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봄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4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작가의 자전 소설로 불려서 특별한 기대감도 들었으나 기대와는 달리 흔한 구성이었으며, 단지 작가의 당시 심정들을 기록하기 위함이 아닌가 싶다. 어떤 서평에서는 책 뒤의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고 봐야 더욱 이해와 공감이 된다던데 과연 맞는 말이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작품은 이 시리즈 4권 읽은 게 전부긴한데 내가 느낀 애거사 스타일의 특징은 작품에 적응되기까지 다소 오래 걸린다는 것과, 발동이 걸리면 미친 듯이 달린다는 것이다. 그니까 전반전과 후반전의 온도차가 너무 심함. 처음부터 속도 낼 수 있으면서 왜 꼭 중후반에야 RPM을 올리는 건지 원. 이번 책도 갈수록 문체의 변화가 확 느껴지는데 후반부에는 챕터마다 분량이 굉장히 짧아서 주인공의 상태변화와 혼란스러운 감정을 보다 더 실감 나게 볼 수 있다.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에서도 이런 기법으로 효과를 넣었던 기억이 난다. 여튼 애거사를 애정 하는 독자들은 이 책도 읽어봐주면 좋을 듯. 


주인공 셀리아는 어려서부터 비상함과 엉뚱함을 같이 지닌 소녀였다. 남들보다 쉽게 고통받고 슬픔을 두 배로 느끼는 소녀의 유일한 안식처는 엄마였다. 내성적이고 수줍음도 많고 표현을 잘 못하는 어려움 때문에 힘들어하는 딸의 속 사정을 엄마는 전부다 알고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엄마도 딸처럼 겉으로 표현 못하고 참기만 할 줄 알았고, 엄마도 딸처럼 수줍어했고 숫기없어 고생했기에 가능했다. 아무튼 힘들 때마다 엄마만 의존했던 나머지 엄마 없이 아무것도 못하는 딸이 된다. 이후 좋은 남자가 생겨도 엄마와 있는 시간이 더 좋아하는 딸을 보며 엄마도 슬슬 낭만에 젖어 사는 딸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엄마의 걱정은 철부지 딸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에게서 딸이 떠날까 봐 딸의 남자들을 갖가지 이유들로 어울리지 못하게 막았고, 딸이 상처받거나 고통받지 못하도록 늘 좋은 것만 먹이고 입히고 가르쳤다. 딸도 고생 좀 해가면서 독립하는 법을 가르쳐야 했는데, 절대 손에 물 묻히지 않게 하려는 엄마는 요즘 표현으로 헬리콥터 맘이었다.


그렇게 애지중지 금지옥엽 키운 딸이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고 보니, 남편에게 상처 입을 때마다 자신이 너무 사랑만 받고 자랐음을 깨닫고도 엄마만 찾는다. 이렇게 주인공이 둥지를 떠나지 못하는 새가 된 것은 이미 정해진 결과였다. 남자에게 휘둘리지 않도록 남자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고 할머니가 그렇게 주의를 주었건만, 무조건 내 편인 엄마 말만 듣다가 현명함은 갖지 못하고 상처와 감정들을 혼자 삭히며 감내하는 신세가 되었다. 마침내 남편은 다른 여자와 불륜을 저지르고 이혼을 요구해온다. 남편의 모든 비위와 장단을 다 맞춰주었던 그녀는 그제서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만, 수증기로 변해가는 물을 막을 수 없듯이 마음 떠난 남편을 막을 수는 없었다. 구멍 난 댐은 빠른 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고 그저 지켜보는 것 외에 방도가 없었던 셀리아. 그리고 애거사 크리스티.


이 작품이 자전적 소설이고 작가의 지난날들을 기록한 거라면, 작가도 젊은 시절까지는 그리 현명한 사람은 아니었던 갑다. 자신이 가는 길은 다 꽃길이고 비단길인 줄 알았나 보다. 이 책을 기록하며 스스로 온실 속 화초였다는 사실을 인정했던 것일까.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남편의 불륜과 이혼을 겪으면서 받은 상처가 아무는 억겁의 시간들 가운데 내린 결론이 결국 뭐였을까. 짐작 가는 건 있지만 말하기 조심스러워 적지는 못하겠다. 추리소설의 여왕이라 불리지만 원래의 애거사 크리스티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사람임을 느꼈다. 두 번째 봄은 부디 평안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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