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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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 읽는 책은 아니지만 재미가 읎다. 일단 쓰인 단어나 어휘의 수준이 높아서 깊게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하긴, ‘불안‘을 쉽게 설명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이 책이 온통 철학적인 글들로 도배돼있을 줄 알았는데 그 정도까진 아니고 인류학, 유전학, 역사학적으로 불안에 떨고 있는 사회 현상들을 풀이하였다. 인간의 역사와 문화와 산업혁명의 바탕에서 나온 불안들을 종류별로 정리하고 쉽게 전달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대단하다. 내게는 전혀 쉽지 않았지만.


알랭 드 보통은 ‘사랑‘을 주제로 한 3부작 소설을 쓴 작가로 유명하다. 그래서 불안을 이야기할 때도 사랑을 강조했다. 사랑의 결핍에서 오는 불안은 개인을 좀먹는 정도가 아니라 파멸로 이끈다고 한다. 그러면 반대로 사랑이 왜 필요하느냐? 인간은 날 때부터 스스로의 가치에 확신을 가진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따라서 남들이 사랑해주는 만큼 내가 나를 사랑해줄 수 있고, 남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대로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듣고 보니 맞는 말 같다.


사랑을 받기 위해 사람들은 ‘속물‘이 된다. 그리고 속물은 또 다른 속물을 낳는다고 한다.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그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던히도 잘난 사람에게 관심을 끌려고 애를 쓴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런 안타까움은 한 개인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속물이 되게끔 조성하는 사회 자체에도 있다. 사회에서는 물질적 형벌뿐 아니라 감정적 형벌도 내린다. 이 부분이 되게 중요한데, 최근 국내에서는 양지에 있는 인싸(인사이더)와, 음지에 있는 아싸(아웃사이더)를 나누어 사회에서 분리시키는 현상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러면 인기 많은 인싸들은 안 불안하고, 존재감 없는 아싸들은 늘 불안할까? 꼭 그렇지도 않다. 아싸들이 감정 회로는 고장 났을지언정 인싸들보다 멀쩡하다고 본다. 오히려 인싸들이 혼자 밥 먹거나 영화 보는 것도 불안해하고,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는다고 느끼면 극심한 우울증까지 겪는다. 인간이란 참 신기한 동물이다.


작가는 우리가 현재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수도 있다는 느낌이 불안과 울화의 원천이라고 한다. 즉 나랑 비슷한 조건의 누군가가 나보다 나은 모습일 때 비교당하는 그 느낌이 불만족과 질투심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불안감‘에 대해서 제대로 꼬집은 팩트라 하겠다. 이 느낌을 한번 맛보기 시작하면 빠져나오기가 아주 어렵다. 성공한 친구를 따라잡으면 불안이 사라질까? 더 크게 성공한 친구가 나타나면 열등감은 또 시작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경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이런 게 반복되면 있는 놈들이 더하단 말처럼 99개의 섬을 가진 사람도 1개의 섬을 가진 사람을 질투하고, 영원히 자족하지 못해 살다가 생을 마감할 것이다. 기대가 클수록 실패시 비참함도 크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계급주의에서 능력주의로 바뀐 미국 사회를 보면, 초기에는 가난한 자들에게도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고, 부자들의 세습 문화를 몰아내어 사회가 온전히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계급과 상관없이 능력으로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새로운 프레임이 씌여진다. 능력이 있으니까 성공하고, 능력이 없으니까 실패할만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과거에는 단순히 가난으로 고통받았다면 지금은 수치스러움까지 더해진 고통에 허덕인다. 이것을 보며 어떤 체제와 운동과 문화로도 인간은 이 문제가 낳는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세상의 어떤 위대한 지도자라도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주변에서 가만있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참 피곤하게 산다고만 생각했다. 일부러 힘들게 사는 사람들, 사서 고생하는 사람들, 세상과 담쌓고 스스로를 가둔 사람들 등등 모두가 크고 작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는 것이었다. 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을 이해한다고 했는데, 나는 여러 불안감을 겪고도 타인의 불안감은 왜 이해하지 못했을까. 어쩌면 일부러 외면했을지도 모르겠다. 나 혼자만으로도 힘든데 남들의 아픔까지 감당하기 싫어서, 남들은 내 아픔에 무관심하고 도와줄 수도 없단 걸 알아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책 속에서 어떤 염세주의자는 말하길, 100% 도덕적인 사람만 상대하겠다고 결심하면, 평생 혼자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 결심 없이도 지금 시대는 다들 혼자가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외로움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렇다면 불안함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하는 인정의 개념이 아닐까. 이제는 많은 인문학 강연이나 책에서도 스스로를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함이 아니라 피곤하게 살지 않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더 맞지 않나 싶다. 단순해 보이지만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어차피 인간은 죽을 때까지 불안함에서 못 벗어난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대충 삽시다요. 오늘 밤 치킨으로 보상해주는 것도 잊지 말고요. 기승전치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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