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음악처럼]중독은 이성을 잠식한다

브이 포 벤데타 V For Vendetta
무엇 하나에 흥미를 느끼게 되면 그것에 쉽게 중독되는 성격 탓에 손해를 많이 보는 편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온라인 게임에 미쳐서 앉으나 서나 게임 레벨 올릴 궁리만 하면서 살다가 공부고 뭐고 뒷전에 미뤄둔 적이 있다. 더 이상 떨어질 것도 없는 성적은 계속 곤두박질 쳤고, 2학기 과학 중간고사에서 18점이라는 일생 최악의 점수를 받았다. 덕분에 고등학교 배정이 확정이 되기 직전까지 실업계 고등학교 입학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브이 포 벤데타’를 보게 된 건 오로지 한 가지 이유, 영화 속에 흐르는 노래 한 곡 때문이었다. 작년 말에 나는 앤토니 앤 더 존슨즈의 ‘아이 엠 어 버드 나우(I Am A Bird Now)' 앨범을 주구장창 듣고 있었다. 우직하면서도 부서질 듯한 느낌을 주는 중저음과 섬세하고 격정적인 바이브레이션으로 무장한 앤토니의 목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황홀경으로 관광을 보내고도 남을 정도로 매력적인지라 손쉽게 귀에서 레코드를 떼어낼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희소식을 듣게 됐는데, 바로 ‘브이 포 벤데타’의 두 주인공이 춤을 추는 장면에 앤토니 앤 더 존슨즈의 ‘버드 걸(Bird Guhrl)'이 흐른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이성을 잃고 ‘브이 포 벤데타’를 예매해버렸다. 아!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했던가. 지난날 호되게 당했으면서 나는 여전히 ‘중독이 제일 쉬웠어여’ 증후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저질러보자 하는 마음으로 봤던 영화는 거의 모두가 변변찮은 작품들이 많았기에 내심 불안했지만, ‘워쇼스키 형제가 각본도 썼다. 게다가 나탈리 포트만도 나온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극장으로 향했다. 불안함은 제대로 들어맞았다. 간간히 나오는 액션이라도 없었으면 그대로 꿈나라로 직행할 뻔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다리오 마리아넬리의 오리지널 스코어는 영화의 분위기와 적절히 맞물리면서 좋은 인상을 남겼다. 줄리 런던의 ‘크라이 미 어 리버(Cry Me A River)'와 캣 파워의 ‘아이 파운드 어 리즌(I Found A Reason)'도 더없이 반갑게 느껴졌다.
드디어 두 주인공 브이와 이비가 춤을 춘다. 모든 감각을 집중했지만, 이게 웬 걸. 무드 잡고 춤을 추기 시작했으면 잠자코 춤이나 출 것이지, 둘은 수많은 노가리를 까기 시작한다. 덕분에 오매불망 기다렸던 ‘버드 걸(Bird Guhrl)'은 귀를 쫑긋 세워야 멜로디나 대충 알아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순간 맥이 탁 풀리고, 머릿속에서는 7천 원에 대한 기회비용들이 사정없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영화는 프로파간다 성 메시지를 아주 지루하게 설파하고 있었다고, 극장을 나선 나는 미친놈마냥 “나탈리 포트만이 귀신!”이라고 외치고 싶은 충동에 시달려야했다.
문동명 학생리포터 playamoon@naver.com


출처 : http://www.naeilshot.co.kr/news/view.asp?num=2039&Sfield=&Sstr=&page=2&cate_news=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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