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업]해변의 여인

감독 홍상수
출연 김승우(김중래), 고현정(김문숙), 송선미(최선희), 김태우(원창욱)
장르 드라마, 멜로
시간 127분
개봉 8월 31일

Synopsis
영화감독 중래(김승우)는 배우 창욱(김태우)을 불러놓고 대뜸 여행을 가자고 한다. 여자친구 문숙(고현정)과의 약속 때문에 난처한 창욱이 내린 결정은 그녀도 함께 가는 것. 셋이 떠난 여행, 중래와 문숙은 눈이 맞아 잘 되는가 싶더니 이내 도망가 버리는 중래 때문에 일이 꼬이기 시작, 선희(송선미)의 등장으로 또 다른 삼각형이 만들어진다.

Viewpoint

홍상수 감독이 돌아왔다. 그냥 하는 홍보용 멘트가 아니다. ‘해변의 여인’의 감독이 누군가 하는 배경지식 없이 본 사람일지라도, 그가 단 한번이라도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봤었더라면, ‘홍상수 감독이 돌아왔다’고 말할 것이다. 금자씨는 잔인하고 추악한 복수 앞에서도 “뭐든지 예뻐야 돼”라고 읊조리는데, 홍상수 감독에게는 씨도 안 먹히는 소리다. 그에게 인간이 지켜야 할 마지막 체면 따윈 없다. 슈퍼에고는 원래 없었고, 따라서 이드와 슈퍼에고를 타협시켜야 할 에고도 없다. 그저 이드, 원초적인 욕망이 현실이라는 어쩔 수 없는 공간 혹은 한계에서 뛰논다. 그리고 이 낯선 풍경은, 보는 이들에게는 억압당했던 것이기에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해변의 여인’도 마찬가지다. ‘오! 수정’ ‘생활의 발견’을 거쳐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그러했듯 여자(들)를 탐내는 남자(들)와 그 남자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여자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더 기막힌 것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그들은 연애사건을 기회삼아 아주 맘껏 절제해야 한다고 학습되곤 하는 감정들을 쏟아낸다. 여자 위에 누워 좋아서 미치겠다고 하다가 날이 밝아오자 뭔가 정리가 안 된다고 내빼는 중래나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벌어진 다른 여자와의 쟁탈전에서 뜬금없이 핵심을 비껴나간 사실에 목 놓아 울부짓는 문숙을 보고 느끼는 것은 오! 카타르시스다. 관객들은 두 번 다시는 안 볼 남이나, 속까지 뒤집어 보여줄 수 있는 절친한 사이 아니고서야 목격할 수 없는 장면들을 홍상수 감독이 ‘극장전'에서부터 선보이기 시작한 줌인, 줌아웃을 통해서, 이 기법이 만들어낸 관객과의 거리를 통해서 매우 객관적으로 또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다. 카타르시스는 고현정이라는 배우가 가진 이미지의 파괴, 감독인 주인공(옷차림이 실제 홍상수 감독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을 통해 홍상수 감독을 엿보고 있다는 은근한 재미로 더욱 쏠쏠해지고, 관찰을 통한 이해는 때로는 선을 넘어버린 인간을 향한 조소의 한마당을, 때로는 동일화로 향하는 길목을 밝혀주어 지루할 새 없다.
그리하여, 홍상수 감독이 돌아왔다는 말이다. 한편, 이 구절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슈퍼맨의 귀환이라고 반길 수만은 없는 이유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불거져 나온 매너리즘의 문제 때문이다. 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한국영화를 우물에서 건졌다'는 평을 들은 그였다. 그는 기막히게 낯설었고 새로웠으며, 적어도 한국의 이전 영화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리얼리티 가득한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것의 반복, 설령 이것이 한 예술가의 창작동기이자 핵심일지라도, 똑같은 디자인에 색깔만 다른 옷을 입고 때마다 등장하는 그를 지켜보는 관객들의 반응이 이전처럼 뜨겁지 않을 수도 있겠다. 인간 심리의 최하층을 드러내 보이는 것을 넘어 ‘성찰'의 충격으로 다가왔던 그때를 떠올리는 관객들 대부분은 ‘해변의 여인' 앞에서도 ‘여전히! '와 ‘또 다시…'로 나뉘게 될 듯하다.

감독이 감독을 말하다

감독의 자아를 반영하여 분신이라고 칭할 수 있는 배우를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부른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곳곳에서 이 페르소나의 등장을 발견할 수 있는데, ‘해변의 여인’이 조금 더 특별한 것은 주인공이 감독이라는 설정을 통해 은폐된 페르소나가 아닌 개방된 페르소나를 내보인다는 점이다. 감독이 감독을 말하고, 영화가 영화만들기에 대해 말하는 작업은 의외로 빈번하게 일어났다. 최근 한국영화 ‘비열한 거리’, ‘쓰리, 몬스터’ 중 박찬욱 감독의 에피소드가 그 중 일부분이고, 저 멀리 이탈리아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이 1963년에 만든, 창작자의 고뇌가 고스란히 담긴 자전적 영화 ‘8과 1/2(사진)’가 대표적이다. 거장들의 자기비추기는 계속 돼 1971년에는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성스러운 창녀에 주목하라’가, 1973년에는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이 직접 감독 역할을 연기했던 ‘사랑의 묵시록’이 탄생했고, 미국 인디영화계의 대표감독 탐 디칠로의 1995년 작 ‘망각의 삶’까지 이어졌다.

A 웃다가 허탈해지는 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 인간, 홍상수 감독, 홍상수 영화 (진아)
A 웃다가 실신할 수 있으니 주의 요망 (재은)
A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역시 홍상수 (동명)

육진아 기자 yook@naeil.com

출처 : http://www.naeilshot.co.kr/news/view.asp?num=2029&Sfield=&Sstr=&page=1&cate_news=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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