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영화에서 가장 큰 소재 중 하나는 바다다.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소나티네’ ‘하나비’ 등 그의 영화 중 비교적 정적인 영화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이 바다의 풍경에는 하나의 전제가 덧붙여진다. 그 바다는 언제나 맑고 쾌청한, 쨍쨍한 한낮의 바다라는 것이다. 비가 오거나, 혹은 구름이 낀 바다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바다는 한없이 푸르고 고요하고 한적하여 나른한 느낌마저 주는, 한낮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 하늘과 맞닿아 있는 여름 바다다. 이러한 열기와 정적이 주는 효과는 대단해서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영화 중 많은 인상적인 장면들이 바다에서 이루어졌다. ‘소나티네’에서 배신당하고 쫓겨 바다까지 오는 야쿠자 두목과 그 무리들은 바닷가에서 뜬금없는 장난을 치며 죽음으로 향하고 있는 자신의 운명을 애써 잊어보려 한다. ‘하나비’에서 불치병에 걸린 아내와 전직 형사의 동반 자살은 인적 없는 바닷가에서 울려 퍼진 단 두발의 총성으로 그려진다. 바다를 미치도록 사랑하여 마침내 바다 속으로 사라진 벙어리 소년의 얘기를 그린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는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뜨겁고도 나른한 정취의 맑은 날씨가 전체 분위기를 이루는 영화의 원조는 사실 따로 있다. 일본 영화사에서 흉내 낼 수 없는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부초’의 첫 장면은 한 어촌 마을의 여름 바다로부터 시작한다. 사위가 고요한 가운데 끝없이 푸른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있는 이 장면은 줄거리와 딱히 관계있는 장면이 아니지만 이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장악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오즈의 영화에서 여간해서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오즈의 영화 속에서 언제나 하늘은 푸르고 쾌청하며, 모든 소소한 인간적인 갈등을 감싸 안으려는 듯 푸근하고 고요하다. 이는 사물이나 사건을 바라보는 오즈의 시선이기도 하다. ‘부초’ 또한 그렇게 푸른 여름 하늘과 더운 날씨를 말해주는 등장인물의 한마디로 시작한다. “오늘 정말 덥네요.” 그러나 이 영화는 사실 오즈의 영화 속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는 격렬한 소낙비 장면이 인상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여간해서 언성을 높이지 않는 오즈 영화의 인물들은 ‘부초’의 중반부, 세차게 내리는 빗속에서 서로 격렬한 말다툼을 벌인다. 이 장면을 보고 있으면 오즈의 영화에서 날씨가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새삼 느낄 수 있다. 오즈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맑고 화창한 하늘은 자신의 슬픔과 기쁨을 안으로 삭이는 관조적인 오즈 영화의 인물들의 삶과 연관되어 있다. 맑은 날씨가 보여주는 정적인 감정은 곧 오즈 야스지로의 단아한 세계관의 단면이기도 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