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의 발견]소진된 젊음

시드니 루멧 감독의 ‘허공에의 질주(Running On Empty, 1988)’
10월의 마지막 날은 가을과 겨울이 마치 바톤 터치를 하듯 자리를 넘겨주는 날이다. 11월이 되면 우리는 그 해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비로소 체감한다. 10월의 마지막 날 유명을 달리한 한 젊은 스타가 있다. 70년대에 태어난 세대들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아름다운 청년의 사인은 마약 과다 복용이었다. 리버 피닉스가 출연한 많은 영화들이 모두 다 좋은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는 보는 사람의 시선을 끊임없이 끌어당기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미모라든가 재능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영화 속에서 대체적으로 과묵한 인물로 등장하는 그의 눈은 언제나 무언가를 호소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어둡고도 형형한 눈빛을 접하면 그 무언의 호소에 답해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상처와 비밀을 간직한 채 누군가와의 소통을 간절히 원하는 그 눈빛은 리버 피닉스를 어느 누구보다 특별한 배우로 만들어 주었다.
시드니 루멧 감독의 88년 작 ‘허공에의 질주’는 일관되게 사회적인 이슈를 영화화해 온 루멧의 수작 중 하나다. ‘허공에의 질주’의 원제인 ‘running on empty’의 원래 뜻은 ‘다 고갈되어 가는, 소진되어 가는’ 쯤으로 번역할 수 있다. 반전운동가인 부모와 함께 끊임없이 신분을 바꾸며 도피 생활을 하는 십대 소년 대니(리버 피닉스)는 피아노에 재능이 있다. 그러나 그의 재능과 사생활은 가족의 안위를 위해 희생되기 일쑤다. 관심도 없는 야구팀에 들고, 언제나 눈에 띠지 않는 구석자리에 앉아있는 대니는 새로 이사 온 마을에서 작은 변화를 겪는다. 한 소녀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루멧 감독은 이 영화에서 반전운동가의 열렬한 투쟁을 보여주는 대신 그들의 지리멸렬한 도피 생활을 통해 자연스럽게 부조리한 사회의 단면을 들춰낸다. 대의와 평범한 삶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면서도 결코 원칙을 저버리지 않는 주인공들의 모습 속에서 루멧은 진정한 인간의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리버 피닉스는 히피 생활을 했던 자신의 실제 과거와 공명하는 대니 역할에 기막힐 정도로 잘 어울린다. 그는 영화 속에서 피아노를 직접 연주하며, 영화 속 연인인 로나 역을 맡은 마사 플림튼과 실제로 연인이 되기도 했다. 이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는 대니의 어머니인 애니의 생일 파티 장면이다. 조개껍질 목걸이나 종이 악보 등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마음의 선물을 주고받은 대니의 가족들과 로나는 함께 춤을 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영화 속에서 언제나 위험과 긴장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유일한 망중한을 그린 이 장면은 역설적으로 소진되어 간다는 영화 제목의 의미를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비로소 독립하여 자신의 삶을 살게 된 대니와, 외로운 죽음의 길로 접어든 리버 피닉스의 고단한 삶의 대조적인 뉘앙스 때문일까.
최은영 영화평론가


 

출처 : http://www.naeilshot.co.kr/news/view.asp?num=2138&Sfield=&Sstr=&page=1&cate_news=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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