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페셜]스물 하고도 하나 둘 셋 영화제에 가다

제7회 서울영화제
스무 살의 선택. 이제 너무 식상한 말이 됐나요. 그렇지만 10년짜리 사춘기 속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여기 30개국 140편 안에 던져진 스무 살이 있습니다. 지난 8일부터 17일까지 펼쳐졌던 서울영화제에서 이들이 택한 것은 성장, 사랑, 미래, 방황, 불안…. 또 무엇이 있을까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기후 Climates
‘눈빛만 봐도 통해요’라고 했던가. 오래된 사이 혹은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것은 이별의 순간도 마찬가지다. 첫 장면에서 바하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유적지에서 사진을 찍는 이사를 보며 남몰래 눈물을 흘린다. 고통과 슬픔의 눈물이다. ‘사랑’은 느끼는 것으론 만족하지 못하고 물질로, 말로 재차 확인해도 반신반의하지만 ‘이별’은 사소한 예감의 가설조차 사실이라고 믿어버린다. 그런데 문제는 그 가설이 틀릴 때가 없다는 것. 이사가 바하에게 이별을 고하는 순간도 다소 난데없이 일어난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었다. 이사가 변하고 있었다는 걸. 영화는 시적인 풍광이 인물들의 감정을 실어 전달해 준다. 그것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다.
문제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달렸다
잃어버린 시간 Sheng Si Jie
사랑은 롤러코스터다. 혹독한 신고식을 치룬 후엔 레일이 익숙해지고 그러다 보면 처음의 강렬함은 느낄 수 없다. 타성이 붙는 것은 다행일까 불행일까. 인니는 대학 입학식 날 트럭운전사 무위를 만난다. 같은 모자를 쓰고 있던 둘은 외로움도 비슷했다.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무위를 사랑하게 된 인니는 무위에게 부인과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마음을 멈출 수가 없다. 사랑도 죄라면 죄일까? 희생과 노동은 체벌처럼 따라오고 아이를 빼앗긴 후에야 진실을 알게 된다. 무위의 사랑은 처음부터 거짓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그녀의 ‘첫’사랑은 끝이 났다. 그녀처럼 잔인한 첫 경험을 한 사람에게 타성이 붙는 것은 다행이다. 사랑이 끝남과 동시에 상처도 끝낼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을 사랑한다면 스스로 상처주기를 지금 당장 끝내자. 사랑은 이미 끝났다.
예수와 다른 삶, 당신의 선택은
예수의 삶 The Life of Jesus
사방은 가로막혀 사는 게 지루하기 짝이 없다, 한 가지 믿을 구석이 있어서 살아갈 만하다. 하지만 그것마저 자신에게서 돌아앉게 된다면 어떨까. 브루노 뒤몽 감독의 ‘예수의 삶’은 그 상황에서 이성을 잃고 방황하는 젊은이에게 파멸을 안겨준다. 일도 하지 않고 오토바이나 타면서 그저 친구와 지루하게 시간만 죽이는 프레디에게는 마리라는 여자친구가 유일한 희망이다. 하지만 웬 아랍인이 그녀에게 접근한다. 그때부터 프레디는 분노를 가리지 않고 드러낸다. 뚱뚱한 소녀를 추행하고, 아랍인이 싫다며 멸시하고 심지어 그를 처참하게 죽인다. 오토바이를 타는 프레디를 가까이 바라보다가 점점 뒤로 물러서서 그를 세상에서 어쩔 수 없는 점 하나로 만들어버리는 영화의 시선은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를 차갑게 버려둘 것인지, 따뜻하게 끌어안을 것인지.
낯선이가 가져 온 익숙한 것들
방문자
나이를 먹을수록 참다운 인간관계를 찾기는 어렵게만 느껴진다. 자신을 드러낼수록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듯한 기분을 떨치기 어렵다. 신동일 감독의 ‘방문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가능성에 대해서 따뜻한 시선을 던진다. 대학 시간강사 호준은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 새로 이사 온 집에서 목욕을 하다가 욕실에서 갇혀버린 호준은 죽을 위기에 처하는데, 방문 전도하던 계상은 호준의 집을 지나다 ‘우연히’ 그를 구출한다. 세상을 불신으로써 적대시하는 호준과 믿음으로써 삶을 긍정하는 계상은 상극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서로의 부족한 면을 이해하면서 강한 유대를 만들어간다. ‘방문자’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희망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이나 양심적 병역거부 같은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한 사려 깊은 시선도 담고 있어 더욱 반갑다.
당신의 가족, 괜찮아요?
성스러운 가족 The Sacred Family
이런 류의 제목이 늘 그러하듯, ‘성스러운 가족’ 역시 역설법의 원칙에 매우 충실한 영화다. 한 중산층 가족의 허위의식을 꼬집기 위해 그들은 반대로 ‘성스러운 가족’이 되었다. 성공했지만 늘 자기중심적인 아버지와 신경질적인 어머니, 아버지에게 억압당하는 아들. 이들의 관계는 가족이라는 형식적인 울타리 안에서 불안하게 흔들린다. 게다가 어김없이 등장하는 팜므 파탈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더욱 격렬하게 만들고, 그들의 갈등은 극단을 향해 위태롭게 치닫는다. 자, 이쯤에서 영화는 우리에게 한 가지 의문을 던진다. 당신의 ‘행복한 가족’은 역설법의 원칙에 잘 포장되어있는가, 아니면 진실인가. 진심어린 소통이 부재한 가족은 결국 위선일 뿐이다. 부모에게서 벗어나 독립된 자아를 형성해야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는 이십 대의 우리들에게, 이 영화는 진심어린 충고를 하고 있다. 세상에 맞서 싸우다 처참하게 부서지고 깨진 뒤에도 편히 기댈 곳이 없다면 우리 삶이 너무 초라해지지 않겠느냐고.
12월이 끝난 후에 남은 것들
12월이 끝나다 December Ends
각자에게는 중요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존재한다. 그 시점을 기준으로 삶은 더욱 강렬한 의미를 되찾는다. 물론 그 과정에는 수많은 눈물과 어려운 감정들이 내재되어있어 우리의 삶을 더욱 굴곡지게 만든다. 하지만 혹독한 추위 뒤에 어김없이 봄이 오듯, 어려운 시간을 이겨낸 후엔 반드시 새 살이 돋는다. 흔히 우린 그것을 ‘성장통’이라 부른다. ‘12월이 끝나다’의 크리스의 삶에서 가장 강력한 터닝 포인트는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아내를 잃었다는 슬픔에 스스로를 서서히 파괴시키는 아버지를 지켜보던 크리스는 한 줌의 희망조차도 고스란히 잃어버린다. 결국 크리스는 ‘마약’이라는 새로운 세계, 혹은 혹독한 겨울 속으로 뛰어든다. 크리스는 그곳에서 온 맘과 몸이 시리도록 아픈 경험을 한다. 잃어버리지 말아야 했던 것들을 모두 잃었고, 지켜내야 했던 것들을 모조리 잊었다. 그에게 12월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그 해 겨울, 그는 ‘살아있음에 대한 생생한 열망’을 되찾았다. 자, 봐라. 결국 신은 공평하지 않은가.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말라 노체 Mala Noche
리버 피닉스,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아이다호’를 출발점으로 ‘굿 윌 헌팅’ ‘엘리펀트’를 지나 얼마 전 ‘라스트 데이즈’로 돌아온 구스 반 산트 감독은 시간이 지나도 늙을 것 같지 않은 작가 중 한명이다. 그의 장편 데뷔작 ‘말라 노체’를 만나는 것은 그리하여 가슴 뛰는 설렘이고, 이 작품이 지독히도 쓸쓸했던 ‘아이다호’의 모태라니 가슴 요동치는 갈망이기까지 하다. 감독은 이 갈망을 알아챈 듯 거친 흑백의 화면에 불안한 청년들의 눈빛을 교차 편집하고 ‘황소와 섹스를 하면 뿔을 얻게 된다’는 한 문구를 흘려 넣는다. ‘나쁜 밤 (bad night)’이라는 뜻의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포틀랜드의 작가 월트 커티스의 자전적인 단편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것으로, 멕시코계 불법 이민자 청년 쟈니를 향한 젊은 동성애자 월트의 끊임없는 구애와 돌봄이 펼쳐진다. 월트가 돈으로 사려했던 가난한 쟈니의 하룻밤과, 또 다른 방식으로 월트와 사랑을 나눈 쟈니의 친구가 출입국관리사무소 관계자가 쏜 총에 힘겹게 살아낸 삶을 끝내야 했던 그날 밤이 겹쳐지고, 과연 무엇이 나쁜 밤인가에 대한 감독 특유의 반어법이 한 가지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정말 (우리의 삶을) 사랑했을까’
돌아가라, 당신이 있던 그 곳으로
블러쉬 Blush
이번 서울영화제 ‘이미지독’ 섹션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예술을 필름에 담아낸 작품들이 상영됐다. 예술에 대한 기록이자 그 기록을 뛰어넘는 영화, 또 영화와는 다른 영화적 풍경인 필름과의 만남은 새로웠다. 그 중 최근 유럽에서 상영된 최고의 댄스필름을 모았다는 소섹션 ‘풍경의 안과 밖’ 속에 ‘댄스 스크린 2005 베스트 카메라’에 노미네이트 됐던 벨기에의 대표적인 현대무용가 빔 반데케이버스의 ‘블러쉬’가 있었으니, 제목의 뜻대로 얼굴을 붉힐만한 작품이다. 무용수들은 언어 대신 몸을 사용해 완벽한 내러티브를 완성한다. 한 자리에 모인 친구들은 사랑을 논하고, 한 남자는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났고, 그 아내는 다른 남자를 유혹하는 게임에 돌입하지만 그 남자는 이 신물나는 상황에 치를 떨며 옷을 모두 벗어버린 채 숲으로, 호수로, 동굴로, 바다로 도망을 간다. 무용수들은 서로 어긋난 상대를 갈구하며 야수처럼 바닥을 기거나 고래처럼 호수를 헤엄치고, 자신의 머리로 상대의 머리를 무참히 들이받는 집단무를 선보인다. 여기에 데이비드 유진 에드워즈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가세하면 사랑 끝 가슴 언저리에 매달려 있던 욕망의 말간 얼굴이 당신을 돌아보니, 돌아가라. 당신이 있던 그 곳으로.
대학내일 문화팀

출처 : http://www.naeilshot.co.kr/news/view.asp?num=2075&Sfield=&Sstr=&page=1&cate_news=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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