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내용은 복잡하지 않은데 요약하려니 조금 복잡하다. 일단 큰 줄기는 두 가지이다. (프롤로그도 두 개이다.) 하나는 한 소년이 나팔꽃 시장에서 만나 썸 타던 소녀가 갑자기 연락을 끊고 사라진 것. 다른 하나는 식물 연구원을 은퇴한 할아버지가 살해당하고 손녀가 발견한 것.

사건과 동시에 할아버지가 가꾸던 노란 나팔꽃의 화분이 없어졌고, 이후 한 남자가 손녀에게 그 꽃을 알려 하지 말라는 경고를 준다. 이제는 멸종하여 없어졌다는 노란 나팔꽃을 이 할아버지는 어떻게 갖고 있었을까. 그리고 노란 나팔꽃에 대해서 알고 있는 한 남자는 누구인가.

작가가 참 공대 출신 답다고 해야 하나, 관심분야가 넓다고 해야 하나. 이번엔 식물 공학과 에도 시대의 역사와 현대물을 훌륭한 비율로 완성해냈다. 제일 자신 없는 게 역사소설이라던 작가는 이 작품으로 모든 분야에 발을 담근 듯하다. 

평소 그의 작품들은 가독성이 좋아 빨리 읽는 편인데, 이 책은 왜인지 천천히 읽혔다. 사실 다작을 한다 해도 어떤 작품이든 온 신경을 다 쏟아부어서 만들 텐데 그 심정을 모르는 독자들은 그냥 후루룩 읽어버리니 속상하지 않을까. 요리사가 정성껏 만든 요리를 맛있다고 그저 허겁지겁 먹으며 후딱 해치워 버리는 것은 요리에 대한 예의가 아니듯이 말이다.

그건 그렇고 웬일로 깔 부분이 없는 작품이었다. 제목처럼 작품 분위기도 이상하게 몽환적이었는데, 제자리걸음만 하는 수사에도 답답함보단 붕 떠있는 기분이었거든. 암튼. 형사는 형사대로, 주인공 남녀는 그들 방식대로 수사하는 과정이 볼만했고, 각자가 안고 사는 아픔으로 인해 작품이 한층 더 입체적이라 좋았다.

많은 일본 작가들이 사회파 소설을 쓸 때 문제의 심각성만 던지는 반면, 히가시노는 심금을 울리는 장면을 꼭 집어넣는다. 아마 그것 때문에 유독 사랑받는 작가가 되지 않았나 하는 게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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