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멈추는 법
매트 헤이그 지음, 최필원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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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동안‘소리 듣는다면야 좋긴 하겠지만 죽을 나이가 돼서도 그 얼굴이면 과연 좋을까? 주변 사람들이 다 늙어가는데 나 혼자만 어린 얼굴이 과연 기쁜 일일까? 누구나 장수하고 싶고 한살이라도 어려 보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정작 늙지도 죽지도 않는 입장이 되면 얘기가 다르다. 천년을 살아가는 이 책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주인공의 표현을 빌리자면 글자 하나 없는 책 같은 처지이며, 진절머리 나는 후렴구 노래에 갇힌 기분이라고 한다. 칠팔십 년을 사나, 칠팔백 년을 사나 인생의 굴레는 변함이 없나 보다. 왜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라는 제목의 책도 있지 않던가. 장수 인간이 얘기하는 인생의 수고로움과 삶의 애환을 들어보자.


먼저 주인공은 초 핵폭탄 급 동안을 가진 439살 할아버지이다. 그는 늙지 않는다. 정확히는 정상인보다 노화되는 시간이 15배쯤 느리게 흐른다. 이런 자신의 병을 치료받으러 유명 의사를 찾아갔으나, 그 의사는 자신처럼 늙지 않는 자들이 만든 한 단체에게 살해당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가 노출되면 세상에 혼란을 가져올 것이고 신변이 위험해지기 때문에, 나름의 규칙을 세우고 세상으로부터 서로 보호를 주고받는다. 이 단체에 소속되고부터 수 세기 동안 다양한 신분으로 살면서 인간들을 지켜본 결과 사는 것에 특별함이란 없었다. 세상에 아무 미련도 없는 주인공이 꿋꿋이 사는 이유는, 잃어버린 딸을 찾기 위함이다. 자신과 똑같은 시간의 저주에 갇혀버린 딸과 상봉할 날을 위해 몇 백 년이라도 자신의 고통과 트라우마를 견디고 견뎌야 한다.


​저자가 동화작가라는 티가 나는 게 문장이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하고, 동화에도 어울리겠다 싶은 비유법이나 특정 표현들이 자주 보인다. 이 책도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진행되는 구성 방식인데,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여러모로 비교되었다. 그 책의 문제점은 과거의 화려한 내용들이 현재와는 하나도 연결성이 없다는 거였다. 그러다 보니 과거 내용은 완전 별개로서 손자들에게 들려주는 옛날이야기가 되어 의미 없는 분량만 차지한 꼴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그것과 다르게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가 꽤 있다. 대표적으로 주인공이 과거 만났었던 위인이나 유명인의 생생한 묘사라던가, 어릴 적 겪었던 마녀사냥 당시의 배경을 학생들에게 설명하는 장면들. 이처럼 지나온 과거가 현재의 일부분이 되고, 또는 그 기억이 두통을 낳는 장면들이 반복되는데, 이런 기교들이 작품의 균형을 이루고 몰입을 돕게 한다. 여기서 저자의 내공을 볼 수 있었지.


보통 일인칭 시점의 소설은 독자가 직접 주인공이 되어 읽는 맛이 있다. 근데 이 책은 일인칭이면서도 제삼자 입장에서 읽혔다. 그래서 아쉬웠다. 왜 주인공 입장이 될 수 없었냐면 계속 과거로 점프하니까 빙의되려는 걸 방해받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거 시점도 계속 왔다 갔다 해서 상황 파악하느라 리듬마저 중단된다. 매력적인 구성이지만 이런 리스크가 따르는군. 무엇보다 그토록 찾아다니던 딸이 아무 언급도 없다가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태연하게 아빠와 마주하는 건 좀 아니지 싶다. 몇백 년 만의 재회인데 일주일 만에 만난 것 같은 연출에, 감정선도 너무 약했어. 좀 더 드라마틱한 전개를 원했는데. 뭐, 요것들 빼면 다 좋았음. 주인공이 발견한 시간을 멈추는 방법은 시간의 지배에서 해방되는 것,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시간을 멈추는 법이 아니다. 나 외에 소중한 사람들의 시간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스스로가 과거에서 미래가 되었을 때 사랑하는 사람들의 시간과 발 맞출수 있단 걸 깨달은 거지. 평생 거짓말해야 하고, 누구와도 친해져선 안되고, 도망 다녀야 하는 인생이라면 차라리 산에 들어가 자연인으로 사는 게 나을 듯. 여튼, 너무 잘 읽었다. 분석할 것도 많았고, 재미도 교훈도 빵빵한 작품이다. 우리의 닥터 스트레인지께서 영화에 출연한다고 하시니 완전 기대된다.


이제 나에게 묻는다. 지금 이 순간은 미래를 맞이하는 시간일까, 과거로 지나 보내는 시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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