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내일 창간 7주년 맞이 문화팀 좌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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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내일 문화팀의 전신은 대학내일 영화팀이었다. 이것은 대학생 문화 한 가운데 영화가 차지하고 있는 역사와 비중을 말해주는 사실이기도 하다. 대학내일 창간 7주년 시네스페셜은 대학생과 영화의 관계를 짚어보고, 그것을 반영해야 할 대학내일 영화면에 관해 함께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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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대학생에게 ‘영화란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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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상품도 좋고 베이비시터도 좋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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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내일 대학생에게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여기 모인 참가자들에게 영화가 무엇인가’로 시작하면 좋겠다. 아름 가족들이 모두 영화를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영화와 친해졌다. 결정적으로 중학교 때 영화를 찍으면서 빠져들었다. 대학에 와서 실질적인 활동을 하면서는 냉혹한 현실 앞에 오히려 좌절을 많이 했다. 영화가 좋았던 만큼 힘든 일도 많았다. 한발 물러나 돌이켜봤을 때 한가지 얻은 것은, 어떤 대학생들에게는 영화가 소비상품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정말 목숨을 거는 일일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 삶의 일부라는 것이다. 영화가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중요하다. 영엽 그 말이 맞다. 나 같은 경우는 소비의 형태로 영화를 보다가 전부로 넘어간 케이스다. 상당히 위험할 수 있는데, 대학 때 와서 ‘탁’ 눈이 뜨였다. 고등학교 때는 영화를 정말 안 봤다. 그냥 논술학원 선생님이 보라는 것 보고, 중학교 말에 유행하던 ‘타이타닉’을 보던 정도였다. 결정적인 터닝포인트는 왕가위였다. ‘아비정전’ ‘동사서독’ ‘화양연화’ 세 편이 충격적이었다. ‘영화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를 깨달았다. 한 순간도 졸지 않으면서 봤던 그때부터 영화를 자주 보게 됐다. 영화를 많이 접할수록, 영화를 좋아하게 되는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 같다. 나는 영화를 현실의 도피처로 많이 사용하기도 했다. 답답하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무조건 영화관에 갔다. 혼자 영화를 보고나면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고, 자연스럽게 감정들이 해소됐다. 아름 동아리를 하면서 영화에 미친 사람들끼리 모여서 워크숍도 하고 세미나도 했는데, 정말 영화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러면서, 영화가 하나의 지식이 되고, 엘리트주의의 기반이 되는 것 같다는 것도 느낀다. 이건 아니지 않나. 으스될 수 있는 잣대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존심도 강하다. 영화와 맺는 그 관계를 넘어서야 한다. 관망할 수 있는 단계가 영화와 사귈 수 있는 가장 좋은 상태인 것 같다. 영엽 예전에 영화를 본다는 것은 타인과 구별이 되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어둠의 세계인 불법 다운로드 시대가 열리고 천만 관객시대가 열렸다. ‘괴물’이 그렇지 않나. 누구나 영화관을 쉽게 찾을 수 있는 환경에서 영화가 내는 목소리나 언론의 호도, 다수의 선택을 대중이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름 그것은 마케팅에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영화를 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어떻게 잘 포장할 것인가를 배우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약간의 갈등이 있다. 극장을 잡고, 언론홍보를 하는 문제들. 재은 내게 영화는 베이비시터였다. 엄마가 나를 소홀하게 키우셨다는 얘기가 아니라 (웃음) 영화를 워낙 좋아해서다. 비디오를 처음 장만했던 그때 처음 접한 영화가 ‘터미네이터’였는데 그 후 잊지 못할 장면들이 머리에 남아버렸다. 그렇게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영화였다’가 돼버렸다. 어렸을 때는 어른들 영화 이해 안가도 그냥 봤다. 사랑도 해보기 전에 영화를 통해 그 감정을 먼저 경험했고, 되도 않는 사랑학 이론부터 만들어 갔다. 대학생들에게 영화란 무엇이냐 말한다면, 많이 접하는 것은 사실이나 많은 이들이 영화와 애착을 형성하고 있는 것 같진 않다. 나처럼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별로 없었다. 같이 나누는 얘기가 “그 영화 재밌어?”다. 영화는 ‘재밌어?’라는 한 단어로 오간다. 재미있거나 재미없거나, 대학생들에게 영화란 그런 것이 아닐까. 영엽 나는 차단된 환경에 있다가 갑자기 눈을 뜬 경우인데, ‘재미있다’고 말하고 향유하는 주변 사람들이 부정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라는 존재 자체가 시대가 변하면서 그러한 의미로 변하지 않았나. 아름 ‘재미있다’ 는 느낌, 감상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 가지, 그런 시각적 잣대가 ‘우리가 아직 영화와 괴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영상세대’라고 불리는 우리지만 아직도 자연스럽게 영화를 받아들이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가장 기본적으로 던져야 하는 것이 이런 질문이 아닐까. ‘우리가 집 모니터로 보는 것도 영화인가’ 흔히 이런 얘기들 하지 않나. 영화의 필수조건은 관람료를 내는 관람객이 있어야 하고, 극장 스크린에서 상영이 돼야 하고, 등등등. 어려운 질문이다. 어떤 이들은 제한된 공간에서 이뤄지는 것을 영화라 하겠지만, 또 어떤 이들은 매체가 무엇이든 영상을 보고 소통을 하면 그것이 영화가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대학내일 80학번대 선배들은 사회변혁에 여념이 없으셨고, 90학번대 선배들은 모든 것이 다 지나간 후 그 그림자에서 정서적으로 방황하는 시기를 거치시기도 했다. 그때 등장한 것이 PC통신, 영화, 왕가위였고, ‘영상세대’라는 개념도 90학번 선배들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00학번대인 우리는 ‘영상세대’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희연 자의식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되는 거다. ‘우리가 영상세대니까 영화를 논해야한다’는 생각은 사실 좀 우스운 거다. 내가 영화, 영상에 노출 돼있고 가깝고 익숙하되, ‘나는 영상세대’라는 자의식을 갖고 있지는 않다. 어떤 세대라는 개념은 그냥 개념이다. 시간 위에서 끊임없이 진행되는 과정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는 무엇, 이렇게 규정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냥 환경의 문제다. 아름 맞다.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인 개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규정지으려는 시도가 끊이질 않는 거다. 대학내일 사실 예술영화 붐도 90학번대 선배들 때의 얘기다. 타르코프스키 감독 작품을 비롯해 유럽영화가 들어온 것이 90년대 중후반이었다. 굳이 우리를 표현하자면 ‘커뮤니티 세대’가 아닐까 싶다. 영상을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뭔가를 창작해서 표현하고 소통하지 않나. 동명 영화는 세상을 배우는 창 같은 것이다. 일상은 어떻게 해 봐야 어차피 일상이다. 조금 더 다이나믹한 삶, 격양된 감정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하는 거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다가 영화로 옮겨온 것 같다. 처음 시작이 예술에 대한 동경이었기 때문에 ‘그래도 뭔가 조금 알고 봐야한다’는 개인적인 당위가 있다. 대학생들에게 영화는 소비 그 이상은 아닌 것 같아 위기인 것도 같다. 더 느낄게 있을 수 있는 게 있는데 뭔가 조금 어려운 것도 봐야하지 않나 싶은 아쉬움이 있다. 아람 나는 알면 알수록 영화 바깥이 보이던데. 영화에 대한 공부가 오히려 감상을 방해하는 것 같다. 그래서 공부란 것도 필요한 사람들에겐 필요하고, 아닌 사람들은 아니고, 강요돼야 할 것은 아니다. 동명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려운 것 보는 사람도, 어려운 것을 만드는 사람도, 서로의 영역과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태용 전공자 입장에서 영화는 막연한 경쟁시장이다. 국내 ‘청소년 영화제’라는 트랜드를 가진 영화제만 80여개가 있고, 사실 이 모든 영화제가 영상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대학으로 가는 중간책 정도인 것도 있어 문제다. 한 학교 영화과에서 1년에 만들어지는 영화만 50편에서 100편에 이른다. 그 영화들의 위치가 모호한데, 청소년 영화와 일반 독립영화 그 사이다. 전공자들은 찍으면서 작품이 ‘과제물에 그쳐야만 하는 것인가’ 많이 고민한다. 대학내일 영화관련학과가 급작스럽게 늘고, 전공자들이 많아지는 반면 그들을 수용할 곳은 턱없이 부족하지 않나. 졸업작품도 그렇지만 사회진출을 위해 어렵게 기회를 잡고, 그 기회를 잃지 않기 위해 식음을 전폐하고 작업에 매달리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태용 연극영화과가 많아지니까 정부가 2000년 이후로 아예 연극영화과라는 이름을 쓰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그 이후에 만들어진 과들은 우리학교처럼 영화예술 아니면 연기예술 등이다. 연출전공이면 그 안에 감독이 되려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광고 등 다양한 영상을 다루는 사람들이 있다. 영상시장이 대중화되고 스펙트럼이 다양해진 것이 사실이다. 동네 꼬마들도 카메라로 영상을 찍는 시대 아닌가. 아름 동아리 선배들보면 먹고사는 문제, 현실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선배들이 많다. 비전공자니까 영상원이나 영화아카데미를 주로 생각하는데, 그 방법을 택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태용 영화과를 졸업해도 영상원이나 아카데미를 거쳐야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영화과의 정체성이 많이 사라진 것이 사실이다. 영화과 나와 봐야 졸업작품 따는 것이 전부니 현실을 생각하면 어려운 점이 많다. 나는 집이 부산인데, 부산국제영화제에 영향을 받아 영화를 시작하게 됐다. 영화가 참 ‘아름다운 고집’이란 생각을 했다. 영화사 자체도 그렇고 하는 사람들도 그렇고 참 고집스런 문화인 것 같다. 희연 나는 장이모우의 초기작 두 편 때문에 영화를 좋아하게 됐다. 그 영화들을 자막 없이 보고 싶어 중문과에 입학했을 정도였으니까. 그것이 카타르시스일 수도 있겠지만 동일선상에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아주 강한 떨림이고, 울림이고. 대학생들 다수에게는 문화상품인 것 같고 소수에게는 아주 중요한 무엇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계속 나온 얘기지만 그건 다 개인의 취향에 따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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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아타까운 몇 가지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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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내일 영화계 이슈에 대한 의견들도 궁금하다. 크게 ‘괴물’흥행이 있고, 이와 맞물려 김기덕 감독 발언이 크게 확대됐었다.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의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고, 이는 곧 작은영화와 큰영화에 대한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재은 영화를 만든다는 목적자체가 관객을 전제한다. 어떤 리액션을 원하고 소통하고 싶은거다. 그래서 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의미가 없는 것이고. 요리를 만들었는데 먹어주는 사람이 없을 때처럼 정말 처절하고 비참한 느낌이 아닐까. 김기덕 감독의 발언도 여기서 시작된 것이고 그래서 나는 그가 망언을 했다고 생각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참고로 나는 김기덕 감독을 좋아하지 않는다. ‘시간’이라는 작품이 준 호기심 때문에 그날 기자간담회 자리에 참석했었는데, 사실 김기덕 감독은 ‘괴물’을 언급했기는 하지만 ‘괴물’에 대한 얘기를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심정을 밝힌 것이었다. 충분히 해석 가능한 발언이었는데 언론이 의도적으로 문제를 만들어 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것이 망언으로 와전되고 김기덕 감독이 사과문까지 발표했을 때는 정말이지…. 동명 한 성숙한 사람이 한국개봉을 고려하겠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때 든 생각은, 김기덕 감독이 심정적으로 절벽이 바로 시작되는 그 지점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자포자기한 상태랄까. 태용 앞서 ‘괴물’ 얘기도 나오고 김기덕 감독 발언 등 수많은 이슈가 있다.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배부른 고민’으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짧게 ‘쉬리’이후로 한국영화가 급속도로 발전을 했고, ‘괴물’ 이나 ‘시간’ 모두 그 발전이 이룬 결과이며 가능성이라고 본다. ‘괴물’은 사회적인 쟁점과 한국인의 정서를 정말 잘 잡아내고 담아낸 작품이고, 김기덕 감독의 경우는 한국에 부재하던 ‘한국 뉴웨이브’를 이끈 감독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 둘의 차이는 영화의 질의 차이가 아니라 고예산영화와 저예산영화라는 시스템에서 출발하는데, 저마다 개성이 있다는 거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오해하고 두 감독의 작품을 비교하는 것이 안타깝다. 김기덕 감독은 ‘빈집’에서 상처를 많이 받은 것 같다. 국외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국내 흥행에서 실패하지 않았나. 한가지, 김기덕 감독의 ‘활’ 같은 경우 두 개 극장에서 개봉했는데, 첫날 첫 회에 보러갔다. 사람들이 극장을 꽉 채워 정말 탄탄한 마니아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말씀에서 그 마니아층을 제외시킨 것 같아 아쉬웠다. 처음엔 저렇게라도 홍보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나중에 사과문이 발표됐을 때는 언론에 밀려났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렇게 ‘시간’이 입소문을 탔으니 결론적으로는 홍보효과가 있었다. 스크린쿼터는 굉장히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인데, 하나의 트랜드처럼 다뤄지는 것이 굉장히 기분 나쁘다. 영화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들이 모인 영화과 내에서도 관심이 예상처럼 높지는 않다. 또 이것도 언론 플레이의 문젠데, 한동안 뜨거웠다가 시들해졌다가, 또 ‘괴물’나오니까 막 몰아치지 않나. 그런 것들이 너무 웃기고 기분 나쁜 거다. 참 안타깝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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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부. 대학내일 영화면 '너는 누구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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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생의 감성을 회복하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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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내일 대학생과 영화에 대한 관계에 대해 얘기 나눴는데, 대학내일에 영화면이 자리잡은 것도 그 관계를 나타내는 것 중 하나 일 것 같다. 대학내일 영화면에 대해 ‘너는 누구이고, 무엇이 있고 또 없는지, 어떤 것을 바란다’ 하는 얘기들을 부탁드린다. 희연 프리뷰를 쓰면서 가장 고민이 되고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 부분이 권위있는 평론가나 의견들에 따라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게 빠지면 제대로 된 리뷰가 아닌 것 같다. 아름 그게 대학내일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 옛날 키노는 줄그어 가면서 봐야했지만 지금의 영화 글들은 저마다의 시각을 가지고 있다. 대학내일도 좀 더 대학생다운 시각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전문 평론가들의 글은 많다. 그런 글들과 차별성을 갖는 것이 대학내일 영화면의 과제인 것 같다. ‘정말 보기 힘든 영화를 선택했네’ 할 때도 있지만 ‘정말 식상하네’ 할 때도 있다. 태용 영화면에서 읽는 사람에게 프리뷰를 전달하는 목적은 쉽게 말해 ‘이 영화 좋다’다. 하지만, 이런 식의 내용은 얼마든지 많지 않나. 요즘 블로그를 보면 정말 세밀하고 개성있게 자신의 경험 등을 밝혀 영화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히려 그런 접근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도마 위에 오른 문제들, 지겹도록 듣는 중심에 있는 문제들은 다루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아름 모 사이트에 가면 주제가 정해져 있지 않고 ‘나’를 주제로 글을 풀어나가는 게 있는데 많이 자유롭고 개성있다. 그런 얘기들이 독자들 입장에서는 더 매력있다. 영엽 전 리포터로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확신이 없어 다른 글들에 지나치게 많이 신경을 썼다는 점이다. 그냥 자기가 느끼는 대로 썼으면 좋겠다. 지금도 영화 글쓰기를 공부하고 있는데, ‘누구나 보는 것’은 독자들이 원하지 않는다. 자신이 보는 것, 느끼는 것을 잘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칼럼 같은 경우는 ‘내’가 너무 많이 묻어난다. 독자들은 개성있는 내용, 한 개인이 묻어나는 내용을 원하긴 하지만 동시에 감성의 객관화를 원한다. 태용 평점도 있지 않나? 그것도 굉장히 위험해 보인다. 우리 친구 같은 사람들이 평가를 한다는 것이 기준도 모호하고 거부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평점을 빼고 그냥 20자평만 넣어도 좋지 않을까. 재은 평점을 쓰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영화마다 성격도 다르기 때문에 매번 고민한다. 희연 그렇지만 평점을 뺄 수 없는 것이 독자들에게 가장 빨리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같은 대학생이 쓴 평점을 보고, 또 신뢰하고 영화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대학내일 평점문제도 오랫동안 고민해 온 것인데, 더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같은 대학생의 시각으로 봐주셨으면 하는 것이 첫 번째 생각이고. 대학생의 감성을 찾으라는 말씀 많이 와 닿는다. 대학내일 영화면을 담당하는 기자로서 학생리포터 때의 경험을 살려 기성의 영화 글을 쓰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하나 독자들로부터 비판 받을 때가 있다. 감사히 잘 받아들이고 늙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오랜 시간 많은 말씀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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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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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 태 | 용 세종대 영화예술 06 얼마 전 충무로 영상센터 ‘오재미동’에서 청춘 3부작 상영회를 마친 감독님. 대학내일과는 나대학인 꼭지 인터뷰이로 인연을 맺었다. |
장 | 영 | 엽 전 문화팀 학생리포터 지난해 7월부터 1년 동안 문화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
한 | 아 | 름 광운대 영화제작동아리 ‘영상도전’ 부회장. 신문방송학을 공부 중이며 중학교 때부터 영화만들기를 시작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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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명 | 안희연 | 정재은 현 문화팀 학생리포터. 이번 해 7월부터 문화팀에 ‘버닝’ 중인 세 사람. 영화, 영화 글쓰기, 사랑, 인생에 대해 치열한 고민 중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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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및 정리 육진아 기자 yook@naeil.com · 사진 김준성 학생리포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