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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게 (양장) - 기시미 이치로의 다시 살아갈 용기에 대하여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나카무라 쓰네코.
1929년 출생. 정신과 의사
1945년 6월, 종전 두달 전에 의사가 되기 위해 히로시마 현 오노미치시에서 홀로 오사카로 떠나 혼돈의 시대에 정신과 의사가 된다.
두 아이를 키우며 의사로 일해온 그는 2017년 7월(88세)까지 주6일 풀타임으로 외래, 병동 진료를 했다. 언제 죽어도 미련은 없다는 마음으로 의사 일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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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 한없이 굼뜬 인간이라서 요령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습니다.
제가 해온 일이라고는 그저 '눈앞의 환자가 날 믿고 의지한다면 그에 보답하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하자' 정도입니다. 돌이켜보면 저로서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 싶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면서도 타협할 부분을 찾을 수 있답니다. 누가 뭐라 한들 결국 마지막 목표는 나 자신입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 7쪽 (나카무라 쓰네코의 프롤로그)
"그가 살아가는 방식은 한마디로 말하면 '매일 담담하게'입니다.
결코 세련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지만 언제나 눈앞의 일에 충실한 자세로 살아갑니다.
억지스러움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 9쪽 (오쿠다 히로미의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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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때문에 일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딱히 야망도 없었고 아이들을 키우려면 돈이 필요해서 일했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아이들은 어느덧 훌쩍 커 독립했고 저도 나이를 먹어 일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단골 환자들 때문에 여의치 않더군요.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벌써 70여년이 흘렀네요. 좋게 말하면 흐름에 몸을 맡긴다고 해야 할까요?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일에 대한 자세는 그 정도면 되지 않을까요?" / 19
"하지 않는 것보단 낫겠지'라는 마음가짐이 일을 착실히, 꾸준하게 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과도하게 기대를 하지 않기 대문에 성가시고 불쾌한 일이 생겨도 '뭐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는 거야'하고 느긋하게 넘길 수 있죠. 그러다가 간혹 생각지도 못한 기쁜 일, 즐거운 일이 생기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 28
"무릇 인간이 어떤 큰 결단을 할 때는 '더 분발하자'라는 긍정적인 마음뿐 아니라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도 공존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즉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도 인생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의 일부죠.
중요한 건 어느 쪽이든 '자신의 의지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한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전에 다니던 직장이 끔찍했기 때문에 지금 내가 이렇게 됐다'가 아니라 '내 의지로 그 직장을 나와 내 의지로 지금 여기에 있다'는 자각이 필요합니다.
어느 누구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스스로 결정한 일이라면,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어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스스로 결정해서 현명하게 도망친다면 저는 대찬성입니다. 내 인생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시느이 것이니까요." /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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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70년동안이나 정신과 의사로 월급을 받으며 묵묵하게 일해온 의사다.
정신과 의사를 70년 동안이나 했으니 얼마나 다양한 군상의 인간들을 만나왔겠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상담하고 인간의 삶이라는 것에 대해 통찰력을 얻었겠는가.
이 책은 그런 저자가 상담을 하며 얻은 인간 정신 세계에 관한 개념과 지식들을 알려주고자 함이 아닌, 그저 자신의 삶과 일을 되돌아보며 독백하듯, '지혜'를 전하는 책이다.
** 여기서 잠깐,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가 쓴 인생에 관한 에세이 <마흔에게>,
혹은 70대 의사가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인생을 돌아보며 쓴 에세이 <혼자가 되었지만 잘 살아보겠습니다 / 니시다 데루오>와 비슷한 성격, 비슷한 목소리 톤이지만
나이와 인생 연륜으로 따지만 이 책의 저자가 짱이다.
남들보다 잘 살려고 아둥바둥 한 것도 아니고, 일을 통해 자신의 이상과 자아를 실현하려고 의사가 된 것도 아니었다. 그녀 하루하루 주어진 삶을 살아내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라 고백한다.
덤덤하게 사는 삶. 담백하게 사는 삶.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너는 너, 나는 나'의 삶을 사는 그녀의 태도가 70년 동안이나 같은 일을 매일 하도록 만든 비결이 아닐까.
나 자신에 대한 기대, 타인에 대한 기대로 인해 오히려 더 많이 좌절하고 실망하고 이를 거듭하다보면 우울해지기 십상이다. 그리고 일에 대해, 사람에 대해 집착하는 태도, 너무 잘 하려고하고 너무 잘 되려고 하다보면 나중에는 힘이 빠진다. 오래 가지 못한다.
90세라면 인생을 살아본 만큼 살아본 사람이다. 겪어볼 만큼 겪었고, 인간의 인생이라는 것에 대해 알만큼 아는 저자가 덤덤하지만 따뜻하게 인생이란 이런 거다... 일, 삶, 관계, 자아와 관련한 지혜를 들려주는 책이다.
어떻게든 남들보다 조금 더 앞서고 더 나아지기 위해 분주하고 여유 없이 살아가다 공허함이 느껴지거나 혹은 미래에 대한 염려로 불안한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꼭 추천해주고 싶다. 개인적으로 근래에 읽은 책 중에서는 최고였던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