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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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저녁약속이 생겨서 잠시 기다리는 동안 더위를 피하러 서점에 들렀다가

작고 이쁜 보랏빛깔 책이 눈에 띄어서 집어들었다.

철학서에 관심이 없어서 내가 잘 몰랐던거지, 알고보니 작년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긍정의 힘>이라든지, <꿈꾸는 다락방>,<시크릿> 등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만이 잘될거라는 기존 타이틀과는 달리,

<피로사회>라는 제목부터 신선한데다,

저자가 제시한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현대사회를 진단한 책의 소재가 참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매했는데

철학서치고는 꽤 잘 읽힌다.

 

 

 

 

저자는

과거 20세기까지가 '~해야한다' 혹은 '~하지말아야 한다' (MUST) 라고 말하는 규율사회(=부정의 사회)였다면,

지금 21세기는 '~할수있다' 혹은 '~하면된다' (CAN) 라고 말하는 성과사회(=긍정의 사회)가 되었다고 진단내린다.

규율사회를 살았던 과거는 타인으로부터 착취를 당하는 삶을 살았기에 잘못된 부분은 바꾸려고 노력하게 되는 반면에,

성과사회를 살아가는 현대는 스스로에 의한 착취가 이루어지므로 잘못된 부분이 있어도 바뀌려고 노력하지 않아 더 위험하다고 한다.

이렇게 위험에 빠진 현대사회는 무조건적인 긍정의 힘을 외치며 스스로가 스스로를 착취하도록 만드는 악순환이 반복됨으로써 우울증과 같은 신경증적 질병에 시달리고, 그래서 현대사회는 피로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병든 현대 피로사회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에 대한 처방으로 '깊은 심심함','사색', '관조' 등에 관한 삶을 제안한다.

요즘 인문학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인문학서적을 읽는 것만큼이나 인문학서적을 읽고 사색하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 책의 저자도 이런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늘 성과를 강요받는 현대사회는 너무도 분주하여 자아를 돌볼 시간이 없으므로,

머뭇거리고, 사색하는 시간을 통해 자아를 돌아봄으로써 병든 피로사회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껏 나 또한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우리의 삶을 더 이롭게한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왔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긍정도 좋지만, 과도한 긍정은 오히려 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유불급이라고 하지 않는가.

아무리 좋은것일지라도 넘치는 것은 좋지 않은 것이다.

만약 자신이 무조건적인 긍정을 외치는 성과위주의 삶에 지쳐있다고 판단된다면,

지금부터는 이 책의 처방대로 잠시의 심심함을 느껴보는 연습을 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무언가를 반드시 해야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사색 시간을 가져보고,

출퇴근길이나 화장실에 갈때, 잠자리에 들기전에는 스마트폰을 내려놓자.

잠시 머뭇거리는 시간,

사색하는 시간,

그리고 깊은 심심함을 느껴보는 시간을 조금씩이라도 가져본다면 우리의 삶은 조금이나마 덜 피로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 낭만 다람쥐의♥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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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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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몇년 전, 구제역으로 인해 돼지와 소를 살처분하는 동영상을 작가가 우연히 접한 뒤, 집필하게 된 책이라 한다.

살아있는 돼지와 소가 살처분되는 장면을 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불쌍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 가축들이 죽어야 사람이 살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게 살처분하는 대상이 만약에 우리가 가족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반려동물이었다면 어땠을까?

심지어 그 대상이 인간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그런 살처분을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Yes."다.

왜? 동물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하니까..

 

대다수가 이렇게 대답하는 이기적인 현실속에서,

그래도 아직은 우리곁에 남아있는 한줄기 희망을 얘기해보고자 <28>이라는 소설은 쓰여지게 되었다고 한다. 

  

 

 

 

 

소설 속 '화양'이라는 한 도시에 '빨간눈의 괴질'이라는 인수공통전염병이 급속도로 퍼진다.

인수공통전염병이란, 사람하고 동물이 함께 걸리는 전염병으로 (이를 테면 광견병이나 조류독감, 에볼라 출혈열 같은)

동물이 동물한테, 동물이 사람한테, 사람이 사람한테, 사람이 동물한테 전염시키는게 모두 가능한 전염병을 말한다.

이러한 병의 원인도, 해결방법도 모른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배경으로

다섯명의 인간과 한마리의 개의 시선이 번갈아가면서 숨막힐정도로 흡입력있게 소설은 진행된다.

 

 

최근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가 <월드워z>인데,

그 영화는 결말에 좀비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을 찾게되면서 인류를 구원하면서 끝을 맺는다.

만약에 이 소설이 <월드워z>처럼 인수공통전염병에 대한 원인을 발견하고 그것에 대한 백신을 찾게 되면서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었다면

정말정말 식상한 결말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정유정 작가님은 그것을 극복하는 식상한 결말로 소설을 마무리하지 않았다.

개를 살처분하고 심지어 인간까지 생매장하는 극한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은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뒤,

그 악한 모습뒤에 숨겨진 선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선한 본능이 잠재되어있기에 아직은 우리 삶에 희망이 있다.

라고 말이다.

 

 

난 이 책을 소재부터 인물과 상황설정, 전개 모두모두 훌륭한 작품이라 평가하고 싶다.

마지막부분이 전작만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데다, 좀 많이 잔인해서 별점 반개를 빼버릴까 했지만,

이토록 생생하게 잔인함을 느낄정도로 글을 잘 썼다는 거니까 그냥 처음 생각대로 별점 다섯개를 주어야지.

 

 

 

  

이 소설을 쓴 정유정 작가님은 2년 전, <7년의 밤>을 통해 처음 알게된 작가분인데

소설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도 난 이 작가분이 평범한 간호사출신이였다는 사실을 알고서 감탄을 했었다.

어떻게 글을 배우지 않은 간호사 출신의 사람이 이런 글을 쓸 수가 있는걸까!!!하고.

물론 내가 간호사여서 간호사출신 작가를 더 높이 평가하는건 아니다.

(물론 간호사라는 것에 대한 반가움도 있지만,)

따로 전문적으로 글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글을 잘쓰는데에 대한 존경심이 더 크다.

만약 이 분이 그냥 본업에 충실하자는 마음으로 병원에만 계셨더라면 이런 엄청난 재능을 묵힐뻔했으니,

생각만으로도 참 아찔하다. >_< 

 

 

정유정 작가님의 다음 작품은 또 언제,어떤 흡입력있는 소설로 태어나게 될지,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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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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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다자키 쓰쿠루는 봉사활동을 통해 아카(赤),아오(靑),시로(白),구로(黑)라는 4명의 친구들을 만난다.

각기 색채가 뚜렷한 이름만큼이나 재능과 개성 또한 뚜렷한 4명의 친구들에 비해

다자키 쓰쿠루만이 이름에 색채가 없어서인지 그만의 재능이나 개성 또한 없어 혼자만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완벽한 오각형을 이룬채 순조로운 학창시절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날,

다자키 쓰쿠르는 나머지 4명의 친구로부터 일방적인 절교를 당하게 되면서

죽음의 문턱까지 닿을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 후, 16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다자키 쓰쿠루는 그 때의 힘들었던 시간을 서서히 잊고

지금은 상처도, 아픔도 없다고 자신의 연인인 사라에게 과거를 고백하지만

사실은 표면적으로 아문 것처럼 보일 뿐 안쪽에서는 조용히 피가 흐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 사라는

다자키 쓰쿠루에게 과거에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유를 알게하고자 순례를 떠날 것을 권하게 되는 내용의 책이다.

 

 

사람들은 생김새부터 재능까지 각기 다른 색채를 지니고 살고 있지만,

정작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설속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처럼  자기자신은 색채가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다.

난 왜 이렇게 생긴걸까,

난 왜 이렇게 잘하는 것 하나 없을까.. 등등..

그렇지만 그건 자신의 생각일 뿐, 타인의 눈에 어느 누구도 색채가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색채가 없을수록 다른 색채에 물들기 쉽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장 개성 뚜렷한 색채를 지닌 사람으로 보여질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그래서 소설 속 다자키 쓰쿠루가 남들 눈에는 색채가 있는 사람으로서 그룹내에서 꼭 필요한 존재였던 것처럼

어느 누구라도 자신만의 고유한 색채가 있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소설은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소설 속 순례를 떠나는 여정이 단순히 본다면 자신이 절교당한 이유를 찾아나서는 과정일 뿐이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결국은 자아를 찾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가 과거에 상처를 당한 이유를 알게되고,

자신은 색채가 없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만의 색채를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과정을 통해

이 책을 읽는 사람들도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자아를 찾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나 역시 그랬다.

아직까지도 의문인 채로 내 마음속 서랍속에 닫아둔, 정말 친한 친구에게만 털어놓은채 꽁꽁 숨겨둔 한 사건이 있다.

다행히 그때의 상처가 곪지 않고 잘 치유되어 지금은 흉터도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본다면 아직도 조용히 피가 흐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직은 그 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도, 용기도 나지 않지만

언젠간 나에게도 순례를 떠날 기회가 오지 않을까...하고 생각해본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책을 다 읽고 나니 공허함이 밀려온다.

마치 멀리 떨어진 오래된 친구를 몇 년만에 만나서 몇시간동안 수다를 떨고 난 뒤에

아직 해야할 말은 많이 남았지만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어 아쉽게 헤어진 뒤에 남는 그런 공허한 느낌 말이다.

어쩔 수 없는 이 공허함은 리스트의 음악으로 달래고,

언젠가 재회할 기약없는 다음 만남을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하루키님, 건강히, 다음에 또 만나요♡

 

   

 

요번 예약판매 이벤트 중 가장 반가운 선물은 바로 리스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다.

항상 하루키님 책에 등장하는 음악을 함께 들으며 독서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는데,

아마도 이런 독자의 마음을 하루키님이, 혹은 출판사가 잘 반영해준 듯 하다.

 

 

"프란츠 리스트의 <르 말 뒤 페이>예요.
<순례의 해>라는 소곡집의 제1년, 스위스에 들어있죠."
"르 말 뒤....?"
"Le Mal du pays. 프랑스어예요. 일반적으로 향수나 멜랑콜리라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전원 풍경이 사람의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영문 모를 슬픔.' 정확히 번역하기가 어려운 말이에요."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나로서는 그 일을 깡그리 모조리 잊어버리고 싶어.
그때 입은 상처는 조금씩 치유되었고 나름대로 아픔을 극복해 왔어.
물론 긴 세월에 걸쳐서.
이제 겨우 딱지가 앉은 상처를 지금 다시 열어젖히고 싶지는 않아."
"그렇지만 어떨까. 그냥 표면적으로 아문 것처럼 보일뿐인지도 모르잖아." 사라는 쓰쿠루의 눈을 들여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안쪽에서는 아직도 조용히 피가 흐르고 있을지 몰라.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어?"
쓰쿠루는 묵묵히 생각했다. 말을 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결국 혼자 남겨질 운명일지도 모른다.
쓰쿠루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다가왔다가는 이윽고 사라진다.
그들은 쓰쿠루 속에 무엇을 찾으려 하지만 그것을 찾지 못해, 또는 찾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체념하고 (또는 실망하고 화가 나서) 떠나 버리는 것 같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작스럽게 모습을 감추어 버린다.
설명도 없고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없이.
따스한 피가 흐르고 아직도 조용히 맥박 치는 인연의 끈을 날카롭고 소리 없는 손도끼로 싹둑 잘라 버리는 것처럼.

 

분명 자기에게는 근본적으로 사람을 낙담케 하는 뭔가가 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 그는 소리 내어 말해 보았다.
결국 남에게 내밀 수 있는 건 뭐 하나 가진 게 없어.
아니, 그러고 보면 나 자신에게도 내밀 것이 하나도 없을지 모르지.

 

 


"난 옛날부터 나 자신을 색채도 없고 개성도 없는 텅 빈 인간이라 생각했어.
그게 어쩌면 그룹 안에서 내가 맡은 역할이었을지도 모르겠군. 속이 텅 빈 존재로서."
아오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해가 안 가네. 텅 비었는데 무슨 역할을 하지?"
"텅 빈 그릇. 색이 없는 배경. 이렇다 할 결점도 없고, 딱히 뛰어난 점도 없는, 그런 존재가 그룹에 필요했을지도 모르지."
아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는 텅 빈 존재가 아냐.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
넌,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다른 모두의 마음을 안정시켜 줬어."
"마음을 안정시켜 줘?" 쓰쿠루는 놀라서 되물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들리는 음악처럼?"
"아니, 그런 게 아냐.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넌 있는 것만으로 우리가 자연스럽게 우리로서 거기 있을 수 있게 해주는 면이 있었어.
넌 별로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두 다리로 지면을 굳게 딛고 서서 우리 그룹에게 평온한 안정감 같은 걸 줬던 거야.
배의 닻처럼. 네가 떠나면서 우리는 새삼 그걸 실감했어. 우리한테는 역시 너라는 존재가 필요했다고.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떠난 이후로 우리는 갑자기 흩어지기 시작했어."
쓰쿠루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이봐,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완벽한 조합이었어, 다섯개의 손가락처럼."
아오는 오른손을 들어 그 굵은 손가락을 펼쳤다.
"지금도 자주 그런 생각을 해. 우리 다섯은 각자가 부족한 부분을 서로 자연스럽게 보충해 줬어.
각자 뛰어난 부분을 고스란히 드러내서 아낌없이 나눠 주려 했던 거야.
그런 일은 아마도 우리 인생에서 다시 일어나지 않을거야.
단 한 번만 누릴 수 있는 행운.
그런 느낌이 들어.
내게는 지금 가족이 있어. 그리고 가족을 사랑해. 당연히.
그렇지만 솔직히 말해 가족에 대해서도 그때처럼 불순물 하나 없이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기분은 느끼기 힘들어."

 

 


그때 그는 비로소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영혼의 맨 밑바닥에서 다자키 쓰쿠루는 이해했다.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결된 것이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이어진다.
비통한 절규를 내포하지 않은 고요는 없으며 땅 위에 피 흘리지 않는 용서는 없고,
가슴 아픈 상실을 통과하지 않는 수용은 없다.
그것이 진정한 조화의 근저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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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아이
장용민 지음 / 엘릭시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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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아이?"
"그들은 그 아이들을 그렇게 불렀소."
"그들은 누구고, 그 아이들은 또 뭐요?"
"그 아이들은 미래를 기억하는 아이들이오."
짐머만은 기억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었다.
"미래를 본다는 말은 들어 봤어도 기억한다는 말은 처음이오."
"왜냐하면 말 그대로 기억하기 때문이오.

 그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모든 기억을 갖고 태어나오.

 인생 전체를 뇌 속에 저장한 채 세상에 나오는 거지."

 

 

 

 

7살 이후 모든 것을 기억해야만 하는 과잉기억장애를 앓고 있는 앨리스.

10년전이라는 시간을 뚫고 쓰여진 편지를 남긴채 죽어간 미래를 기억하는 남자 신가야.

앨리스와 신가야의 사이에 태어난 또 하나의 궁극의 아이 미셸.

이들에게 일어난 사건을 해결하고자 나타난 FBI 요원인 사이먼.

그리고 거대한 음모조직인 악마개구리가 등장하여 이들과 둘러싸인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를 하나하나 풀어나가는책이다.

 

 

장르소설인 만큼 궁극의 아이라는 신선한 소재로 독자의 구미를 자극하고,

퍼즐조각 맞추듯 연결되는 사건의 인과관계가 꽤 흥미로웠다.

그치만 엄청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을 만큼 재밌지는 않았다.

앨리스와 신가야의 사랑이야기가 조금 유치하게 느껴진데다,

엄청난 반전이 숨겨져 있을거라고 기대한 나의 기대치가 너무 높았나보다.

 

 

한국형 스릴러 작품 이라 하면 떠오르는 작가인 정유정과 비교되고 있는 듯 한데, 난 개인적으로 정유정 작가님 책이 더 재미있었던걸로 기억이 된다.

일주일전에 예약주문해둔 결과로 하루키님 신작이랑 정유정 작가님 신작이 함께 왔는데,

하루키님꺼 다 읽고 정유정 작가님 책도 얼른 만나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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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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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서울대학교 도서관 대출 순위 Top10에 관한 목록이 뜬 기사를 읽은적이 있다.
그 중에서 내가 안 읽어 본 책이 딱 2권이 있었는데,
하나는 알랭드보통의 <불안>이었고, 또 하나는 바로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는 책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 이 2권을 한꺼번에 주문했다가 읽지는 않고 책꽂이에 꽂아만 뒀었는데
어느날 한심한 롯데의 야구를 보다가 생각이 나서 꺼내본 책이다.

 


박민규 작가님 책은 예전에 <카스테라>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집을 읽었던 적이 있는데,
그 당시 내가 별로 안 좋아하지만 인기만 많은 베르나르베르베르의 <나무>가 베스트셀러였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 때 <나무>를 읽고 실망했던 기분을 <카스테라>로 풀면서
박민규 작가가 베르나르베르베르보다 훨~~~~~씬 괜찮다고 혼자 평가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번에도 그 때와 마찬가지로 우연히 발견한 책이라 별 기대없이 읽었는데,
무슨 만화도 아니고, 코미디 프로그램도 아닌데
중반부까지 읽는내내 작가의 재치넘치는 입담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면서 폭소를 터뜨린게 여러번이었을 정도로 재밌었다.

초반~중반까지의 내용은 주인공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의 시간으로,
삼미슈퍼스타즈 야구단에 관한 설명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중반~후반까지는 주인공이 성인이 되면서 전혀 다른 성격의 내용이 나오면서 책이 꽤 진지해진다.

 


평범한 야구인생으로 살다가 끝날 수도 있었을텐데,
"프로"야구가 생겨나면서 본인이 프로든, 아마추어든 모두가 프로가 되기를 강요받는다.
그러한 야구에 빗대어 우리의 삶도 모두가 프로인생만을 추구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 책은 말한다.
꼭 우승해서 프로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어야만 정답인 것이 아니라,
치고 싶은 공만 치는 삼미슈퍼스타즈 처럼 사는 인생도 그들도 그들 나름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있으니 틀린건 아니라고.

 


책을 읽으며 그래, 나도 초반의 주인공처럼 참 아등바등하며 살았지.. 싶었다.
대학 타이틀이 중요하고, 직업이 중요하고, 사람들이 보는 눈도 중요하고...
그렇담 나도 후반의 주인공처럼 모든것을 놓고 살아볼 필요도 있는건가? 그렇다면 지금보다 행복해질까?
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솔직히 그런 기회가 온다 해도 아직은 모든것을 놓고 살아갈 용기가 없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난 아직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라는 걸 인정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난 아직은 삼미슈퍼스타즈의 팬클럽이 되기엔 세상을 더 살아보아야 하나 보다...

 

 

 


나는 다시 슈퍼스타즈를 생각했다.그리고 삼미의 팬이었던 나의 유년과, 현재를 생각했다.
OB와 삼성, 혹은 MBC나 해태의 팬이었던 또래의 소년들에 비해 확실히 나는 염세적인 소년이었고,
자신감이 없었으며, 세상을 어둡게 바라보고 있었다. OB의 팬이 아니라면, 삼성의 회원이 아니라면, 아니 프로야구가 없었다면ㅡ그 소년들과 나의 차이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결국 문제는 내가 삼미 슈퍼스타즈 소속이었던 데서 출발한 것이라고, 16살의 나는 결론을 내렸다.
그랬다, 소속이 문제였다. 소속이 인간의 삶을 바꾼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을 담은 소년이 왜 전철 안에서 조롱을 받는가?
삼미 슈퍼스타즈의 잠바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동창인 조부장에게 왜 굽실거려야 하는가.
삼류 대학을 나왔기 때문이다.
삼촌이 사는 남동구는 왜 개발이 되지 않는가?
소속구의 국회위원이 여당 소속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속이 인간의 삶을 바꾼다.
소속이 인간이 거주할 지층을 바꾸는 것이다.
어느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삼미의 고별전을 보고, 자장면을 보고, 「무릎과 무릎 사이」를 볼 뻔했다가
「지구괴수대전」을 보고, 돌아와 아버지에게 뻥을 치고, 샤워를 하고, 꿀물을 마시고, 대북 방송을 듣고, 밤을 새고,
그러고는 다시 아버지에게 뻥을 친 그대로 '죽는 한이 있어도 좋은 대학에 가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던 아침이었다.

인생은 참으로 이상한 것이다.

 



인생은 결국, 결코 잘하리라는 보장도 없이ㅡ거듭 버틸 수 있는데까지 버티다가 몇 가지의 간단한 항목으로 요약되고 정리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지금도 버티고 있는, 그래서 아무 일 없이 흘러가고 있는 우리의 삶은ㅡ실은 그래서 기적이다.

 



제대를 하면서, 나는 '소속'의 고민과 비슷한ㅡ또 하나의 강박관념을 그곳에서 가지고 나왔다.
그것은 '계급'이었다.
세상은 수없이 많은 소속 안에서, 또 다시 여러 개의 계급으로 나뉘어 있었던 것이다.
마치 지구가 위도와 경도로 나뉘어 있듯ㅡ결국 인간은 그런 식으로 이 세계를 분할하지 않고서는 견대지 못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었다.
위도 몇에 경도 몇....결국 그곳에 한 인간의 좌표가 위치해 있고, 우리의 삶은 여간해서 그 위치를 벗어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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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내가 소속된 학교에 자식을 보내고 싶어하는ㅡ돈 많은 부모들의 자제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무작정 시작한 일이었는데, 아버지의 월급보다 더 많은 액수의 돈이 정말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위도와 경도로 나뉜 이 세상에서 일류대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이빨로 기차를 끌어 기네스북에 오른 사람처럼, 나와 나의 학교가 스스로도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옳았다.
소속이 인간의 삶을 바꾼다.
이제 남은 것은 계급을 끌어올리는 일이다.

 

 


인생은 참으로 이상한 것이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힘들고, 쉽다고 생각하면 쉽다.
이혼을 하고 실직을 당한 그 시점에서부터, 나는 서서히 인생을 쉽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자 하나씩, 하나씩 할 일들이 생겨났다.
우선 그날 이후 나는 하릴없이 하늘을 쳐다보는 새로운 습관이 생겨났고,
어느새 산보를 하며 하늘을 즐기는 것이 하나의 중요한 일과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하늘을 즐기는 것이 하나의 중요한 일과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하늘을 즐겨가면서 나는 점점 낙천적인 인간으로 변해갔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신은 사실 인간이 감당키 어려울 만큼이나 긴 시간을 누구에게나 주고 있었다.
즉 누구에게라도, 새로 사온 치약만큼이나 완벽하고 풍부한 시간이 주어져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시간에 쫓긴다는 것은-돈을 대가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시간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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