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의 발견]기억의 존재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솔라리스(Solyaris, 1972)
일본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죽은 자와의 조우를 다루고 있다. 초등학생 아들과 남편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아내가 1년 후 불현듯다시 돌아온다. 이미 죽은 것이 확실한 아내를 자연스럽게 다시 맞아들이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착한 유령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녀는 저승에서 왔지만 이승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남편의 아내이자 아들의 엄마이며, 그녀의 부재로 외로웠던 부자는 그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더군다나 그가 환상도 아니고 유령도 아닌, 그러나 과거에 알았던 그 사람도 아닌 다른 존재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한 사람의 기억이 그 사람과는 전혀 상관없는 또 다른 실재가 되어 눈 앞에 나타난다면, 그 친밀하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낯선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타르코프스키의 1972년작 ‘솔라리스’는 인간의 기억을 형상화하여 물질적인 존재로 만드는 기이한 능력을 지닌 혹성 솔라리스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철학적인 SF 영화다. 심리학자인 크리스 켈빈은 솔라리스 탐사 우주선에 동승한 후 과학자들로부터 솔라리스의 능력에 관해 듣게 된다. 혹성 솔라리스에 접근하면 그 접근자와 혹성이 상호 정신 작용을 일으켜 접근자와 기억 속의 과거를 물질화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물질화된 기억은 독립된 대상이 되어 실제로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켈빈은 우주선에서 10년 전 자살한 아내 하리를 다시 만나게 된다. 솔라리스와 켈빈의 감응으로 생겨난 하리는 여전히 켈빈을 사랑하지만,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 켈빈은 그녀를 없애려 시도하지만, 하나가 사라지면 또 하나가 다시 나타난다. 마침내 그녀를 제거하기를 포기한 켈빈 앞에서 하리는 불안하게 속삭인다. "나도 내가 하리가 아닌 걸 알아요. 그렇다면 난 누구죠? 난 어디에서 왔나요?" 타르코프스키는 ‘솔라리스’에서 기억의 물질화라는 소재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켈빈의 고통을 목도할 수 없었던 하리는 다른 과학자에게 자신을 소멸시켜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하리는 사라지지만, 켈빈은 결국 자신의 기억이 만들어낸 또 다른 실제 속으로 들어간다. 켈빈이 만들어낸 또 다른 실재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유년 시절의 고향이다. 타르코프스키는 기억의 물질성과 마찬가지로 이미지의 존재론을 믿는다. 영화의 이미지가 실재를 모방한 가짜에 불과하다는 영화에 대한 철학적 비난에 타르코프스키는 반기를 든다. 한 이미지가 실재를 투사하는 순간, 이미지는 이미 그 실재와 독립된 또 다른 실재이며, 그 자체로서 의미를 지닌다. 그리하여, 실재를 모방한 영화는 환상이 아닌 그 자체로서의 존재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것이 ‘솔라리스’가 SF의 화법을 빌려 이야기하는 기억-이미지의 존재론이다.
최은영 영화평론가


출처 : http://www.naeilshot.co.kr/news/view.asp?num=2062&Sfield=&Sstr=&page=1&cate_news=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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