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α] 그는 나의 피그말리온, 나는 그의 여신

예술가와 뮤즈
주신 제우스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 사이에는 아홉 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음악, 서사, 희곡 등을 관장하며 수많은 창조 행위를 주관했는데, 뮤즈는 바로 그들의 이름이었습니다. 뮤즈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제공했듯이, 창조에 있어서 깊은 영감을 주는 어떤 존재를 ’뮤즈‘라 부르기 시작합니다. 창작 행위에 민감한 예술가들에게 뮤즈란 대단히 중요한 존재였음이 분명합니다. 피그말리온이 그랬듯이 예술작품으로 남기고 싶은, 개척하고 싶은 미지의 대상이었겠지요. 일례로 애드가 앨런 포우의 아내 버지니아 클램이 그랬고, 존 레논의 연인 오노 요코가 그랬습니다. 그녀들은 바닷가 어느 왕국에 사는 소녀 애너벨 리로, ‘이메진(imagine)’이라는 노래로 남아 현재까지 사랑받고 있어요.
영화계 역시 예외는 아닌가 봅니다. 장이모우에게 공리는 자신의 이상적 여성상을 투영할 가장 적절한 존재였으며, 장 뤽 고다르에게 안나 카리나(사진)는 그의 영화를 최고의 정점으로 이끌어 준 유일한 여성이었지요. 줄리엣 비노쉬와 레오 까락스는 함께 ’나쁜 피‘, ’퐁네프의 연인들‘과 같은 걸작을 창조해냈습니다. 이처럼 세기적인 예술가 뒤에는 창조의 영감을 제공하는 존재가 있었어요.
그런데 뒤집어 생각해보았을 때, 뮤즈 역시 예술가들이 그랬던 것만큼 행복하고, 달콤했을까요? 꼭 그렇다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로댕의 연인이었던 까미유 끌로델은 무려 삼십년의 세월을 로댕에 대한 애증으로 고통스럽게 보내야 했고, 세기의 여류작가 조르주 상드는 연인 알프레드 뮈세에 의해 창작 활동을 방해받아야 했지요.
그러나 언제까지고 뮤즈가 예술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탐미적인 감옥에 갇혀있을 거란 보장은 없어요. 음악가인 타미리스와 바다의 요정 세이렌들은 뮤즈와 노래 솜씨를 겨루다 패하여 소경이 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다지요. 이처럼 그들은 끊임없이 탈출구를 찾을 테고,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감옥을 만들려 할 겁니다. 오랜 시간 그래왔듯 이들 사이의 미묘한 관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장영엽 학생리포터 schkolad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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