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주식회사
사이먼 리치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기대 없이 집어 들었는데 은근히 재미있다.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서 신과 천사들이 인간을 어떤 식으로 돕고 세상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등등 천국을 새롭게 재해석한 작품이다. 일단 유쾌해서 좋다. 전 세계를 주관하는 전지전능한 신들의 세계와는 많이 다르다. 인간미 가득한 거룩하지 않은 신과, 허당끼 있는 천사들은 인간과 별반 다른게 없다는 설정이다. 요나스 요나손 같은 병맛소설까지는 아니지만 비슷한 냄새는 난다. 요즘 날씨도 우중충한데 이런 작품을 읽어줘야 우울함이 물러가지 않을까 싶다.


천사 일라이저는 인간들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고 놀기만 하는 하느님에게 비난 아닌 비난을 했다. 인간 프로젝트에 흥미를 잃은 하느님은 그냥 지구를 파괴하고 천국 레스토랑 사업을 하겠다고 선포한다. 천사 일라이저와 크레이크는 쌓여있는 기도문 중 하나를 자신들의 힘으로 해결하면 지구를 놔두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을 따낸다. 단 억지가 아닌 우연 같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임무를 완수해내야 한다. 많고 많은 기도문 중에 남녀가 서로 사랑하게 해달라는 기도 주문서를 뽑아 임무수행에 들어간 두 천사는, 한 달 뒤 지구종말 전까지 두 사람을 데이트하게 만들어야 한다. 두 남녀는 서로 좋아하니까 다 된밥에 숟가락만 얹으면 되는 건데 세상에, 사람과 사람이 사랑하게 되는 것은 로또 맞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큐피드 화살이라도 날리고 싶지만, 하느님은 무조건 자연스럽게 좋아하도록 만들길 원한다. 과연 두 천사는 이 남녀를 사랑하게 만들고 지구 종말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제목에 약간 낚인 기분이 든다. 나는 대기업 같은 천국 안에서 일어나는 좌충우돌 사건들이 궁금했다. 그런 내용은 잠깐이고, 지상세계를 관장하는 내용과 두 남녀의 만남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하느님의 지구 파괴 선언 이후 천사들은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되니 마냥 신나있다. 두 명의 천사만 빼고. 지구 종말이 본인들 탓이라는 죄책감 때문에 불타는 사명감으로 두 남녀를 에스코트하기 시작하는 두 천사. 남녀의 만남을 성사시키는 것 자체도 어려운데, 멍석을 깔아줘도 싱겁게 헤어져서 진도가 영 나가질 않는다. 결국 종말 2일 전이 되어서야 겨우 커피 한 잔 하자는 말이 나와, 남은 48시간에 승부를 걸기로 한 천사들은 몸 안에 수분이 다 말라간다. 분명 긴박한 상황인데 인간들은 그걸 모르니 분위기가 고조되지 않아 아쉽다. 그래도 상관없다. 재미있으면 됐지. ​


두 남녀를 돕는 과정에서 속출하는 주변 피해를 보고 이걸 웃어넘길지 말지 고민했다. 둘리보다 고길동이 불쌍하다고 느끼면 나이 든 증거라던데, 나는 이런 유머 가득한 소설도 진지하게 읽고 있구나. 흑흑. 여하튼 간만에 코믹한 작품 읽어서 좋았다. 적당한 유머와 스피디한 전개와 신선한 소재. 쏘 굳. 연차 내고 머리 좀 식힐 때 읽으면 좋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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