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의 발견]In the mood for love

데이비드 린 감독의 ‘밀회 (Brief Encounter, 1945)’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에서 차우(양조위)와 리춘(장만옥)의 로맨스를 더욱 아슬아슬하게 만들어버리는 건 두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을 항상 볼 수밖에 없는 이웃들의 존재다. 차우가 몸이 안 좋다는 소리에 죽을 만든 리춘은 그를 위한 음식이라는 말을 할 수 없어 이웃들 모두가 먹을 만큼의 양을 만든다. 두 사람은 각자 부인과 남편이 있는 몸.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그들의 파트너는 불륜 관계에 있는 상태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한다. 그들의 애정은 그저 조심스럽게 끓이는 죽 한 그릇, 스테이크 옆에 무심히 덜어진 노란 겨자, 스쳐 지나면서 던지는 애매한 미소로 표현될 뿐이다. 왕가위는 두 사람이 각자 짊어져야 할 인생의 무게를 로맨스로 포장하지 않는다. 불행하게도 그들의 로맨스는 각자의 배우자가 불륜에 빠져 있음을 알게 된 뼈아픈 순간들이 지난 후 찾아온다. 그러니 그들이 어떻게 감히 쉽게 빠져들 수 있겠는가. 이미 배우자의 배신으로 인한 아픔을 맛본 그들이 말이다.
데이비드 린 감독의 ‘밀회’에는 짧은 시간 사랑을 불태우지만 그 불꽃으로 자신을 소진해버리는 것을 선택하지 못하는, 지극히 평범한 중년의 두 남녀가 등장한다. 평범한 가정주부 로라는 목요일마다 시내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탄다. 그녀는 우연히 목요일마다 그녀와 반대 방향의 기차를 타고 외래 진료를 나가는 의사 알렉을 만난다. 처음에는 그저 우연이었던 것이, 사랑의 감정은 그들이 채 알지 못하는 사이 마치 폭풍처럼 두 사람의 마음을 휩쓸어버린다. 그러나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러니까 황홀한 고백이 두 사람 사이를 오간 그 순간부터 그들은 앞으로 남은 것은 오로지 이별뿐임을 느낀다. 마침내 두 사람은 언제나처럼 목요일 오후, 마지막 만남을 갖는다.
‘밀회’의 독특한 점은 이 영화가 두 사람의 이별로부터 시작한다는 점이다. 관객들은 무겁게 서로에게 다가앉은 두 남녀가 왜 침묵만을 지키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로라의 친구가 갑자기 등장해 수다스럽게 합석할 때, 둘의 당황한 눈빛으로 인해 상황을 알아챌 뿐이다. 눈치 없는 친구의 영원히 계속될 듯한 수다를 앞에 두고 마침내 남자의 기차가 도착한다. 남자는 아무 말도 못한 채 여자의 어깨를 지긋이 누르고는 역 바깥으로 나간다. 남자가 떠난 후 여자와 그녀의 친구는 함께 기차에 타서 마주보고 앉아있다. 쉴 새 없는 친구의 수다가 여자의 귀에 마치 화살처럼 고통스럽게 꽂힌다. 그녀는 속으로 뇌까린다. ‘아아, 저 여자가 죽어버렸으면…’ 데이비드 린은 주변인에 의해 훼방된 연인의 이별을 첫 장면으로 삼으면서 평범한 두 남녀의 사랑의 기승전결을 무서우리만치 정확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이는 그가 사랑만으로 살기엔 너무나도 복잡한 것이 인생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최은영 영화평론가


 

출처 : http://www.naeilshot.co.kr/news/view.asp?num=2071&Sfield=&Sstr=&page=1&cate_news=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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