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4대의 민항기가 납치된다. 뉴욕 근처에서 레이더망에서 사라진 AA11편은 그대로 세계무역센터와 충돌하고, 또 다른 민항기 한 대가 재차 충돌한다. 곧 이어 국방부 펜타곤에도 민항기가 추락한다. 미국 전역은 아수라장이 된다. 남은 한 대, 유나이티드 93편의 승객들은 지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 채 평온한 비행을 하고 있다. 하지만 승객으로 위장한 테러집단들이 행동을 개시해 비행기를 장악하자 기내는 공포에 휩싸인다. 공포 속에서 승객들은 힘을 모아 테러집단에 맞설 준비를 한다. 아일랜드에서 벌어진 시민들과 영국 정부와의 유혈 사태를 다룬 ‘블러디 선데이’를 연출하여 실화를 중립적인 시선으로 재연하는 데에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는 폴 그린그래스 감독. 그는 9.11 테러 사건을 최초로 영화화한 작품 ‘플라이트 93’에서도 정치적인 함의는 배제하고 혼란의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가감 없이 찍어내는 태도를 취한다. 이를 통해 영화는 그 때 억울하게 죽어갔던 평범한 사람들에게 헌정의 의미로서 오롯이 바쳐진다. 공포 속의 사람들이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사랑한다고 말하는 장면들은 뻔한 미국식 가족주의처럼 보여 다소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극한에 몰린 사람들로선 최선의 행동이었음을 이해한다면 죽음 앞에 던져진 인간의 모습이 큰 감동으로 다가 올 것이다. ‘플라이트 93’은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속적인 휴먼 드라마 형식으로 지루하게 물고 늘어지지 않는다. 이 영화의 촬영감독 베리 에크로이드는 핸드헬드 카메라를 사용하여 유나이티드 93편에 탑승한 사람들의 심리적 불안함을 집요하게 따라잡으며 당시의 혼란을 소름끼칠 정도로 사실적으로 잡아낸다. 또한, 관계당국들과 납치된 민항기 안의 사람들의 모습을 상황 전개에 따라 끊임없이 교차 편집하면서 유연하게 호흡을 조절하고, 극적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이로써 ‘플라이트 93’은 실화가 주는 강인한 휴머니티와 출중한 연출력으로 영화적 재미를 동시에 획득한 작품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획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