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영화 ‘괴물’에서 가장 애착을 갖는 장면이 영화 중반부 잡혀간 현서가 나타나 음식을 먹는 송강호의 판타지 장면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시나리오 상에서 이 장면을 읽은 스태프들이 오타로 오해했을 정도로, 감독은 이 판타지 장면이 판타지임을 말해주는 장치를 미리 심어놓지 않았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현서의 판타지는 환상인 동시에 현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비참한 현실을 견디기 힘들 때 환상은 그 진가를 발휘한다. 판타지는 현실과 동떨어진 어떤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이미지의 다른 형태일 뿐이다. 영화는 때로 판타지를 통해 더욱 가혹한 현실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괴물에게 잡혀간 현서가 먹을 것도 없이 며칠을 버티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운 아버지 송강호의 꿈 속에서, 가족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현서의 모습이 등장하는 것은 현실 속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참혹한 현실을 경험하는 아버지의 고통이 역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장 비고 감독의 유작인 ‘품행 제로’ 또한 비슷한 현실 속의 판타지를 다루고 있다. 방학이 끝나고 엄격한 기숙학교로 돌아간 학생들의 모습으로부터 시작하는 이 영화에서, 아이들은 선생들의 권위와 답답한 기숙학교의 현실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영화는 아이들이 처한 현실을 다소 우스꽝스러운 어조로 묘사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진한 어린아이들의 눈에 가끔 어리는 슬픔까지 없애지는 못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이자 인구에 회자되는 장면은 학생들이 침실에서 갑자기 광란의 베개 싸움을 벌이는 장면이다. 그저 단순한 장난처럼 시작된 베개 싸움은 걷잡을 수 없는 광적인 흥분의 도가니로 변해간다. 장 비고 감독은 아이들의 배게 속에서 빠져 나온 깃털이 마치 하얀 눈처럼 흩날리는 장면을 통해 자연스럽게 현실에서 판타지로 넘어간다. 이 영화에서 가장 놀랍고도 아름다운 장면은 선생이 마침내 아이들을 통제하기를 포기하는 순간 일어난다. 대장 격의 아이를 주축으로 기묘한 행렬을 만든 아이들은, 마치 세상을 향해 시위라도 하듯 작대기와 등불로 무장하고 행진한다. 장 비고 감독은 이 장면에서 그 전까지의 코믹한 음악을 갑자기 없애고, 몇 초간의 침묵을 선사하며, 공중제비를 돌아 아이들이 마련한 왕좌에 않는 소년의 모습을 슬로우모션으로 포착한다. 행진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무척 즐거워 보이지만, 사실 이 장면에는 어떤 슬픔의 정서가 존재한다. 이는 장 비고 감독이 기숙학교 아이들의 내적인 갈망이 빚어낸 이 무언의 시위를 통해 ‘품행 제로’라는 영화의 제목이 실은 아이들보다는 아이들을 비참하게 만드는 제도와 권위 의식임을 무언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