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페셜]바람이 분다 영화공간 속 바람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곧 낙엽이 날리겠지요. 가을은 가장먼저 코끝에 부딪히는 바람으로 찾아옵니다. 스쳐지나가는 바람에 가슴에 쌓였던 모래가 흩날리고, 움푹 파이기라도 한다면 알 수 없는 곳에서 나를 찾아온 이 바람이란 것이 새삼 신기하고 궁금해집니다. 한번 주위를 둘러보세요. 당신이 앉아있는, 서있는 그곳에도, 이미 어질러진 당신의 마음속에도, 바람이 불고 있답니다. 그리고 여기. 이 필름들 속에도 바람이 붑니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퐁네프의 연인들 Les Amants Du Pont-Neuf
화가 미셀은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 삶이 끝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첫사랑도 잃고, (끝나고) 시력도 잃었다.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그녀는 집을 나왔다. 알렉스는 거리의 부랑자다.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못 이루는 불면증 환자고 불 뿜고 구르는 곡예사다. 그들은 현재 수리 중(1989~1991)인 퐁네프다리에서 산다. 그리고 그들은 이내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알렉스는 미셀에게 편지를 쓴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일 아침 ‘하늘은 하얗다’라고 해줘. 그게 만일 나라면 난 ‘구름은 검다’라고 대답할 거야. 그러면 서로 사랑하는 지 알 수 있을 거야.” 알렉스가 미셀을 사랑한다는 것을 아는 또 다른 부랑자 한스는 ‘너에겐 그런 인생은 없다’라며 그에게 그만둘 것을 강요한다. 그러나 하늘은 하얗고, 구름은 검었다. 아무것도 없는 그들이었지만 퐁네프다리의 바람만은 항상 그들과 함께였다. 다리 위에 부는 강바람이 있었고, 다리 아래 물결 위에 부는 바람이 있었다. 바람은 강 위에 항상 다른 물결을 새겼고, 미셀이 알렉스를 모델로 그림을 그릴 때나, 춤 출 때나 언제나 그들과 함께했다. 그들에게 다리위의 바람은 달갑지 않은 손님이었지만 ‘파리 혁명 200주년 기념 축제’때는 달랐을 것이다. 하늘 위에서 터지는 불꽃을 음악 삼아 자유의 춤을 춘다. 그 순간, 그들보다 자유로운 이들이 어디에 또 있을까? 여름엔 잔잔하게, 겨울엔 세차게 불던 바람이 가을엔 쓸쓸했다. 미셀은 병을 고칠 방법을 찾았다는 소식에 다리를 떠났고 알렉스는 방화사건으로 감옥에 갔다. 그러나 그들은 현실에 속박당하지 않았다. 많은 것이 변해있었지만 3년 만에 재회한 그들은 여전히 그들의 방식대로 사랑을 한다. 바람과 물결에 온 몸을 맡긴 채.
바람이 데려다 준 곳은, 천국 이었습니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The wind will carry us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올리브 나무 사이로’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3부작으로 유명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보여주는 단순한 삶, 큰 감동은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베흐자드와 동료들은 백 살 먹은 할머니의 장례식 장면을 찍기 위해 테헤란에서도 450마일이나 떨어진,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마을 ‘시어다레(검은 계곡)’에 온다. 곧 임종이 임박하다는 소식과는 달리 2주가 지나도 장례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상사의 전화 독촉 때문에 느긋한 시골에서 혼자 스트레스를 받는다. 높은 곳에서만 통화가 가능하기에 전화가 올 때 마다 차를 끌고 언덕으로 올라가야 한다. 바람 솔솔 불어오는 그곳은 마을과는 또 다른 느긋한 천국. 덩치 큰 거북이가 있는 가하면 귀여운 말똥구리도 있다. 묘자리를 파고 있는 청년이 흙더미에 깔렸을 때, 전화를 하러왔던 베흐자드가 발견하고는 마을사람들에게 알린다. 자신의 자동차를 환자에게 빌려주고 의사선생님과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길. 농익은 곡식은 끝없이 펼쳐지고 바람은 그들을 마을까지 배웅한다.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의사할아버지의 말씀이 들려온다. ‘별로 할일이 없어. 하지만 내가 사람들한테는 필요 없더라도 자연을 바라보며 인생을 만끽한다네. 자연을 바라보는 게 주사놀이나 아무 일 안하는 것보다 낫거든’ 늙는 것보다 나쁜 병은 죽음이라는 할아버지의 말 때문에 순간 머리가 띵했다. 그의 말처럼 저승에 갔다 온 이가 없는데 어떻게 그곳이 좋다고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천국 뭐 있나. 바람 좋고, 인심 좋고, 공기 좋은 이곳이 우리의 파라다이스가 아닐는지.
언젠간 다시 만나리
글래디에이터 Gladiator
황량하고 야만적인 전쟁터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막시무스 장군의 소원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삶의 마지막이 얼마 안 남았음을 감지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왕은 아들처럼 아끼는 장군 막시무스에게 왕권을 계승하려 한다. 아버지와 아들처럼 친밀한 대화를 나누던 그 밤, 왕은 그에게 집에 대해서 말해보라 한다. ‘제 집은 투르질에 있는 언덕 위의 아담한 집입니다. 햇볕에 따뜻해진 핑크빛 벽돌, 낮엔 부엌과 정원에 허브향이 가득 차고 저녁엔 자스민 향이 납니다. 커다란 포플러가 문 사이로 보이고 무화과나무, 사과나무, 배나무가 있습니다. 흙은 제 아내의 머리카락처럼 검죠. 남쪽 언덕엔 포도나무가, 북쪽언 덕엔 올리브나무가 있습니다. 아들 녀석은 집 근처에서 야생 조랑말들과 놀곤합니다.’ 막시무스가 묘사하는 집의 모습이다. 당시, 그의 집 투르질은 추수가 한 창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광야에서 부는 바람은 평화롭기만 하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서 추수를 하며 지내리라 마음먹은 그를 기다리는 것은 죽어야만 가족을 볼 수 있다는 가혹한 운명뿐이었다. 구름은 비탄에 잠기고 나무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액션 블록버스터답지 않게 시린 장면 때문이었을까? 현란한 칼 솜씨를 선보이며 검투사의 용맹함을 드러내던 두 시간 남짓의 시간보다, 몇 장면되지 않지만 고향의 벼를 스치는 그의 손이, 가족을 향해가는 그의 뒷모습이 더 오래도록 남아버렸다. 비로소 가족과 재회한 그는 아마도 지금쯤 추수에 한창이겠지.
그 여린 소녀들은 어디로 갔을까?
고양이를 부탁해
쥐색 교복의 소녀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정재은 감독은 학교의 그늘에서 벗어나 세상이란 더 큰 황량함 아래 놓여진 소녀들을 따라간다. 교복을 벗은 친구들은 이젠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식한다. 하나는 정당가 말하면, 다른 하나는 그것을 이기로 치부한다. 누군가가 호기심어린 자유라 여기며 동경하면, 또 누군가는 그것이 멀지 않은 미래 같다며 불안에 떤다. 서로의 가치관 혹은 환경으로 인해 변치 않을 것 같았던 우정은 서서히 녹슬기 시작한다.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잊을 수 없는 신은 역시 바람에 흩날리는 월미도 풍경이 아닐까? “... 난 모든 것을 갖고 싶어. 히말라야 구름 위로. 우린 아직 널 사랑해.” 이 영화의 OST인 ‘별’의 ‘진정한 후렌치 후라이의 시대는 갔는가’는 치기어린 유년기의 고백 같아 달콤하다. 하지만 스크린 속 소녀들은 매섭게 부는 칼바람에 힘겹게 걸음을 옮길 뿐이다. 그들은 바람을 피해 서울로 향한다. 무미건조한 물상들을 지나치며 도착한 서울에서 친구들은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심지어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해 우왕좌왕하기도 한다. 결국은 추억이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작별을 고한다. 현재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떳떳하게 말하지도 못한 채. 이렇듯 ‘고양이를 부탁해’에서의 바람은 살을 에는 추위보다 더 큰 상처를 서로에게 안겨준다. 하지만 스무 살 소녀들이 세상을 배우며 성장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 영화는 매서운 바람 안에서도 충분히 사랑스럽다. 시린 상처에 부드러운 새살이 돋아나길 기대하는 소녀들은 지금 쯤 어디에 있는 걸까?
행복은 바람타고 멀리, 멀리
아이 엠 샘 I Am Sam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틀에 여과된 것을 진실 내지는 사실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진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조차 모호하면서 타인을 단정 짓는 사람들이 있다. 7살 지능을 가진 아버지에게는 딸을 키울 능력이 없다면서 샘에게서 루시를 빼앗아가려는 사람들. 그들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루시는 샘과, 샘은 루시와 함께 있을 때 가장 반짝반짝 빛난다. 그들이 서로에게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샘이 세상이 요구하는 아버지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고 해도 전혀 상관없었다.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그저 나란히, 지금처럼만 행복하게, 영원히 함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에게 단순한 ‘존재’ 이상의 것을 강요했다.
아버지는 딸을 품에 안고 그네를 탄다. 바람결에 머리칼이 가볍게 흩날린다. 바람은 그들을 포근하게 감싸준다. 그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공기는 한없이 따뜻하고 투명하다. 그들의 행복은 민들레 홀씨처럼 우리의 가슴에 날아와 조용히 뿌리박힌다. 행복으로 고동치는 그들의 웃음소리가 점점 커져간다. 훗날 딸을 되찾기 위해 증언대에 선 아버지는 그 순간을 떠올리며 힘을 얻는다. 딸을 꼭 껴안은 채 바람을 가르며 그네를 타던 바로 그 장면, 그 순간은 샘에게 세상을 이기는 용기가 된다.
“Please, let them be.” 그들의 행복을 내 마음까지 실어다준 바람에게 소리치고 싶다. 그저 살고 싶을 뿐인데도 세상은 너무 치열하다고.
가을, 바람의 나들목에서
스모크 Smoke
가을바람이 분다. ‘후’ 하고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 바람을 타고 뿌옇게 번진다. 그러나 불투명한 공기도, 둔탁한 화면도 잠시 뿐이다. 연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영화 ‘스모크’는 이런 담배 연기가 바로 우리의 인생이라고 말한다. 지루하리만큼 반복되는 일상, 아무런 사건사고 없는 하루하루는 삶의 긴장감을 상쇄하지만 그 모든 것을 담담하게 지켜내야 한다고 말이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무려 13년 동안이나 카메라에 담아낸 담배 가게 주인 오기는 말한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고 있고, 햇볕은 매일 다른 각도로 지구를 비추고 있지.” 그가 찍은 4,000여 장의 사진은 얼핏 모두 같아 보이지만 실제, 똑같은 사진은 하나도 없다. 마치 우리 삶이 매일 매일이 같은 날 같아도 정말 똑같은 날은 하나도 없듯이. 오기는 폴에게 왜 자신이 매일 같은 사진을 찍어야만했는지를 설명한다.
오래 전 어느 크리스마스 날의 이야기였다. 오기의 이야기가 끝나자 폴은 담배를 꺼내 문다. 그 때 폴의 머리를 채운 갖가지 상념들과 어지럽게 동요한 마음은 연기를 따라 공중에 휘날린다. 오기도 담배를 꺼내 문다. “비밀을 말 못할 사이라면 친구가 아니잖아”라는 오기의 말에 폴은 “맞아. 인생의 가치가 없어지지” 라고 화답한다. 둘은 마주하며 웃는다. 정말, 인생 뭐 있나. ‘청춘 스케치’에서 에단 호크가 말하지 않았는가.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담배 몇 개피와 커피, 너와 나, 그리고 5달러뿐이라고. 공허한 마음을 품은 나에게도, 그렇게, 여전히, 가을바람은 분다.
멀어지는 희망
남국재견 南國再見, 南國
늙은 양아치 카오, 그의 똘마니 폭탄머리와 연인 파타슈.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귀향하는 사람치곤 설렘도 없는 듯하다. 카메라는 그들을 길게 응시하고, 장면을 바꾸어 그들이 타고 있는 기차가 나아가는 방향 반대편으로 밑도 끝도 없이 멀어져간다. 그들은 앞으로 영영 고향을 떠날 수 없을 것 같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그들은 고향에 돌아왔다. 즉, 과거를 향하여 온 것이다. 모두가 현재, 더 나아가 미래를 말하는 시점에서 ‘한탕 해먹으려고’ 고향을 찾은 그들을 사람들이 반길 리 없다. 꼬여만 가는 그들의 사정은 여름의 분위기와 맞물려 더욱 답답하게만 보인다. 방 안에서는 어둠, 바깥에 나오면 내리쬐는 햇볕뿐. 그런 ‘남국재견’에서도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은 존재한다. 세 사람이 오토바이를 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는 장면인데, 빠른 속도감을 갖고 아주 긴 호흡으로 펼쳐진다. 빠르게 앞으로 나가는 그들에게 불어오는 역풍은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영화의 처음에 카메라가 그들(이 타고 있던 기차) 곁에서 멀어졌던 것처럼 이번에도 카메라는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그들을 응시하며 계속 뒷걸음질한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 점점 짙어지는 파국의 그림자는 차라리 당연하게 여겨진다. 이윽고 카오의 차는 논에 ‘처절하게’ 처박힌다. 2분이 지나도 차에서는 아무도 기어 나오지 않는다. ‘남국재견’은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동시대 대만의 젊은이들에게 던지는 탄식의 목소리다.
대학내일 문화팀


출처 : http://www.naeilshot.co.kr/news/view.asp?num=2101&Sfield=&Sstr=&page=1&cate_news=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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