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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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유독 추천이 많았던 작품이라 의무감으로 읽었다. 근래 국내에서 일명 ‘드루킹 사건‘이 언론을 장악한 적이 있었는데 딱 그런 내용이었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돌려서 댓글과 추천수 조작으로 정부를 비방한 짓과 동일한 짓을 업으로 삼아 거짓도 진실로 만들어버리는 본격 키보드 워리어들의 무서움을 실컷 볼 수 있다. 어디에나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팩트를 왜곡하는 인간들이 있기에, 그 어떤 깨끗한 글과 정보에도 얼마든지 논쟁은 벌어지고 찬반은 늘 치열하다. 이 미꾸라지들은 그저 지 생각을 말했을 뿐이라지만 사실 남들을 선동시키고 분란을 조장하는 게 목적이다. 바로 이 책 속의 댓글부대처럼 말이다. 그들은 계약금만 받으면 되기 때문에 진실과 거짓의 여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어제는 우파가 되었다가 오늘은 좌파가 되고, 낮에는 이삼십대를 겨냥했다가 저녁엔 사오십대를 저격해댄다. ‘카더라‘식의 SNS 글 하나 올려두면 나머지는 네티즌들이 알아서 일을 크게 벌려놓는다. 사회에 저항심을 갖게 하는 영상을 만들어 잘못된 십대 문화를 형성하고, 인터넷 카페에 반대 글을 쓰고 조회수를 올려서 회원들을 떠나가게 만들어 폐쇄시킨다. 그 방법들이 생각보다 쉬워서 전문 업체가 아니어도 여론조작이 누구나 가능한 세상이 되어있고 우리는 그런 세상에 적나라하게 노출돼있다.


이 작품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많이도 언급된다. 기성세대는 댓글부대를 이용하여 그런 약자들을 주로 공략한다. 입막음해야 할 이슈가 있다던가, 업체를 문 닫게 하고 싶을 때 댓글부대에 하청하면 법망을 교묘히 피해서 생매장 시켜준다. 약점을 찾아내어 깐 데 또 까고, 한 놈만 패는 것이 그들의 전문 분야가 아니던가. 그렇게 댓글부대를 통해서 효과 좀 봤다 싶으면 청탁자들은 또 다른 제안을 걸어서 눈엣가시들을 차례차례 짓밟아간다. 온라인에서 어떤 식으로 불이 붙고, 어떻게 오프라인까지도 산불로 번지는지 자세하게 나온다. 매크로가 진짜 무서운 게 특정 단어가 들어간 SNS 글이나 댓글이 달리면 자동적으로 지적 댓글이 등록되기도 하고, 한 유저의 과거 글들도 전부 조회하여 집단 폭격도 가능하다. 정말이지 지능적이고 체계적인 조직이며, 공든 탑도 쉽게 무너뜨리고,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게 하는 전지전능한 프로들이다. 댓글 알바들을 볼 때마다 한심한 잉여인간들이라며 비웃었었는데 그게 다 돈 받고 하는 거라 생각하니 이제는 다르게 보인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속고 속이는 입장 중 누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선을 전혀 긋지 않는다. 정보의 사실 판단은 독자가 알아서 하란 뜻이다. 믿든 안 믿는 나만 손해란 사실은 변함이 없다는 불편한 진실만이 유일한 진실이다. 누군가는 지금도 여론 형성하느라 눈에 불을 켜고 있을 텐데.


SNS나 커뮤니티 사이트나 그 외 폐쇄 조직의 중독자들을 관찰해보면 대개 성향이 아주 뚜렷하다. 극 보수/부정적이거나 극 진보/공격적이거나. 본인들이 여러 트러블메이커에게 야금야금 영향을 받아서 그렇게 된 거라고 말해주면 격하게 부정할걸? 현실에서나 올챙이지, 온라인에서는 모두가 개구리니까. 자기는 처음부터 개구리였으니까. 그런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자신을 저격하는 내용이라며 작가를 테러할까 걱정도 된다. 일베나 오유에 대해서도 쓰셨던데 과연 괜찮을는지. 중간중간마다 나오는 댓글 부대원과 기자의 인터뷰 내용은 제법 흥미로웠다. 자신들의 조작 노하우와 사례들을 공개함으로써 기사화 시키려는 건데 결국에는 기자와 신문사를 물 맥이는 짓이었다. 아니, 그런 정보를 다 까발리면 내가 범죄자요! 나 잡아가소! 하는 건데 어째서 순순히 인터뷰에 응대하는지 의심해볼 법도 하잖아. 부대원이 하는 말을 다 믿는 순진한 기자. 이것이 유일한 킬링 포인트입니다, 여러분.


뭔가 두서없는 글이 되었는데 이 책은 어쩐지 서평쓰기가 좀 어렵다. 구성도 독특하고, 문학인지 칼럼인지 연재 기사인지 모를 제3의 장르인데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도 못 느꼈다. 분명 재미는 있는데 왜 재미있는지는 설명 못할, 다른 의미로도 참 대단한 작품이었다. 일반적으로 기자들은 곱지 않은 시선과 불신 비슷한 게 있어서 미움받는 직업인데, 장강명은 기자 시절에 진짜 열심이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커뮤니티 눈팅도 많이 한거 같고, 진보와 보수, 부자와 서민, 성차별과 남녀 혐오 등등 조사를 많이 하긴 했더라. 온전한 기자정신이 요즘도 존재할지 모르겠다만 기자 출신이 주장하는 팩트는 허구라 해도 이렇게 분명한 힘이 있다. 그래서 대중들이 이 작가를 유시민만큼이나 옹호하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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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0-08 1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이거 서평쓰기 힘들어 전 포기했는데 물감님 굿뜨!!!

물감 2018-10-08 14:02   좋아요 1 | URL
이제 겨우 두 권 읽었을 뿐이지만 장강명 작품은 서평 의욕을 활활 태우는 매력이 있네요ㅋㅋㅋ도전정신이 생깁니다

카알벨루치 2018-10-08 14:03   좋아요 1 | URL
물감님 응원합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