳐나는 코리아에서 히스클리프 정도면 양반 수준일지도. 여하튼 사랑이 집착으로 변하면 이렇게나 무섭다. 어쩌면 신은 인간의 악마화를 막기 위해 사랑을 내려준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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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9-06-22 2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전 문학은 풀꽃이죠.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 사랑스러운.ㅎㅎ 끝까지 읽어봐야 맛을 제대로 보여주네요.
‘사랑보다 깊은 상처‘에서 빵 터졌습니다.ㅋㅋ ‘눈꼴 시린 상황에 못 견디고 그만 운명한다.‘,‘이런 걸 바란 게 아니었던 그는 악마로 각성한다.‘에서 물감님의 개성이 뚝뚝 떨어집니다. 날 것 그대로의 싱싱한 횟감처럼 팔딱이는 느낌에 유쾌한 마음으로 머물다 갑니다.^^

물감 2019-06-23 14:08   좋아요 1 | URL
이번에도 고비가 많았지만 성공했습니다ㅋㅋ이렇게 몇번을 더 해야 고전문학에 익숙해질라나요ㅋ
저는 이 책에 나오는 다양한 모양의 사랑을 보며 이것이 어떻게 고전문학 반열에 들어갈수 있을까 궁금해졌어요. 이 내용이 요즘에 나왔어도 그만큼의 가치가 생길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술취해 저지른 사고는 어느정도 눈감아주듯이, 사랑해서 저지르는 일들도 이렇게 이해해주거나 봐줄수도 있는걸까요? 저는 아직 문학 내공이 없어서인지 작가가 어떤 내용을 꼬집고 싶은건지는 모르겠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