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해석이 되나요]상처받기 쉬운 그녀

‘피아니스트(La Pianiste)’의 에리카와 클레메

큐레이팅을 전공하는 그녀는 화려하고 재치 있는 말솜씨로 항상 우리를 즐겁게 해주곤 했다. 그런 그녀가 일본으로 유학을 가기 전에 또 하나의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바로 갑각류. 겉으로 보기엔 딱딱하고 두꺼운 껍질을 가지고 있어 접근하기 어렵지만 한 꺼풀만 깨고 들어가면 맨들맨들한 살만 있는 갑각류를 예로 들면서, 평소 대하기 어렵지만 너무나도 여린 마음을 지닌 ‘그녀’를 향해 던진 말이었다. (여기서의 ‘그녀’는 상상에 맡기겠음) 매우 적절한 비유였다. 사실이 그랬으니까. 주위를 둘러보면 갑각류 그녀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 차갑고 다가가기 힘든 사람일수록 갑각류일 확률이 높다. 그리고 여기 영화 속 여주인공 사상 가장 악명 높은 갑각류 그녀가 있다. 이름은 에리카, 그녀는 피아니스트다.
에리카의 껍질은 두꺼운 정도가 아니라 거의 무기였다. 지성으로 똘똘 뭉친 혀는 타인에게 모욕감을 줄 정도로 가시가 돋쳐있었고, 명령과 요구 밖에 할 줄 모르는 비뚤어진 소통방식은 일종의 장애였다. 철들기 전인 어린 시절, 좋다는 표현보다 괴롭히는 게 덜 쑥스럽다는 이유로 따뜻한 인사대신 온 힘을 실은 펀치를 날리던 그때처럼 그녀는 주위사람들을 아프게 했다. 자신에게 정복당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희열을 느끼는 마음은 사디즘의 변주였고, 사랑받고 싶은 갈망은 몇 십 년 동안 묵어 썩은 내를 풍기며 마조히즘으로 변해갔다. 받아 본 사람이 줄줄도 안다고 했던가. 온통 가시를 세우고 있는 그녀에게 사랑을 줄 사람은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클레메가 나타나서 넘치는 사랑을 고백하기 전까지는. 하지만 그의 사랑도 잠시, 그 많은 가시들은 사랑으로 무장한 그조차도 역부족이었다. 그때서야 에리카는 깨닫는다. ‘쥬뗌므’를 외치지만 때는 늦었다. 모든 가시를 쳐내고 온전한 여자가 됐지만 돌아오는 것은 상처뿐이었다. 그녀는 뼈가 없으니 연한 속살을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 지도 몰랐다. 그리하여 자신의 가슴에 칼을 꽂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밝게 인사하는 클레메의 모습에 그녀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랑이 지나면 증오도 그 만큼의 크기로 가슴에 남는다. 그녀는 아마도 클레메를 죽이고 싶었을 거다. 하지만 그러지 못해서 자신을 죽인다. 죽지 못해서 가슴에 칼자국을 남긴다. 다시는 상처받지 않겠다는 문신으로.
다시 한번 기억하자. 갑각류 그녀들은 껍질을 벗어던지면 뼈도 없어서 연한 속살을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지 모른다. 그러니 그녀들에게 상처주지 말자. 누군가에게 가시 돋친 말을 들었다면 ‘너는 갑각류구나’라고 생각하자. 안 그러면 또 다른 문신을 새길지도 모르니.

정재은 학생리포터 jmanduj@naver.com


출처 : http://www.naeilshot.co.kr/news/view.asp?num=2044&Sfield=&Sstr=&page=1&cate_news=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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