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해석이 되나요]말로는 할 수 없는 소통

‘각설탕’의 시은과 천둥이

말없이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종종 무한한 감동을 준다. 언어가 가지는 절대적 의의 때문에 많은 부분 언어에 의존하는 인간에게 말, 글은 절실하다. 하지만 그 절실함도 우리에게 소통의 완벽함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내가 전하는 말들이 그에게, 그녀에게 어떻게 전해질지 우리에게는 알 방법이 없다. 막막하지 않은가. 그래서 소통에는 끝이 없다. 길고 긴 터널처럼 가도가도 어둠 뿐.
좌절은 또 다른 희망을 낳는다. 많은 영화 속에서 절망 속 주인공이 등장하고 마지막은 늘 환한 희망으로 끝이 난다.
영화 속 이야기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이야기는 늘 환영이다. ‘각설탕’에서 주인공 천둥이와 소통하는 시은은 엄마의 빈자리를 메우려는 듯 동생처럼 천둥이를 키우지만 둘은 결국 헤어지고 만다. ‘마음 속 친구’였던 천둥이를 잃은 뒤 시은은 기수로서의 삶을 선택하지만 마음 한쪽은 늘 슬픔이다. 그러던 시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업소용 선전 말로 전락한 천둥이. 다박다박 도시를 걸어 시은 앞에 멈춰선 천둥이, 그런 천둥이를 한 눈에 알아본 눈물 고인 시은. 두 존재 사이에서 말없는, 침묵만으로 소통하는 따뜻한 시간이 흐른다. (아마도 한국영화 사상 가장 아름다운 사람과 동물의 재회씬일 것이다.)
사랑은 표현하는 것이라지만, 때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그저 인정하고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사랑이 될 때가 있다. 그것은 비단 짐승이라서가 아니다. 천둥이와 시은의 공감은 엄마를 잃었다는 상실감, 달리고 싶다는 희망 등으로 얽혀있다.
말을 할 수 없다는 장벽 따윈 상관없다. 영혼이 있으면 모두 통할 수 있다. 말로 할 수 없는 무수한 감정들이 두 존재를 오고 간다. 그런 소통감이야 말로 진짜 사랑을 느끼는 순간이다. 나와 다른 존재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 한 곳을 바라보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언젠가 읽었던 구절처럼 ‘내가 확장되는 경험’을 통해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되는, 말로 할 수 없는 소통이 사랑을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게 하는 힘이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터널을 가지고 있고, 그 터널에 들어서는 사람이 모두 밝은 빛이 감도는 마음 속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터널을 지나온 시간 만큼, 터널의 어둠과 기대되는 빛의 기억 만큼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 그 순간 우리는 혼자가 아니니까.

유희정 프리랜서 elegys@empal.com


출처 : http://www.naeilshot.co.kr/news/view.asp?num=2063&Sfield=&Sstr=&page=1&cate_news=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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