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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형 인간 - 천재인가 미치광이인가
대니얼 Z. 리버먼.마이클 E. 롱 지음, 최가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은 왜 다른 동물과 달리 미친 듯한 사랑에 빠지고, 야망을 위해 스스로를 불사르고 더 비싼 것, 더 자극적인 것, 더 놀라운 것에 끊임없이 매료될까?
왜 술, 담배, 커피를 단칼에 끊지 못하고, 마약, 권력, 섹스 앞에 쉽게 무너지며, 미레에 얻게 될 특별한 보상을 위해 현재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제물로 바칠까?
이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와 기묘한 호기심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 책 날개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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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이라는 것은 1957년 런던 근교의 런웰 병원 연구실에서 캐슬린 몬터규에 의해 발견된 뇌 속 화학물질이다.
도파민을 만들 수 있는 뇌세포의 수는 오로지 0.0005%, 즉 200만 분의 1에 불과함에도 이 화학물질이 사람의 행동을 쿠게 좌지우지하는 것이었다.
한 실험에 참여한 피시험자들은 도파민의 신호가 켜졌을 때 쾌감을 느꼈고, 이 세포를 깨우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고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도파민을 두고 과학자들은 '쾌락분자 pleasure molecule'이라는이름을 붙이고 뇌세포가 도파민을 만드는 반응을 보상회로 reward circuit 라 불렀다. /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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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실 도파민은 쾌락과 아무 상관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쾌락보다 훨신 더 섬세하고 심층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도파민의 진짜 역할이다.
도파민의 활성은 쾌락의 지표가 아니가 '예측 불가능성', 즉 가능성과 기대에 대한 반응이다.
어떤 기대감에 도파민 폭발을 경험한 적이 있다.
인간의 뇌는 예측 불가능한 일들을 갈망하도록 빚어졌다. 그래서 인간은 갖가지 가능성을 자양분 삼아 미래를 꿈꾼다. 반면 익숙해진 것에는 흥분과 기대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때 인간은 새로운 것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이 현상을 과학자들은 '보상 예측 오류 reward prediction error'라고 부른다. 인간이 끊임없이 예측을 하는데, 실제로 일어난 일이 내 예상보다 좋았을 때 우리는 미래 예측에 오류가 있었다고 말한다. /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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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보상예측오류가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도파민은 꿈틀거린다.
새로 생긴 빵집에서 어떤 빵을 파는지 구경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치는 것, 이는 도파민이 폭발해 순간 미각, 촉각, 시각을 마비시켰기 때문이다. 이것이 기대감이 주는 쾌락이다. 가게 안에 들어가지도 않았으면서 벌써 마음이 들뜨고 신이 난다. / 30쪽
도파민이 주는 흥분감, 즉 기대감이 주는 스릴은 영원하지 않다. 미래도 언젠가는 현재가 되기 때문이다. 알지 못하기에 황홀했던 미스터리는 지루한 일상이 된다. 바로 그 지점에서 도파민은 냉정하게 우리 손을 놓아버린다. /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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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존재하기 때문에 아직 갖지 못했고, 맛볼 수도, 만져볼 수도 없는무언가를 소망하는 것, 포기하지 못하고 기대와 상상만을 끊임없이 키워가는 것.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 도파민의 역할은 매우 구체적이다.
도파민은 훨씬 좋은 날이 곧 올 것이라는 환상을 우리의 머릿속에 심는다. 그래서 우리를 계속 '더, 더!' 하고 외치는 천하의 욕심쟁이로 만드는 것이다. /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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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은 쾌락분자가 아니다. 그보다는 기대감 분자 anticipation molecule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우리가 꿈과 환상만을 좇는 것을 멈추고 현실을 즐길 수 있으려면 '미래바라기' 도파민이 쥐고 있던 뇌의 지배권이 다른 신경전달물질들에게 넘어가야 한다.
현재지향적 화학물질들은 세로토닌, 옥시토신, 엔돌핀, 엔도카나비노이드 계열 분자들이다. 이들은 도파민이 기대감을 통해 기쁨을 주는 것과 달리, 실제 감각과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선사한다. / 45쪽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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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이 '쾌락' 분자가 아니라 '기대감 분자'라는 사실이 놀랍다. 그 '기대감'이라는 것은 어떤 것을 손에 넣거나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게도 만들 정도로 인간의 눈을 멀게하는, 폭발적인 동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그 원하는 것을 손에 넣거나 목표를 이루고 나면 밀려오는 '허무함'이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사랑에 빠져 열열하게 사랑하던 연인이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랑이 식는 현상, 죽도록 공부해서 시험에 합격하거나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공허함을 느끼는 현상들이 그 예이다.
어떤 물건을 손에 넣으면 내가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감, 가령 유명 연예인이 입었던 옷을 입으면 그 연예인처럼 예뻐지거나 고급스러워질 수 있다는 기대감, TV 홈쇼핑에서 쇼호스터들이 강력하게 추천하는 제품을 사용하거나 먹으면 정말 TV속에서 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고 내 삶이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들, 우리의 소비생활에서도 '기대감'에 이끌려 쇼핑을 하고 또 쇼핑 중독에 빠지기도 한다. 그 중독의 비밀이 '기대감'이라는 도파민의 작용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니, 내가 어떤 물건을 사고 싶어서, 가령 희소성이 있는 모델을 구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해외직구까지 하는 그런 집착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체가 없는, 도파민에 이끌린 집착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나니, 나의 마음을 '미치도록' 설레게 하거나 강렬한 욕구를 다시 한 번 의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하는 것과 좋은 것(좋아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또 깨닫게 된다.
"가능성만 가득한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 도파민의 미래 세상에 머물며 살아가기 위해 사람들은 종종 행복을 스스로 포기한다."
하버드 한 연구팀이 연구를 통해 밝혔던 것은 사람들은 '지금 하는 일에 관한 것 말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나요?'라는 질문에 2번 중 1번 꼴로 '예'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렇듯 사람들은 너무 자주 어떤 일을 하면서 다른 일을 생각한다. 바로 이 잡념이 바로 뇌의 기본설정상태라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잡념에 빠져 있을 때 덜 행복해하는 경향이 있었다. 식사중이건, 근무 중이건, TV를 보건, 친구와 함께 있건 사람들은 지금 하는 일에 오롯이 집중할 때 더 만족하고 즐거워했단다.
"인간 정신의 본성은 떠도는 것이지만 정신이 떠돌 때 인간은 행복하지 않다."
도파민에 이끌려, 기대감만 추구하며 사는 삶은 현실의 즐거움과 행복을 보지 못하게 한다. 폭발적인 설레임과 기대감을 주기도 하지만, 이러한 흥분들은 결국 우리를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해주는 요인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최근 읽었던 <내일을 위해 사느라 오늘을 잊은 당신에게 / 나카무라 쓰네코> 에서도 기대감에 이끌려 내일을 위해 미래를 위해 더 더를 외치다가 오늘의 행복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우리는 우리를 때로 미치도록 만드는 욕망과 갈망이 바로 기대감이라는 허상, 바로 도파민이 원인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기대감의 유혹이 이끄는 대로 살 것이 아니라,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