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터 미드나잇 스릴러
로저먼드 럽튼 지음, 윤태이 옮김 / 나무의철학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작년 12월부터 나도 작품을 쓰고 있는데 내 글이 인간의 심리를 다뤄야 하는 내용이 꽤 많아서 심리 스릴러 작품으로 공부하는 중이다. 책을 재미로 읽을 때와, 리뷰를 쓰기 위해 읽을 때와, 공부를 하며 읽을 때의 독서는 천지차이임을 요즘 절실히 실감하고 있다. 스릴러 장르에서 보이는 심리의 묘미는 과거에서부터 심어져있던 고통과 불안의 씨앗이 점점 자라서 현실과 부딪혔을 때라야 날 것 그대로의 맛을 볼 수가 있다. 그래서 스릴러소설의 주연들은 과거 상처에 매여있는 캐릭터들이 대부분이다. 그것을 알면 캐릭터들을 이해하는 데에 많은 참고가 된다. 이 책은 주인공의 일인칭 소설로써 편지를 낭독하는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제목처럼 자매에 대한 내용으로써, 아픔과 연민이 가득한 언니의 필사적인 몸부림을 담담하게 써 내려간 영국 작가의 여성 세계를 들여다본다.


여동생이 실종되었다. 주인공인 언니와 떨어져 살지만 매일매일 연락하는 친한 사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연락이 끊겼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뜻이었다. 실종신고 접수 후 수사 과정에서 동생이 임신 중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최근에 사산했다는 소식도 듣는다. 자신과 그렇게 친했는데도 이런 사실을 숨겨온 동생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마침내 동생을 찾았으나 칼로 손목을 긋고 자살한 상태였다. 모든 정황이 너무 확실하여 수사는 종결되었다. 언니는 동생이 절대 자살할 리 없다고 주장해보지만 모든 증거는 자살이 확실하다고 말한다. 아무도 주인공의 말을 듣지 않는 가운데 어떻게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까.


본 작품은 주인공인 언니의 시점만을 기록하여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일인칭 소설은 화자의 말 외에는 타인의 입장이나 상황을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한 면이 있다. 그 모든 말들에 참과 거짓의 판단 여부도 확인이 어렵다. 여러 가지로 신경 쓸 점이 많은데 이게 또 일일이 다 신경 쓰다간 독자가 질려버리게 된다. 그 균형을 잡는 게 쉽지는 않았던지 이 작가도 썩 소화해내지는 못한 느낌이다. 이제 생각해보니까 유명한 일인칭소설들은 작가의 내공이 어마어마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튼 이 책은 동생의 실종을 알리고 찾는 과정까지는 현재진행형인데, 동생이 발견된 후로는 과거 회상형이 되었다. 이미 죽었는데도 계속 동생한테 말을 거는 그 모습이 납골당에서 사진 속 고인에게 끝없이 주절주절 하는 것과도 같아서, 이제는 그만하라고 해주고 싶지만 차마 말 못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기분으로 읽었다. 그런데 누가 죽였는지에 대한 내용보다 남아있는 자신과 가족의 슬픔으로 힘겨워하는 내용이 더 많아서 좀처럼 진도가 나가질 않아 내심 답답했다. 그래도 이 답답한 구간만 견뎌내면 나름 읽을만하다. 그 구간이 좀 길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언니는 동생 없이 미래를 만들어가는 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하는 자체부터가 너무 이기적이었다. 동생에 대한 미련과 집착은 남은 가족과 지인들에게 고스란히 아픔을 안겨주었다. 항상 지지해주던 예비 남편도 떠나버리게 할 만큼 주인공은 동생 외에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사람이 죽어서 누구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동생 없는 자신은 아무 존재도 아니라는 말에, 이 얼마나 자존감 바닥치는 인생인지 참 안쓰러웠다. 어릴 적 남동생을 잃었고, 아버지가 집을 떠나버린 이런 배경들은 살짝만 건드려도 주인공을 무너지게 했다. 트라우마는 행복보다 안정을 추구하는 성향으로 바꾸어놓았고, 세상을 보는 시각도 좁아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동생을 잃고 미쳐버린 언니의 모습은 누가 봐도 당연했다. 그런데 너무 과한 나머지 감정 이입은 되지 않았다. 이게 가장 큰 문제였다. 어떤 만화작가의 인터뷰가 잠깐 생각나는데, 독자들이 주인공을 좋아하지 않거나, 서브 주인공을 더 좋아하게 되는 작품은 흥행했어도 실패한 거나 다름없다고 했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이 책은 과연 어느 쪽일지...


진실의 조각이 발견될수록 주인공은 점점 더 흥분하는데 나는 오히려 건조하게 읽었다. 그래서 작가에게 미안했다. 주인공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의 반응과 나의 반응이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이게 다 독특한 플롯 방식 때문이다. 마침내 범인이 밝혀지는 장면이 나오지만 이미 다 지난 일들을 들려주는 거라서 재미가 반감된다. 아무리 생생하게 말해줘도 과거에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 흥분하지 않도록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어투이기 때문에 이 작품은 절대 파도가 몰아치는 법이 없다. 이런 것도 모던 스릴러라고 해야 하는 걸까? 그런 장르의 타이틀이 없었다면 아주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 문학으로 남았을 텐데.


그나마 평타 치던 점수가 마무리 때문에 뚝 떨어져 버렸다. 주인공이 범인에게 묶이고 감금을 당하는데, 범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웃들이 찾아와 발견하고 끝났다. 응? 범인은 어떻게 됐다는 내용이 없다. 나름 빅 스케일의 범죄를 꾸미고 있었잖아? 근데 아무 설명 없이 이대로 끝내버린다고? 느낌상 후속편이 나올 것도 아니고, 갑자기 분위기만 싸해졌다. 예전 같으면 뭐 이따구야! 할 텐데, 이번엔 공부를 위해 읽은 거라서 생각보다 무난하게 읽었다. 뭔가 아량이 넓어진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참 기분 묘하군. 공부할 책이 너무 많아서 큰일이다. 아이고, 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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