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음악처럼]또각 또각 또각

하이 힐 Tacones Lejanos
바람이 부는군요. 벌써 가을인가요. 이제 낙엽이 떨어지고 겨울이 오겠죠. 외롭게 서 있는 마음, 이대로 겨울을 맞을까 불안하기만 하군요. 불안을 달래기 위한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화장을 하죠. ‘분홍 립스틱’이란 노래에서처럼 ‘그댈 위해서요’. 사랑받기위한 시도는 불안을 상쇄하죠. 분홍 립스틱보다 더 강력한 것이 있는데, 그게 뭔지 아세요? 바로 하이 힐입니다. 그 아찔한 높이와 매혹적인 실루엣은 자기 팽창감을 불러일으켜 아주 쉽게 불안을 제거해준답니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국내 개봉을 앞둔 ‘귀향’의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90년, ‘하이 힐’이란 영화를 만듭니다. 이 영화는 알모도바르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가져다 준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와 이후 호평을 받은 ‘내 어머니의 모든 것’ ‘그녀에게’ ‘나쁜교육’ 사이에 위치한 작품으로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평을 받기도 했었죠. 국내에 유통된 비디오 케이스에는 ‘원색적 페미니즘의 미학’ ‘충격영상!’이라 적혀있어 피식 웃음을 유발하지만, 그 안의 내용물은 전혀 웃기지가 않습니다. 지독한 사랑과 그 사랑이 드리운 서늘한 그늘을 느끼기에 이 영화의 멜로디는 완벽합니다.
최고의 디바를 엄마로 둔 레베카는 10년 동안 혼자 자라야 했습니다. 버림받았던 기억은 불안이 되어 숨구멍 하나하나에 아로새겨졌고 결국엔 복수심이 돼버렸죠. 엄마의 남자를 곁에 두는 것으로 인생을 보상받으려 했으나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남자는 다시 엄마를 원했고, 그녀는 그런 남자를 죽이고 맙니다. 무대에 선 엄마는 방송을 통해 감옥에 있는 딸에게 한 곡의 노래를 들려줍니다. “마음이 고통스러우면 나를 생각해라. 울고 싶으면 나를 생각해라.” 레베카는 끊임없이 눈물 흘립니다.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것은 바로 그 노래, 엄마의 목소리였으니까요. 엄마의 목소리는 스페인의 디바 루즈 까살의 음성이었는데요, 그녀의 농도 짙은 목소리가 들려주는 ‘나를 생각해라 (Piensa En Mi)’와 ‘1년간의 사랑(Un Ano De Amor)’은 그야말로 격정적인 슬픔입니다. 이외의 트랙을 채우는 이는 다름아닌 류이치 사카모토.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마지막 황제’와 ‘마지막 사랑’으로 두 번이나 골든 글로브 음악상을 거머쥔 그는 아주 오랫동안 기억될 엔딩 타이틀을 이 영화에서 선보입니다. 첼로를 앞세워 등장한 단조의 선율아래 엄마는 딸이 쏜 총에 자신의 지문을 대신 남기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레베카는 침대 위 엄마를 부여잡고 아주 오래전 엄마의 하이힐 소리가 들려오기를,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던 그때를 떠올리죠. 공허한 가을 풍경 속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가 귀에 맴돕니다. 불안은 제거된 것이 아니었군요. 그대로 쓸쓸함이 되었으니, 비극입니다.
육진아 기자 yook@naeil.com

출처 : http://www.naeilshot.co.kr/news/view.asp?num=2045&Sfield=&Sstr=&page=1&cate_news=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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