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광고인 박웅현은 세상의 모든 콘텐츠에서 영감을 얻곤 하지만, 책 안에서 주는 울림이야말로 가장 질 좋은 영감이라고 한다. 어떤 책이든 얼어붙은 감성을 도끼로 강하게 내리찍는 듯한 문장이 있는데, 그 문장의 울림 속에서 잠든 감성이 자라나게 해준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저자의 ‘여덟 단어‘에서도 강조한 것 같은데, 그만큼 독자에겐 울림이 절대 필요 값인듯하다. 이 울림은 책뿐만 아니라 훌륭한 서평에서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개인이 평소에 사용하는 단어나 어휘가 고스란히 글에 담기기 때문에 서평 두세 줄만 읽어보면 대강 글쓴이의 너비, 높이, 깊이를 알 수 있는데, 간혹 고레벨의 서평에서도 책 못지않은 강한 임팩트를 받곤 한다. 어떻게 이런 표현과 문법을 생각해냈지 싶을 때마다 내심 부럽기도 하고 질투도 느끼는 건 그만큼 그 문장이 나에게 강한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총 8번의 강독회가 목차로 되어있고 5강까지는 작품의 독립적인 문장에 대한 감동을 느끼는 법을, 8강까지는 작가와 작품 속 인물의 베이스에 대하여 접근하고 이해하는 법을 집중 조명한다. 부끄럽게도 저자가 소개한 책은 전부 못 읽어본 책 들이었다. 그래서 전부 공감하기엔 무리지만 전하고자 하는 바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한 서평가는 좋은 책 한 권을 만나기 위해 1만 권의 나쁜 책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그만큼 별 영양가 없는 책들이 세상에 넘쳐흐르는 시대에 살고 있다. 처음부터 좋은 책을 만나면 이게 대체 얼마나 좋은 건지 모를 테지만 나쁜 책을 읽고 난 뒤에 만난 좋은 책은 그 기쁨이 제곱으로 된다. 저자의 말처럼 책은 자신이 발달한 감수성으로 스스로를 자극한다는 말은 확실한 팩트이다.


얼마 전에 같이 일하는 한 직원이 센스/융통성 부족으로 힘들다던 고민을 들어준 적이 있다. 그런데 이건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니라서 큰 도움주기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제안해준 것은 닮고 싶은 사람을 ‘관찰하라‘였다. 나 또한 롤모델을 닮으려고 노력한 덕분에 지금은 유연하게 사는 것이 가능했다. ‘창의성‘ 역시 마찬가지이다. 규정화되어있지 않은 것을 설명하기란 한계가 있으니 우리는 좋은 글을 많이 읽어줘야 한다. 창의력이 필요 없는 직업군에도 필요한 이유는 정서가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라는 말에 앞서 나는 삶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가 어릴때부터 완벽함을 가르치는데 똑똑해지는 아이들은 똑똑한 대로, 그걸 못 따라가는 아이들은 뒤처진 대로 유연함을 잃고 자라난다. 그러다 보니 사소한 일에 쉽게 욱하고, 장애물마다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서 볼 때마다 참 안타깝다. 돌 같은 마음 밭에 풍요로움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일 때가 더 그렇다. 그래서 작가는 책을 통하여 얻는 창의력으로 풍요로운 정서를 강조한다.


잠깐 딴 얘기를 하자면 예능 중에 ‘나 혼자 산다‘를 좋아해서 즐겨보는데, 이 프로그램이 사랑받는 큰 이유는 연예인들의 무대 위/드라마 속 이미지와 일상생활의 갭 차이를 보며 친숙함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연예인들은 일할 때와 쉴 때를 분명하게 구분하는데, 일반인들은 사는 게 힘든 탓인지 이게 참 쉽지 않다. 연예인처럼 케어해주는 소속사도 없는데 이런 강박한 세상에서 만물을 보며 아름다움을 찾고 글 속에서 위안을 얻기란 참 배부른 소리 한다는 말을 듣기 쉽다. 나도 한때는 지독한 현실주의자여서 인생의 아름다움을 논하는 사람들을 보면 사는 게 만족스러우니까 저런 생각이 들겠거니 했었다. 그러나 그런 아니꼬운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차있으니 형편이 나아져도 도저히 부정적인 삶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늘 제자리걸음만 할 뿐이었다. 그래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훈련이 필요했다.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고, 사진을 찍어가며 그렇게 감성을 기르는 연습을 했다. 말이 훈련이지 그냥 관심을 가져줬을 뿐인데 어느새 저자가 말하는 풍요로운 삶이 되어있었다. 지금도 세상은 살기 팍팍하고 집값은 꾸준히 오르고 취업은 여전히 어렵다. 그럼에도 세상을 보는 눈과 대처하는 자세는 180도 바뀌었고, 너는 스트레스를 안 받냐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달라졌다. 지금 현대인들은 이런 박웅현의 마인드가 필요하다. 안 그래도 힘든 삶을 일부러 피곤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할 필요는 없지 싶다.


저자는 다독보다는 한 권을 깊숙하게 읽는 법을 권한다. 나도 한국인이라 온통 빠른 것에 익숙한 편이지만 에세이를 읽을 때는 정말 천천히 읽으며 사색에 잠긴다. 아직 시를 읽고 경탄할 내공은 아니므로 종종 에세이나 산문집으로 위안을 많이 얻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윤석미 작가의 ‘달팽이 편지‘는 나만 읽기 아까워서 꼭 다들 읽어봤으면 한다. 끝으로 나도 한번 인문학 강독회 스타일로 문학 서평을 써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덮었다. 그러려면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집중하고 분석해야겠지? 음, 생각만 해도 귀찮아지는구먼. 내공이 쌓이면 시도해보기로 하자. 여튼 인문학 도서만 읽으면 생각이 많아져 이렇게 글이 길어진다. 오늘은 누군가와 실컷 수다 떨고 싶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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