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서생’은 상상과 멜로를 선택한다. 헛기침으로 역동하는 욕망 가라앉히는 선비들에게 음란소설 한 권 던져주고, 급기야 창작에 매진하게 만든다. 음란 소설을 쓰게 된 윤서와 삽화를 그리게 된 광헌은 창작의 과정인 상상, 간접경험을 통해 숨겨진 욕망 울컥 울컥 드러내고, 지켜보는 관객 또한 그들에게 동화되거나, 그들의 상상이 재현되는 시퀀스에 몰입하여 함께 즐겁다. 그 사이 끼어드는 멜로스토리는 좀 복잡하다. 정빈마마를 중심으로 형성된 왕, 내관, 윤서의 사각관계는 사랑의 여러 얼굴을 보여주려 힘쓴다. 설레고, 애틋하고, 슬프고, 허무하지 않느냐고 세련된 대사들을 던지는데, 감동받기에는 깊이가 좀 모자라다. 영화는 드라마의 깊이 대신 코미디를 선택한다. 여기저기 숨어있는 꽁트식의 상황설정은 배우들에 의해 재기발랄하게 구현됨으로써 제 빛을 발한다. 밋밋한 선비 얼굴에 서서히 생동감 그려 넣는 한석규의 연기는 여전히 극의 중심을 잡을 줄 안다. 특유의 개성이 발산되지 않아 조금 아쉬운 감이 남지만 적절하게 장단 맞출 줄 아는 이범수도 있고, 큰 눈 깜빡이며 활짝 핀 꽃이 된 김민정도 좋다. 작은 눈 게슴츠레하게 뜨고 영화 첫 신에서 관객을 맞이한 오달수는 끝까지 안내자 역할을 하는데, 피아노 건반 ‘솔’음에서 반올림 한듯한 목소리 성의 없이 내뱉으며 그야말로 잘한다. 가볍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는 전략을 가진 영화가 가진 숙명은 드라마의 결핍이다. 소재를 따라 조금 더 질퍽하게 갔으면 하는 좌절된 소망을 보상해 줄 만큼 다른 요소들이 풍성하지 않기에 결과적으로 ‘음란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겠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머리와 가슴, 아랫도리의 중요도를 친절히 선별해줌으로써 주제를 드러낸다. 사랑을 품을 줄 아는 가슴과 아랫도리가 중요하다고, 더 자유롭게 그 두 곳을 사용할 날이 오고야 말 것이라고 잔잔한 뒷맛 남기지만, 얼마나 오래 갈지는 의문이다. |