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옳다고 여기는 가치들로부터 저만치 비껴나 있는 내게 누군가 던진 한 마디. “너 이상주의자 아냐?” 신석정 시인이 말했던가. ‘어느 지류(支流)에 조각처럼 서서 푸른 하늘을 우러러 보겠다고.’ 예전엔 미처 몰랐었는데, 이제는 그 시 단어 하나하나에 실린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하지만 쓴 웃음 한 번 툭 내뱉어주고 다시 방글방글 웃었다. 왜냐, 나도 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내게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의 매력남 롭(존 쿠삭)이 있다. 배리, 딕과 함께 작은 레코드점을 운영하는 롭에게는 오로지 ‘음악’ 뿐이다. 돈 못 벌어도, 남들에게 잘났다고 인정 못 받아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지켜낼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롭. 여자친구 로라가 떠나고 현실과 이상이 다르다는 엄청난 사실을 깨닫기 전, 자기만족과 꿈을 먹고 살던 롭의 모습은 지금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그런 그가 좋다. 레코드점을 운영하는 음악 마니아인 주인공과 두 친구들의 대사에는 수많은 팝송 제목들이 시기적절하게 등장한다. 배경자체가 레코드 가게이고 주인공이 팝에 관한 한 백과사전 수준의 지식을 겸비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겠지만, 트랙을 읽기만 해도 심장 벌벌 떨리는 명반을 영화 내내 감상할 수 있다니! 단, 한국에서 발매된 음반에는 전체 40곡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5곡만 실려 있으니, 무조건 영화를 봐라. 엘튼 존의 ‘크로커다일 록(Crocodile Rock)’, 벨 앤 세바스찬의 ‘세이모어 스테인(Seymour Stein)’, 킹크스의 ‘에브리바디스 고너 비 해피(Everybody’s Gonna Be Happy)’, 러브의 ‘올웨이즈 시 유어 페이스(Always See Your Face)’ 외에도 벨벳 언더그라운드, 퀸, 스테레오랩 등의 넘버들이 줄지어 등장한다. 마지막 장면, 롭이 헤드폰을 끼고 듣는 스티비 원더의 ‘I Believe(When I Fall In Love It Will Be Forever)’가 환상적이라면 대화 중에 인기가수인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깜짝 등장하는 장면이나 ‘스쿨 오브 락’으로 유명한 잭 블랙이 마빈 게이의 ‘렛츠 겟 잇 온(Lets get it on)’을 열창하는 장면도 절대 놓칠 수 없다. 실제로 ‘테나시어스 디’라는 밴드에서 활동 중인 잭 블랙은 화려한 무대 매너를 자랑하며 좌중을 압도한다. 그 중 단연 돋보이는 곡은 롭이 레코드점에서 “오늘 이 앨범을 다섯 장 이상 팔고 말겠어!”라고 말하며 틀었던 베타밴드의 ‘드라이 더 레인(Dry The Rain)’. 나른한 듯한 창법으로 “Take me in and dry the rain, I will be your light”라고 읊조리면 서서히 빠져들어 헤어 나오지 못한다. 아, 아무리 롭이 현실을 모른다고 해도 내 눈엔 예쁘기만 한데. 어디 롭 같은 남자 없을까? 이쯤 하니 확신이 든다. 그래, 난 이상주의자가 맞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