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의 발견]사랑보다 치명적인 유혹

에릭 로메 감독의 ‘클레르의 무릎(Le Genou De Claire, 1970)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여인’은 러브스토리지만, 일반적인 러브스토리와는 좀 다르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의 순수한 마음의 진정성이 이야기의 토대가 되는 통상적인 연애 영화와 달리, ‘해변의 여인’은 사랑을 둘러싼 욕망과 유혹, 질투와 배신감 등 보다 복합적이면서도 직접적인 감정을 다룬다. 어쩌면 욕망이라든가, 질투와 같은 감정은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감정보다 더욱 현실적인 것일 지도 모른다. 홍상수 감독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져 있는 이 지저분하고 유치한, 누구든 숨기고 싶은 감정들을 천연덕스럽게 정면에 펼쳐 보인다. 주인공 중래는 문숙에게 끌리지만, 그녀의 과거 성적 경험을 쉽게 넘기지 못하고 애매한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문숙을 닮은 여자 선희와 하룻밤을 보낸 후, 문숙과 다시 만나게 되면서 두 여자 사이에서 전전긍긍한다. 세 인물은 수없이 사랑한다는 말을 속삭이고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들의 관계는 제대로 진전되지 않는다. 사랑보다는 욕망과 자신의 도덕적 기준에 휘둘리는 인물들의 고민은 결코 풀리지 않는 실타래 같은 것이다.
에릭 로메의 도덕 연작 중 한 편인 ‘클레르의 무릎’ 또한, 사랑보다는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결혼을 눈앞에 둔 중년 남자 제롬은 소설가 친구가 머물고 있는 호숫가 별장에 놀러왔다가 우연히 15세 소녀 클레르를 만나게 되고 기이하게도 그녀의 무릎에 마음이 끌리게 된다. 그 때부터 클레르의 무릎을 만져보고 싶은 그의 욕망으로 인해 소소한 서스펜스가 펼쳐진다. 에릭 로메 감독에 있어서 욕망은 도덕에 대한 인간의 강박을 동반하는 것이다. 제롬은 어린 소녀를 욕망하는 자신에 대해 도덕적 잣대를 들이댄다. 실제로 제롬이 원했던 것은 클레르의 몸일지 모르나, 그는 교묘하게 자신의 욕망을 클레르의 무릎에 대입시킨다. 그는 클레르의 남자친구가 그녀를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그녀가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위로하는 척 하면서 교묘히 그녀의 무릎을 만지는 데 성공한다. 제롬은 그 사실을 친구에게 마치 무용담처럼 자랑스럽게 털어놓는다. 그럼으로써 제롬은 도덕과 욕망 사이에서 타협을 이룬 자신을 스스로 치하하는 것이다.
욕망과 도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태도는 정도의 차이는 다를지 몰라도 사회적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 필수적인 경험이다. 욕망을 따르자니 스스로의 도덕과 사회의 시선이 이를 허락하지 않고, 또 도덕을 따르기엔 불현듯 찾아온 욕망을 거스르기 힘들다. 에릭 로메 감독은 이러한 딜레마에 처한 인간들의 모습을 관찰하며 그 시선을 관객들에게 되돌린다. 어쩌면 감추고 싶은 추한 모습일지도 모르지만, 온갖 미사여구와 달콤한 순간들로만 채워진 러브스토리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우리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은영 영화평론가


출처 : http://www.naeilshot.co.kr/news/view.asp?num=2042&Sfield=&Sstr=&page=1&cate_news=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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